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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剋(상극)인 식품23가지

 

1) 쇠고기와 버터
쇠고기에는 콜레스테롤이 많이 들어 있고 동물성 기름으로 만든 버터에도 콜레스테롤이 많으므로 쇠고기에 버터를 첨가해 굽는다면 콜레스테롤의 급증을 막을 수 없다.
2) 라면과 콜라
라면은 화학적으로 칼슘과 결합을 잘 하는 성질이 있어 칼슘부족을 일으키기 쉽다. 그리고 콜라도 칼슘과 잘 결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둘을 같이 먹으면 칼슘결핍을 가지고 온다.
3) 홍차와 꿀
홍차성분중의 떫은 맛 성분인 탄닌이 꿀의 철분과 결합해서 체내에 흡수가 되지 않는 나틴산철로 변하기 때문에 같이 하면 안된다.
4) 게와 감
게는 식중독균의 번식이 잘 잘 되는 고단백 식품이고 감은 수렴작용을 하는 탄닌성분이 들어있어 둘을 같이 먹으면 소화불량과 식중독을 일으키기 쉽다.
5) 간과 감
간은 양질의 단백지가 비타민, 칼슘, 철이 아주 많으나 감이 가지고 있는 떫은 맛 성분인 탄닌성분은 철분의 결합을 방해하고 탄닌과 철분이 결합하면 탄닌산철이 되는데 이것은 녹지 않고 그대로 배설되므로 영양에 좋지 않다.
6) 도토리와 감
도토리묵의 주성분은 녹말이지만 탄닌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감에도 떫은 맛을 내는 성분인 탄닌을 가지고 있는데 둘을 같이 먹을 경우 변비가 심해지고 빈혈증이 나타나며 적혈구를 만드는 철분이 탄닌과 결합해서 소화흡수를 방해한다.
7) 문어와 고사리
문어는 질겨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고사리도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재료이므로 문어와 고사리는 같이 먹으면 소화에 문제가 생긴다.
8) 선지와 홍차
선지는 철분이 많아 빈혈증 환자에게 아주 좋은 식품이다. 그러나 홍차와 같이 마시게 되면 홍차의 떫은 맛을 내는 탄닌이 철분과 결합해 탄닌산철을 만들어 철분 이용도를 반으로 감하게 한다.
9) 시금치와 근대
시금치에는 옥산살이 아주 많이 들어있는데 이 옥살산은 수산석회가 되어 결석을 만든다. 그리고 근대에는 수산이 많이 들어있어 시금치와 함께 먹으면 옥살산 덕분에 신석증이나 담석증이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10) 우유와 설탕
우유에는 설탕을 넣으면 단맛 때문에 마시기는 쉽지만 비타민 B1의 손실이 커진다.
11) 오이와 무
오이에는 비타민 C가 존재하지만 칼질을 하면 아르코르비나제라는 효소가 나오고 이 효소는 비타민 C를 파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무와 섞으면 무의 비타민 C는 파괴될 것이다.
12) 장어와 복숭아
장어를 먹고 복숭아를 먹으면 복숭아에 함유된 유기산이 장에 자극을 주어 지방이 소화되는 것을 방해하므로 설사를 일으킨다.
13) 조개와 옥수수
조개류는 단백질과 당질은 풍부하지만 부패 되기 쉽고 산란기에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성물질을 만들어서 소화가 어렵다. 그리고 옥수수도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 둘을 같이 먹으면 소화에 큰 지장이 생긴다.
14) 콩과 치스
치즈에는 칼슘이 많고, 콩에는 칼슘보다는 인산이 많은데 둘을 함께 먹으면 인산칼륨이 생성되어 몸 밖으로 빠져 나가 버린다.
15) 토마도와 설탕
설탕이 인체 내에서 분해 이용되려면 비타민 B1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토마토가 가지고 있는 비타민 B1은 설탕의 대사에 쓰이다 보니 비타민 B1의 손실이 뒤따른다.
16) 비타민과 차
녹차나 홍차에 함유된 탄닌 성분이 약물 고유성분을 변화시켜 약효를 떨어뜨리기 쉽다.
17) 시금치와 두부
시금치에는 옥산살이 들어있고 두부에는 칼슘이 다량 함유되어있는데 이 옥살산과 칼슘이 결합하면 불용성의 수산__T슘이 생성되므로 인체의 __T슘섭취가 줄어들어 결설증을 유발한다.
18) 카레와 와인
카레의 매운맛이 와인 속에 잠재되어있는 알코올성분을 깨워 입안이 타는 듯한 느낌을 준다
19) 초코렛과 우유
우유의 유지방과 초콜릿의 유지방이 결합하면 성인병 유발
20) 도라지와 돼지고기
도라지는 기침, 천식에 좋은 뿌리채소이고 돼지고기는 이 기능을 방해하는 성질이 있다.
21) 쇠고기와 고구마
고구마와 쇠고기는 소화시 필요한 위산 농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음식물이 위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져 소화흡수에 해를 준다.
22) 치즈와 땅콩
치즈와 땅콩에는 지방이 많이 들어있어 성인병을 유발하기 쉽고 인산칼슘이 만들어져 흡수되지 않고 배설되어 버린다.

23) 바지락 과 우엉
우엉에 있는 섬유질이 바지락과 만나면 철분 흡수율이 떨어진다. 대신 철분 흡수는 칼슘이 도와주니 조개류는 우유와 유제품, 뼈째 먹는 생선을 함께 먹는 것이 좋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천진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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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얼짱 거지 영화 데뷔!!! 뭘하든지 잘생겨야 하는듯 ㅎㅎ http://j.mp...   

MC몽에게 "많이 빌어야 한다" 예언한 아기무당 동영상 화제

아기무당, MC紐, 예언

MC몽 ⓒ SSTV
[SSTV | 이금준 인턴기자] 병역기피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가수 MC몽(31 본명 신동현)의 미래에 대해 예언한 ‘아기무당’의 2년 전 영상이 화제다.

17일 각종 커뮤니티올라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이 영상은 SBS‘스타킹’의 2008년 6월 14일 방송분으로 어린 여자 아이 무당과 MC몽의 대화를 담고 있다.

영상 속 아기 무당은 자신의 앞에 앉은 MC몽에게 먼저 “지금 많이 힘들어한다. 용서해야 할 것이 많다”며 “많이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람들에게 잘못한 게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MC 몽이 “엄마랑 싸웠다. 엄마랑 친구 같은데”라며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요”라고 응수하자 아기 무당은 “죽을죄를 지었다”고 잘라 말했다.

이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아기무당에게 신기가 있긴 있었나보다”, “아기 무당말처럼 국민들께 용서를 구해라”, “방송을 보니 더 뻔뻔해보인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MC몽은 지난 13일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군 면제를 받기위해서 생니를 뽑은 적은 단연코 없다”며 결백을 주장한 바 있다.

[동영상-인터넷뉴스 No.1 SSTV|www.ahaTV.co.kr]
모바일로 생생연예현장 동영상보기 [SHOW,fimm+TV+뉴스와생활+SSTV

 

한국 4대 명절의 하나인 음력 8월 15일.
 
중추절(中秋節)·가배(嘉俳)·가위·한가위라고도 한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다.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儒理王) 때 6부(六部)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기망

 

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동안의 성적을 가려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다.

 

이때 〈회소곡 會蘇曲〉이라는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라고 불렀다.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쇠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적으로 선대 왕에게 추석제(秋夕祭)를 지낸 기록이 있다.

 

1518년(중종 13)에는 설·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서 여름비에 무너진 무덤 보수와 벌초를 한다.

 

조상 상에 바치는 제물은 햇곡으로 준비하여 먼저 조상에게 선보이며 1년 농사의 고마움을 조상에게 전한다.

 

성주·터주·조상단지 같은 집안신들도 햇곡식으로 천신(薦新)하며 추석치성을 올린다.

 

추석에는 정월 대보름보다는 작지만 풍성한 민속놀이도 행해졌다. 씨름·소놀이·거북놀이·줄다리기 등을 즐긴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제주도 풍속에는 조리희(照里戱)라 부르는 줄다리기, 그네, 닭잡는 놀이인 포계지희(捕鷄之戱) 같은 놀

 

이가 있다. 수확철이라 다양한 음식이 선보이며 추절시식(秋節時食)이라 하여 햅쌀로 술을 빚고 송편을 만들며 무나 호박을 넣은

 

시루떡도 만든다. 찹쌀가루를 쪄서 찧어 떡을 만들고 콩가루나 깨를 묻힌 인병(引餠), 찹쌀가루를 쪄서 꿀을 섞어 계란처럼 만든

 

율단자(栗團子)도 만들어 먹었다. 또 반보기의 풍습도 있었는데, 반보기란 시집간 여자가 친정에 가기 어려워, 친정부모가 추석 전

 

후로 사람을 보내 만날 장소·시간을 약속하여 시집과 친정 중간쯤에서 만나는 것이다. 지금은 이 풍습이 없어졌지만 추석 뒤에 음

 

식을 장만하여 친정에 가서 놀다 오게 한다. 추석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로 자리잡고 있어, 추석이 되면 많은 사람

 

이 고향을 찾아간다. 북한에서는 추석을 쇠지 않았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공휴일로 정했다.

 

 하춘화-영암 아리랑

 

                                  달~이뜬다~
                                  달~이뜬다~

                                  영암 거을이~둥근~달이뜬다~.
                                  달이 뜬다 달이뜬다

                                  둥근 둥근 달이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뜬다

                                  아리랑 동동 스리랑 동동

                                  에헤야데헤야 어서와 대헤야

                                  달을보는 아리랑

                                  님을 보는 아리랑~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심화찾아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아리랑 동동 스리랑 동동 에헤야 대해야 어솨야 데해야

                                  달을 보는 아리랑 님을 보는 아리랑

                               

 

 


출처 : 운해한국화회
글쓴이 : 혜당(임순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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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하춘화-영암아리랑(달타령).mp3

출처 : 아리랑 고개를 찾아서
글쓴이 : 아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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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노래 61곡 모음

  

 

1.9월에 떠난 사랑 - 유익종

2.가을 사랑 - 신계행

3.가을 우체국 앞에서 - 윤도현 밴드

4.가을 은행나무 아래서 - 안치환

5.10월의 어느 멋진날 - 김동규

6.10월의 어느 멋진날 - 김동규.금주희

7.가을 편지 - 강  촌

8.가을비 우산속 - 보보(강성연)

9.가을빛 추억 - 신승훈

10.가을사랑 -sg워너비

11.가을 여정 - 정경화

12.가을은 - 이은미

13.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 패티김

14.가을이 오면 - 서영은

15.가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 황치훈

16.가을이 오면 - 이문세

17.가을편지 - 강인원

18.가을편지 - 이동원

19.가을 흔적 - 이승환

20.구름 들꽃 돌 여인 - 이정선과 해바라기

 

21.귀  로 - 박선주

22.그  날 - 김연숙

23.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 한마음

24.그리움만 쌓이네

25.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 김광석외

26.나에게 쓰는 편지 - 여행스케치

27.나의 옛날 이야기 - 조덛배

28.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때 - 장필순

29.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 차중락

30.내가 만일 - 안치환

 

31.내게너무이쁜그녀- 아낌없이주는나무

32.내안의 그대 - 서영은

33.내 이름은 가을 코스모스 - 양현경

34.너를 사랑 하고도 - 전유나

35.너를 사랑해 - 한동준

36.너에게난 나에게넌 - 자전거탄풍경

37.늦가을 모퉁이 - 장혜진

38.다시 사랑한다면 - 도원경

39.당신은천사와커피를마셔본적이있나요

40.벌써 1년 - 브라운아이즈

 

41.빨간 자전거타는 우체부 - 장필순

42.사랑과 우정사이 - 피노키오

43.사랑해도 될까요(파리의여Ost) - 박신양

44.사랑해요 - 고은희.이정란

45.시청앞 지하철역에서 - 동물원

46.가을편지 - 임태경

47.신부에게 - 유리상자

48.아름다운날들 - 정혜진

49.어느 가을날의 시 - 피노키오

50.흐린 가을날에 편지를 써 - 동물원

 

51.가을이 빨간 이유 - 김원중

52.그해 가을날 - 꼬두메

53.가을의 노래 - 동물원

54.내마음 가을처럼 - 말  로

55.가을 그리고 겨울 - 임지훈

56.가을편지 - 적  우

57.가을은 어디 - 정태춘

58.마른잎 - 장  현

59.나의 노래 - 문정선

60.가을억새 - 한보리

61.흐린 가을날에 편지를 써 -노래마을

 

 
//
출처 : 좋은생각을 가진 아름다운사람들
글쓴이 : 깐돌이~★ 원글보기
메모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경상도 버전

 

내 꼬라지가 비기 실타고

갈라카모

내사마 더러버서 암 말 안코

보내 주꾸마

영변에 약산

참꽃

항거석 따다 니 가는 길빠다게

뿌리 주꾸마

니 갈라카는 데 마다

나뚠 그 꼬슬

사부 자기 삐대발꼬 가뿌래이

내 꼬라지가 비기 시러

갈라 카몬

내사마 때리 직이 삔다 케도

안 울 끼다

 

 

충청도 버전

 

이제는 지가 역겨운 감유

가신다면유 어서 가셔유

임자한테 드릴건 없구유

앞산의 벌건 진달래 꽃

뭉테기로 따다가 가시는 길에

깔아 드리지유

가시는 걸음 옮길 때마다

저는 잊으셔유 미워하지는 마시구유

가슴 아프다가 말것쥬 어쩌것시유

그렇게도 지가 보기가 사납던가유

섭섭혀도 어쩌것시유

지는 괜찮어유 울지 않겄시유

참말로 잘가유

지 가슴 무너지겼지만

어떡허것시유 잘 먹고

잘 살아바유

 

 

제주도 버전

 

나 바레기가 권닥사니 벗어정

가고정 헐 때랑

속 숭허영 오고셍이 보내주구다

영변의 약산 진달레꽃

가득 토당 가고정헌 질에

뿌려주쿠다

가고정헌 절음절음

놓인 그 꼿을

솔때기 볼드명 가시옵서게

나 바레기가 권닥사니 벗어정

가고정 헐 때민

죽었자 아니 눈물 흘리쿠다게

 

 

전라도 버전

 

나 싫다고야

다들 가부더랑께

워메~나가 속상혀도. 주딩 딱

다물고 있을랑께

거시기 약산에 참꽃

허벌라게 따다가 마리시롱

가는 질가상에 뿌려줄라니께

가불라고 흘때마다

꼼치는 그 꽃을 살살 발고

가시랑께요

나가 골빼기 시러서

간다 혼담서

주딩이 꽉 물고 밥 못 쳐묵을

때까지 안 올랑께

 

1. 신경 쓰덜말고 가부더랑께

겁나게 괜찬응께 워메 ~

참말고 괜찬아부러

 

2. 뭣땀시 고로코름 허야 쓰것쏘이?

나가 시방 거시기가 허벌나게

거시기 허요이~~

 

 

강원도 버전

 

나보기가 기 매해서

들구버질 저는

입두 쩍 않구 고대루

보내드릴 기래요

영변에 약산 빈달배기 참꽃

한 보뎅이 따더 내재는

질라루 훌훌 뿌레 줄끼래요

내 걸리는 발자구 발자구

내꼰진 참꽃을

지져밟고 정이 살페 가시우드래요

나 보는 기 재수바리웁서

내 툴저는

뒈짐 뒈졌지 찔찔

짜잖을 기래요

 

출처 : ♬미리내 소리사랑♬
글쓴이 : 행복님 원글보기
메모 :

 

문자(文字)를 소재로 하는 조형예술(造形藝術). 점과 선·획(劃)의 태세(太細)·장단(長短), 필압(筆壓)의 강약(强弱)·경중(輕重),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 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진다.

가로쓰기
서제를 가로로 배열하여 쓰는 방법으로 글자의 윗 부분을 맞추어씀


가리개=곡병(曲屛)
두 쪽짜리의 병풍으로 물건을 가리건 구석 장식용 등의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임.
간가(間架)
점과 획의 간격을 조형적으로 알맞게 하는 것.


간찰(簡札)
간지에 쓴 편지글.


갈필(渴筆)
먹이 진하거나, 속도를 빨리 하여, 종이에 먹이 묻지 않는 흰 부분이 생기게 쓰는 필획.


강약(强弱)
필획의 표현이 강하고 약한 정도.


강호(强豪)
털의 성질이 강한 붓, 황모(黃毛), 낭호(狼豪), 서수(鼠鬚) 등으로 만들어진 것.


개형(槪形)

글자의 외형(外形).


결구(結構)

점, 획을 효과적으로 조화 있게 결합하여 문장을 구성하는 것.


겸호(兼豪)

강모(强毛)를 호의 가운데에 넣고 두 종류 이상의 털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초보자에게 적합함.


경중(經重)

필획의 표현 느낌이 가볍고 무거운 정도.


경필(硬筆)

모필(毛筆)에 맞서는 말로서, 현대의 필기 도구인 연필, 볼펜, 만년필 등이 이에 속함.


고묵(古墨)
옛날에 만든 먹.


골법(骨法)=골서(骨書
)
붓 끝으로 점획의 뼈대만 나타나게 쓰는 방법.


골서법(骨書法)

체본 위에 투명지를 놓고 문자를 골법(骨法)으로 쓰고, 그 다음 붓으로 그 골서(骨書)를 따라 연습하는 방법.


곡직(曲直)

필획의 표현이 굽거나 곧은 정도.


구궁격(九宮格)

구궁격(九宮格)이란 비첩(碑帖)을 임서할 때 사용하는 종이로 정사각형 안에 정(井)자형의 줄을 그어 9등분한 것을 말한다.
구궁격은 당나라 사람들이 발명한 것으로 그들은 이것을 통하여 옛사람들의 글씨의 법과 짜임새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글씨의 자형과 점과 획의 위치 등을 익히는데 아주 적합하다.
뒤에 사람들은 이를 응용하여 전자격(田字格)혹은 미자격(米字格)등을 발명하였다.
그 쓰임새는 구궁격과 같이 글자의 자형을 익히는데 사용되었다.
물론 이러한 방법에도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글자의 자형과 점,획의 위치를 정확하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단점은 글자를 너무 판에 박은 듯이 쓰기 때문에 융통성과 필력이 향상되지 못한다.
초학자들은 처음에 글자의 형태를 익히기 힘들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여 어려운 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글자의 자형이 익숙한 뒤에는 이것을 버리고 다시 임모(臨摹)를 하여야 한다.
구궁격은 약간 번잡한 점이 있으니 미자격을사용하여도 무방하다.


구궁법(九宮法)

투명 구궁지를 체본 위에 놓고 보면서 다른 구궁지에 도형을 그리듯이 연습하는 방법.


구궁지(九宮紙)

모눈이 그어진 습자지. 필획의 위치, 간격, 장단 등을 이해하기 쉽게 1칸을 가로로 3, 세로로 3으로 나누어 선을 그어 놓은 종이.


구세(九勢)

구세(九勢)란 동한(東漢)의 서예가인 채옹(蔡邕)이 말한 것으로 붓을 움직일 때 지켜야 할 9가지 규칙을 말한다.
이것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결자(結字) 붓을 댈 때 짜임새에 유의하여야 하는데 윗획은 모두 아래로 엎어지는 듯하게 하고, 아 랫획은 위를 이어받는 듯하게 하여 형세가 서로 그림자 띠를 연결하는 것처럼 하며, 등을 지는 형세를 취해서는 안된다.
이 말은 모든 글자들이 서로 필획을유지하면서 호응하는 형 태를 취하고 등지는 형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2.전필(轉筆) 붓을 꺾을 때에는 좌우를 돌아보면서 마디가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이 말의 뜻은 획의 방향을 바꿔 전절(轉折)을 할 때 필봉을 둥글게 꺾어 돌리면서 좌우가 균형있게 되어 점· 획과 서로 일체감이 되어 혼자 삐죽 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3.장봉(藏鋒) 점과 획을 그을 때 오른쪽으로 가려면 먼저 붓을 왼쪽으로 향하여 힘을 주다가 다시 오 른쪽으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점과 획을 그을 때에는 항상 필봉이 획 안에 있으면 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 탄성을 얻은 뒤에 다시 제 방향으로 나아가되 필봉을 감추면서 붓 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4.장두(藏頭) 붓을 둥글게 하여 붓의 중심이 항상 점과 획의 중앙에 위치하여야 한다.
5.획미( 尾) 점과 획에서 세력이 다했으면 힘을 들여 붓을 거둔다.
6.질세(疾勢) 탁(탁)획과 파임에서 나왔으며, 세로획의 갈고리도 이에 해당한다.
7.약필(掠筆) 필봉이 나아갈 때 험악하면서도 재빨리 해야 한다.
약(掠)획은 길게 삐치는 획으로 필봉 이 왼쪽으로 향해 나아갈 때 예리하면서도 힘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중간에 힘이 없거나 가늘게 되면 형세를 잃어버리게 된다.
8.삽세(澁勢) 획을 빠르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9.횡린(橫鱗) 가로획에 대한 설명이다. 가로획이 너무평평하면 안되므로 린(鱗)자를 더하여 이를 제지 한 것이다.
가로획을 늑(勒)이라 하는데 이는 말의 재갈을 말하는 것으로 때로는 긴장되게 때로는 여유있게 하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가로획이 너무 평평하면 판에 박은 듯하여 좋지 못하다.
세로획도 너무 곧으면 좋지 못하니 곧은 형세를 가지되 약간 굽은 모양이 있어야 한다.


금석문(金石文)
청동기나 돌에 새겨진 문자.


금석학(金石學)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문자를 연구하는 학문.


기운(氣韻)

기운(氣韻)이란 서예 작품에서 정신과 풍채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표준을 구현하는 것이다.
물론 창작의 요구나 아니면 서예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기운의 우열을 가늠할 수 있다.
기운에는 깊은 감정세계와 농후한 정과 열활한 풍채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서예가 고도로 승화된 예술감각과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장언원(張彦遠)은 <역대 명화기(歷代名 記)>에서 "만약 기운이 두루 미치지 못하면 공허한 진영과 같고,필력이 굳세지 못하면 쓸데없이 먹칠만 하는 것과 가아 묘한 맛이 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사실 서예의 묘는 풍채에 있으며, 풍채는 기운이 응축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작품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기운은 결코 기력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며, 기세가 또한 기운은 아니다.
기운은 천기가 스스로 발동하여 작가의 의식세계에 스며들어 이것을 승화시켜 내심에 잠재하고 있는 잠재의식과 융화시켜 고도의 예술적 기교를 재현시켜야 기(氣)가 풍족하고 운(韻)이 농후한 예술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기운이 생동하는 것은 다방면의 요소가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글씨 자체의 짜임새,장법, 묵법 등의 기교를 제외하고 관건은 바로 작가의 의식세계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서예의 규율을 볼 때 법은 사람마다 전할 수 있지만 정신세계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흉중에 커다란 뜻을 품고 종횡으로 달리는 기상이 있어 야 붓이 이르는 곳마다 기운이 만족하여 훌륭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기필(起筆)
점과 획의 시작으로 처음 종이에 붓을 대는 과정.


낙관(落款)
서화(書畵) 작품에 제작 연도, 아호, 성명 등의 순서로 쓰고 도장을 찍는 것.


노봉(露鋒)
기필(起筆)에 있어서 봉(鋒)의 끝이 필획에 나타나는 것.(→장봉)


농담(濃淡)

필획의 표현이 짙고 옅은 정도.
농담(濃淡)이란 먹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표현으로 농(濃)이란 먹색이 진한 것을 말하고 담(淡)이란 먹색이 흐린 것을 말한다.
서예에서는 먹물이 마르고 축축한 것보다 진하고 흐린 것을 더욱 중요시 여기고 있다.
그 것은 각각 특색이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하여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옛사람들은 축 축한 것으로 연미함을 취하고 마른 것으로 홈악함을 취한다고 하였다.
진한 먹은 작품에서 웅장한 기세를 표현하기에 적당하며, 흐린 먹은 고상한 경지를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그러므 로 한 폭의 작품 안에는 마르고 축축한 것이 서로 어우러져 진하고 흐린 것으로 체를 이루어야 걸작이 될 수 있다. 농담의 관건은 흐린 먹으로 육중함을 나타내고 진한 먹으로도 막히지 않고 쓸 수 있을 정 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진한 먹을 쓰더라도 둔하지 않으며 흐린 먹을 쓰더라도 애매모호 하지 않은 글씨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반천수(潘天壽)는 "먹은 반드시 흐린 가운데도 진 한 맛이 있어야 하며 진한 가운데도 흐린 맛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흐리더라도 웅장한 맛을 나타내어 평평하면서도 평평하지 않은 글씨가 된다." 라고 하였다. 글씨의 묘미는 바로 이 말 가운데 있으니 먹의 농담을 잘 연구하면 좋은 작품을 이룰 수 있다.


농묵(濃墨)
진하게 갈려진 먹물.


농서법(籠書法)

체본 위에 투명지를 놓고 문자의 윤곽을 그린 후 붓으로 그 윤곽을 채우듯이 연습하는 방법.


단구법(單鉤法)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붓대가 지면과 수직이 되도록 잡고, 가운데손가락, 약손가락, 새끼손가락으로 안에서 받쳐 작은 글씨를 쓸 때의 붓 잡는 방법.


단봉(短鋒)
붓의 털의 길이가 짧은 붓. 주로 회화용으로 쓰임.


담묵(淡墨)

묽게 갈아진 먹물.


대련(對聯)

세로가 긴 족자나 액자를 두 개로 하여 한 작품을 이루도록 한 것.
낙관은 좌측의 것에만 함.


두인(頭印)

두인이라는 용어보다는 수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게 바람직하다.
두인의 머리두는 두령,두목등 안좋은 의미에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수인(首印)


마묵(磨墨)
먹을 가는 것.


먹(墨)

나무나 기름을 불완전 연소시켜 만들어진 그을음에 아교와 향료를 섞어서 만든 서예 용재.
유연묵과 송연묵이 있다.


먹색(墨色)

먹의 질과 농도, 운필 방법, 지질(紙質)에 따라 나타나는 먹의 색.


먹즙

시판용 먹물로서 물을 섞어 사용.
부패를 막기 위해 방부제를 넣었으므로 붓의 털에는 좋지 않음.


먹집게

먹이 닳아 손으로 잡고 갈기에 불편할 때 먹을 끼워 쓰는 도구.


모사법(模寫法)

체본 위에 투명지를 놓고 위에서 투사하여 연습하는 방법.


모필(毛筆)

동물의 털을 묶어 붓대에 끼워 쓰는 붓을 일컬음.


묵상(墨床)
먹을 올려놓는 상.


문방(文房)

옛날 문인(文人)들의 거실.
즉 서재(書齋)를 말함.


문방사우(文房四友)=문방사보(文房四寶)
문방에 필요한 4가지 용구, 용재로서 종이, 붓, 먹, 벼루를 말함.


반절(半切)

←전지(全紙)


반흘림
정자와 흘림 글씨의 중간 정도의 한글 서체


발묵(潑墨)
서화에서 먹물이 번지는 정도.
벼루에 먹을 갈아 얻은 먹묵이 먹빛이나 점도 등 모든 조건이 이상적인 경우 발묵이 좋다고 한다.
먹물이 짙을 뿐 아니라 청자색을 띠며 마치 기름이나 옻칠처럼 반질반질하고 밝은 먹빛을 말한다.
발묵이 좋으면 한 번 찍 어서 여러 글자를 쓸 수 있다.
아무리 먹이 잘 갈리더라도 발묵이 좋지 않으면 좋은 벼루라 할 수 없다.
좋은 먹도 좋은 벼루를 만나야 발묵이 좋다.


방필(方筆)
기필과 수필에서 보가 는 방형(方形)의 필획으로 장중한 느낌이들며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의 한글 판본체에서 볼 수 있음.


배세(背勢)

마주 보는 두 획을 안 쪽으로 휘게 쓰는 것으로 방필의 경우에 많이 나타나며, 구양순의 해서체에서 볼 수 있음.


배임(背臨)

임서의 한 방법으로 체본을 보고 형임, 의임을 충분히 한 후에 체본을 보지 않고 연습하는 방법.


배자(配字)

글자간의 사이를 아름답게 배치하는 것.


백문(白文)

전각의 한 방법.
음각으로 새겨 도장의 문자가 희게 찍히는 것.


법첩(法帖)

옛날의 훌륭한 글씨의 명적을 탁본하여 서예 학습을 위해 책으로 만든 것.


벼루(硯)

먹을 가는 용구.
재료에 따라 옥연(玉硯), 목연(木硯), 도연(陶硯), 동연(銅硯), 칠연(漆硯), 와연(瓦硯), 석연(石硯) 등이 있음.


병풍(屛風)

두 쪽 이상의 것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들어 세워 두는 것으로 원래는 실내의 바람을 막는 가구의 한 종류.


봉(鋒)

붓의 털의 끝 부분으로 붓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임.


봉니(封泥)

종이가 발명되기 전의 전한(前漢)시대에 끈으로 엮어진 목편(木片)의 문서를 말아서 진흙으로 봉하고 도장으로 찍은 것.


봉서(封書)

궁중 내에서 근친이나 근신(近臣) 간에 전해지는 사사로운 편지글.


붓말이개

붓을 휴대 할 때 붓의 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발.


비문(碑文)
비석에 새겨진 문자.


비수(肥瘦)

필획이 굵고 가는 정도.


사군자(四君子)
매(梅) 난(蘭) 국(菊) 죽(竹)을 말함.


사절(四切)

←전지(全紙)


서각(書刻)

글씨를 물체에 새김.


서법(書法)

집필, 용필, 운필, 장법(章法) 등 서예 표현에 필요한 방법이나 법칙.


서사상궁

조선 중기 이후 한글의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궁중에서 교서(敎書)나 편지 등을 쓰던 상궁.


서식(書式)
글씨를 쓰는 목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양식(樣式). 일상적인 것으로는 엽서, 일기, 노트 등이 있고, 예술적인 것에는 족자, 액자, 선면 등이 있음.


서제(書題)
붓으로 글씨를 쓸 때 필요한 글귀. 옛날에는 스스로 지어 썼으나, 요즘은 명구(명구) 격언, 시, 시조, 고전 등에서 부분 또는 전체를 발췌하여 사용.
서진(書鎭)=문진(文鎭)
글씨를 쓸 때 종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누르는 도구.


서체(書體)
문자의 서사(書寫) 표현으로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형(形)과 양식(樣式). 즉, 전서, 예서, 행서, 초서, 해서 등을 말함.


서풍(書風)
같은 서체라도 사람에 따라 문자의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즉 서가(書家)의 개성.


선면(扇面)
부채 모양의 종이.


세로쓰기
서제를 세로로 배열하여 쓰는 방법으로 글자의 오른쪽을 맞추어 씀.


세자(細字)
매우 작게 쓰는 글자.


송연묵(松煙墨)
소나무의 그을음에 아교와 향료를 섞어 만든 먹.


수인(首印)
서화의 앞부분에 찍는 도장.


수필(收筆)
점, 획의 끝마무리 과정.


쌍구법(雙鉤法)
붓을 잡는 방법의 하나. 엄지와 집게손가락, 가운데손가락 끝을 모아 붓을 잡고, 약손가락으로 붓대를 밀어서 받치고 그 약손가락을 새끼손가락이 되받쳐 쓰는 방법. 큰 글씨를 쓰는데 적합함.
당나라 서예가인 한방명(韓方明)은 <수필요설(授筆要說>에서
"대저 서예의 묘는 붓을 잡는데 있다. 두 손가락으로 붓대를 싸매면 다섯 손가락도 마땅히 힘을 균등하게 하여야 하며, 요점은 손 가락의 사이를 조밀하게 하여야 하며, 손가락을 굽히고 눌러 가면서 붓을 움직이니 이를 저 송(抵送)이라고도 하여 입으로 전해주는 말이 되었다." 라고 하였다. 이 방법은 첫째 손가락을 밖으로 향하게 하면서 붓대를 눌러주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은 안으로 향하면서 갈고리처럼 굽힌다.
넷째 손가락은 밖으로 들어올리고, 다섯째 손가락은 넷 째 손가락의 아래쪽에 붙여서 움직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여 다섯 손가락이 모두 작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오지법(五指法)'도 '쌍구법(雙鉤法)'의 일종이다.
'쌍구현완(雙鉤懸腕)'이라고 하는 것은 둘째와 셋째 손가락을 둥글게 굽혀 마치 갈고리처럼 만들어서 첫째 손가락과 서로 힘을 균등하게 하고 손가락의 끝으로 붓대를 잡는다.
이렇게 하면 붓대는 똑바로 서게 되어 큰 글씨를 쓸 때에는 위팔을 사용하며 작은 글씨를 쓸 때 에는 아래팔을 사용하여 종이에 팔이 닿지 않으니 붓 움직임이 뜻대로 되어진다.
이렇게 쌍구법으로 붓을 잡는 것은 초학자에게 적당한 방법으로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제창하고 있었다.


아호인(雅號印)

호를 새긴 도장. 주로 주문(朱文), 양각(陽刻)임.


양각(陽刻)
글자를 볼록판으로 새기는 것.


양호필(羊毫筆)

붓의 호를 양털로 만든 붓으로 성질이 부드러움.


액자(額子)=편액

틀에 끼워 표구하는 방법.
틀의 모양에 따라 횡액, 종액 등으로 나눌 수 있음.


억양(抑揚)

한 글자를 쓸 때 좌우의 방향으로 자유롭게 운필하면서 필압의 변화를 주는 필획의 표현.


여백(餘白)

종이에 먹으로 나타난 글씨나 그림의 부분이 아닌 나머지 공간.


역입(逆入)

기필할 때에 붓을 거슬러 대는 방법.


연당(硯堂)

벼루에서 먹을 가는 부분의 명칭.


연적(硯滴)

먹을 갈 때 필요한 물을 담아 두는 용기.


연지(硯池)
벼루에서 물이 고이는 부분.


영인본(影印本)

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과학적인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


영자팔법(永字八法)

영자를 통해 한자의 기본 점획을 익히도록 만들어 놓은 운필방법 여덟 가지.
영자팔법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많은 언급을 하였으며 서예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몇 천년을 내려오면서 서법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고 많은 서체가 등장하고 거기에따른 유파도 분분히 일어났지만 오직 변하지 않고 이어진 것은 바로 팔법(八法)이다.
<금경(禁經)>에 이르기를 "팔법의 근원은 예서(隸書)에서 출발하였으며 장지(張芝), 종요(種
繇), 왕희지(王羲之)등이 이를 전수하여 많은 글씨에 응용하였으니 서예의 가장 요긴한 부분
으로서 분명하게 알지 않으면 안된다.
수(隋)나라 중이었던 지영(智永)은 그 취지를 밝혀 우세남(虞世南)에게 전수하였다.
이대부터 팔법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양빙(李陽氷)은 "옛날 왕희지가 글씨를 배울 때 15년 동안이나 영(永)자에 전력하여 팔 법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모든 글자들을 통달할 수 있었다. 팔법이라고 하는 것은 영(永)자 의 팔획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본다면 영자팔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자팔법은초학자에게 대단히중요한 것으로 해서(楷書)의 기초를 이루며 필법의 요지를 터득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이것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점을 측(側)이라고 한다.
필봉을 기울려 날카롭게 떨어뜨린 다음 붓털을 펴서 진행시키다 발을 디디는 형세를 취 한 다음 붓을 거둔다.
2.가로획을 늑(勒)이라고 한다.
붓을 역입(逆入)한 후 필봉을 지면에 댄다. 그리고는 서서히 진행하다가 급하게 돌리되 붓을 평평하게 해서는 안된다.
3.세로획을 노(努)라고 한다.
지나치게 곧거나 너무 빼어서도 안된다. 너무 곧으면 힘이없게 되므로 곧은 중에도 굽 은 형세를 취하여야 한다.
4.갈고리를 적이라고 한다.
붓 끝을 머무르게 하고 붓을 누른 다음 갑자기 뛰게 하면 힘이 붓 끝에 집중된다.
5.위로 쳐다보는 왼쪽의 윗획을 책(策)이라고 한다.
힘들 들여 붓을 펴면 획의 끝에 힘이 붙는다.
6.길게 왼쪽으로 삐친 획을 약(掠)이라고 한다.
붓을 정성껏 일으키면 곧은 획이 나오게 된다.
처음필봉이 출발할 때 약간 살찌게 하고 그 힘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만일 쭉 빼기만 하고 거두어 들이지 않는다면 가볍고 온화하지 않은 획이 되기가 쉽다.
7.오른쪽에서 짧게 삐친 획을 탁(啄)이라고 한다.
붓을 댈 때에 왼쪽으로 하여 일으킨 다음 빠르고 예리하게 진행시킨다.
획이 거칠면서 도 뾰쪽해야세력을 얻는다.
8.오른쪽으로 삐치는 획을 책이라고 한다.
붓을 역입하여 붓털을 펴서 서서히 진행시키다 끝에 와서 거두어 세우는데 함축의 뜻이 담겨 있어야 한다.
영자팔법의 기본은 획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비록 상세하게 알고 있어도 완전할 수는 없으므로 초학자는 이것에 근거하여 부단히 노력하여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찾길 바란다.


예둔(銳鈍)

필획의 표현이 예리하고 둔한 정도.


오지법(五指法)
붓을 잡는 방법. 다섯 손가락을 모두 이용하여 붓대의 윗 부분을 잡고 쓰는 방법으로 큰 글씨에 적합함.


완급,지속(緩急,遲速)

붓이 움직이는 속도가 완만하고 급하며, 느리고 빠른 정도.


완법(腕法)

글씨를 쓰는 팔의 자세. 현완법(懸腕法), 제완법(提腕法), 침완법(枕腕法)이 있음.


용필(用筆)

점과 획을 표현하는 데 붓의 사용 위치에 따른 기필(起筆), 행필(行筆), 수필(收筆)의 과정.
용필(用筆)을 서법용어로는 '필법(筆法)'혹은 '운필(運筆)'이라고도 부른다.
용필에 대하여 진(진)나라 왕희지는 "매번 바르게 하려면 열 번 더디게 하고 다섯 번 급 하게 하며, 열번 굽게 하고 다섯 번 곧게 하며, 열 번 일어나게 하고 다섯 번 엎드리게 하여 야 글씨가 된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구양순(歐陽詢)은 <용필론(用筆論)>에서 "대저 용필의 법이란 급하게 재촉하고 짧 게 잡으며, 신속하게 당기고 재빠르게 글며, 송곳을 매달고 이슬이 맺히는 듯하게 하며, 자 벌레가 굽히고 뱀이 몸을 펴는 듯하게 하며, 깨끗하면서도 한가롭게 하여 행마다 눈이 아찔 하게 하며, 글자마다 마음을 놀라게 하여 마치 동산에 봄 꽃이 여기저기서 피는 듯하여 둘 러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용필의 묘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용필은 둥근 송곳 모양의 모필에 먹을 듬뿍 묻혀 운행할 때 먹물이 주사기에서 나오는 것 처럼 흐르다 끌고, 누르고, 꺾고, 둥글게돌림에 따라 급하고, 더디고, 굽고, 바르고, 감추고, 나타나고, 일어나고, 엎드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글자의 형태도 이레 따라서 거칠고, 가늘고, 가볍고, 무거운 맛이 나타나 근육과 뼈와 피로아 살이 형성되어 정신과 풍채가 어우러지는 예술을 형성하게 된다. 서예의 관건은 용필에 있으며, 이것은 또 붓 끝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붓끝을 어 떻게 쓰나냐에 따라서 정봉(正鋒), 중봉(中鋒), 장봉(藏鋒), 역봉(逆鋒), 노봉(露鋒), 측봉(側 鋒), 편봉(偏鋒), 순본(順鋒) 등으로 구별된다.
이렇게 많은 방법이 있지만 이중에서 중봉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서 초학자에게는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만약 이것을 무시하게 된다 면 글씨는 정신과 자세를 얻기가 곤란해 진다.
이른바 중봉이라는 것은 붓을 움직 때 붓의 중심이 항상 가운데 있으면서 상하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방법을 쓰면 스스로 점과 획이 굳세게 가라앉으며 무겁게 응축되어져 졸하게 써도 공교하게 되고, 부드럽게 써 도 강한 맛을 얻을 수가 있다.
중봉의 기본 요령은 붓을 바르게 잡아야 한다.
붓을 바르게 잡으면 붓 끝도 자연히 바르게 된다.
그 다음 글시를 쓸 때 점과 획의 요구에 근거하여 누르고 당기고 꺾고 머무르면서 경중과 빠르기의 변화 속에서도 절대로 붓을 한쪽으로 눕히거나 기울여서는 안된다.
붓을 움직일 때의 각도에 따라 중봉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물론 완전히는 안된다. 붓을 움직일 때 의 각도에 따라 중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지법(運指法)

체본의 글자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듯이 연습하는 방법


운필법(運筆法)

붓을 움직여 가는 것, 즉 용필(用筆)에 따른 붓의 운행의 변화에 의해 필획이 표현되는 방법.


원필(圓筆)

기필과 수필의 형이 둥근 원형의 필획으로 우아 유창한 기분이 들며 한글 판본체인 훈민정음 원본에서 볼 수 있음.


유연묵(油煙墨)

기름을 태워서 생기는 그을음에다 아교와 향료를 섞어 만든 먹.


유호(柔豪)

붓의 털이 부드러운 것.


육절(六切)

←전지(全紙) 참조


육필(肉筆)

손으로 직접 쓴 글씨.


윤갈(潤渴)

먹의 농담, 속도에 의해 나타나는 필획이 윤택하거나 마른 느낌.


음각(陰刻)

글자를 오목판으로 새기는 것.


의임(意臨)

시각적인 자형(字形)보다 내면적인 정신을 좇아 임서하는 방법.


인고(印稿)

도장을 새길 때 인면(印面)에 써넣을 글자를 구성한 원고.


인구(印矩)

서화에 낙관을 할 때 도장을 정확하게 찍게 위해 사용하는 도구.


인보(印譜)

도장을 찍어서 모아 엮은 책.


인재(印材)

도장의 재료로서 옥, 금, 동, 나무, 돌 등이 있음.


임서(臨書)

옛날의 훌륭한 법첩을 체본으로 하여 그대로 본 떠 써서 배우는 방법.
효과가 크기 때문에 초심자나 대가나 임서를 많이 사용한다.
옛사람의 글씨를 자습서로 하는 경우와 스승의 육필을 자습서로 하는 경우가 있다.


운지법(運指法)

체본의 글자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듯이 연습하는 방법


운필법(運筆法)

붓을 움직여 가는 것, 즉 용필(用筆)에 따른 붓의 운행의 변화에 의해 필획이 표현되는 방법.


원필(圓筆)

기필과 수필의 형이 둥근 원형의 필획으로 우아 유창한 기분이 들며 한글 판본체인 훈민정음 원본에서 볼 수 있음.


유연묵(油煙墨)

기름을 태워서 생기는 그을음에다 아교와 향료를 섞어 만든 먹.


유호

(柔豪)

붓의 털이 부드러운 것.


육절(六切)

←전지(全紙) 참조


육필(肉筆)

손으로 직접 쓴 글씨.


윤갈(潤渴)

먹의 농담, 속도에 의해 나타나는 필획이 윤택하거나 마른 느낌.


음각(陰刻)

글자를 오목판으로 새기는 것.


의임(意臨)

시각적인 자형(字形)보다 내면적인 정신을 좇아 임서하는 방법.


인고(印稿)

도장을 새길 때 인면(印面)에 써넣을 글자를 구성한 원고.


인구(印矩)

서화에 낙관을 할 때 도장을 정확하게 찍게 위해 사용하는 도구.


인보(印譜)

도장을 찍어서 모아 엮은 책.


인재(印材)

도장의 재료로서 옥, 금, 동, 나무, 돌 등이 있음.


임서(臨書)

옛날의 훌륭한 법첩을 체본으로 하여 그대로 본 떠 써서 배우는 방법.
효과가 크기 때문에 초심자나 대가나 임서를 많이 사용한다.
옛사람의 글씨를 자습서로 하는 경우와 스승의 육필을 자습서로 하는 경우가 있다.


첨삭(添削)

교사가 학생의 작품을 목표에 따라 고치거나 보완해 주는 것으로 주로 주묵(朱墨)을 사용해서 함.


체본

서예 학습에서 임서를 할 때 본보기가 되는 글씨본.


측봉(側鋒)=편봉(偏鋒)

붓의 끝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행필하는 것(→중봉)


침완법(枕腕法)

팔의 자세로 왼손을 오른손의 베개처럼 받치고 쓰는 방법. 작은 글씨를 쓰는 데 적합.


탁본(拓本)=탑본(榻本)

돌, 금속, 나무 등에 새겨진 문자나 문양 등을 직접 종이에 베끼어 내는 것.


파세(波勢)=파책

예서의 횡획의 수필에서 붓을 누르면서 조금씩 내리다가 오른쪽 위로 튕기면서 붓을 떼는 방법. 예서의 특징임.


판본체(版本體)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의 모양을 본뜬 글씨체로 목판에 새겨진 문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팔절(八切)

←전지(全紙)


표구(表具)

표구란 서, 화, 자수,탁본,섬유공예, 사진 등의 작품을 보존, 보관, 전시 또는 완상하기 위하여 족자, 액자, 병풍, 서화첩, 횡권 등으로 표장하는 제반 기술적 방법을 말하며, 넓은 뜻으로는 낡거나 훼손된 작품의 보완과 재생 작업까지도 포함된다.
표구는 원래 일본에서 사용한 용어이며, 우리나라는 한일합방을 전후로 쓰기 시작해서 지금은 널리 일반화되었다.
표구로 불리기 이전에는 표장, 장배, 표배, 장황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장황이 가장 오래전부터 쓰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장황이란 '단장할 장'과 '책꾸밀 황'의 합자로서 글뜻 그대로, 책을 꾸미고 단장하는 기술행위를 말한다.
장황은 이희승 편의 국어 대사전에서도 "책이나 서화첩을 꾸미는 일"로 풀어 쓰고 있는데,
본래 표구라는 개념의 성립은 고대 서적의 제책, 또는 불경의 장정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족자나 병풍들의 본격적인 표장물이 나타나기 전에 간단한 서적이나 사경을 재단하고 꾸며서 마무리 짓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을 장황사라 불렀다.
원래 단순한 배접과 재단, 또는 경권의 쾌선을 치는 작업만을 의미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표구의 개념은 후대에 이르면서 장정기술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게되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수리와 재생을 비롯한 보존기술까지 포함하고 있다.


필력(筆力)

글씨를 쓸 때 필력(筆力)은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요소다.
서예작품상으로 보거나 감 상적인 측면에서 보거나 필력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제일 중요한 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이 것을 가지고 일반 사람들은 힘이 있다 혹은 없다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심개주(沈芥舟)는 <논필법(論筆法)>에서
"옛사람이 말하길 필력은 능히 솥을 들 정도가 되어야 하며, 기(氣)는 가라앉혀야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붓을 댈 때에는 기를 위주로 하되 힘도 함께 이르러야 한다."라고 하였다.
당태종(唐太宗)도 "지금 내가 옛사람의 글씨를 임서 (臨書)함에 있어서 비록 그 형세는 배우지 못하지만 주력하는 것은 골력(骨力)을 구하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형세는 자연히 생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논법은 힘을 어떻게 보내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말은 없지만 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필력이란 현묘하여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작품 중에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감상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글씨를 씀에 금방 터득할 수 있다.
필력의 강약을 표현하는 데 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본기와 기교다.
연로한 서예가나 젊은 작가 심지어는 아동들이라도 모두 필력을 추구하고 표현할 수 있다.
세련되고 박력이 있으며, 건장하고 힘이 있으며, 침착하면서도 무게가 있으며, 순박하고 무던하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필력을 표현한 말들이다.
또한 붓을 쓸 때 빠르고 더디게 하거나, 가볍고 무겁게 하거나, 점과 획을 거칠게 혹은 가 늘게 하고, 또는먹색의 농담에 따라 변화를 주거나, 손가락·팔·팔꿈치·어깨 등의 힘을 운 용하여 필력의 정도를 표현한다.
옛사람들은 항상 침착하면서도 통쾌한 것으로 필력을 형용 하곤 하였다.
침착하다는 것은 글씨가 나부끼지 않는 것으로 붓에 먹물이 충분히 스며들게 하여 종이에 눌러 쓰는 것을 말한다.
통쾌하다는 것은 필세가 유창하면서도 나는 듯하여 거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대조적이지만 통일체를 이루어야만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이 결합되어 생동감이 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손가락, 팔, 팔꿈치, 어깨 등 의 힘이 붓 끝에까지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기교와 붓을 다루는 방법이 숙달되어야 필력의 강약과 후박(厚薄)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필력이 어떻게 도달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논할 때 힘이 건장한 사람은 필력이 왕성하고 힘이 없는 연약 한 여자는 필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필력의 관건은 바로 기교와 붓을 다루는 성숙도의 여부와 관계가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붓을 댈 때에는 기(氣)를 위주로 한다고 하 였으니 이점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글씨를 쓸 때에는 먼저 마음을 움직여야 하며 다음은 몸을 움직여 온몸의 힘이 어깨를 통하여 손가락에 전달되고 이것이 다시 붓 끝에 집중되어 야 비로소 종이를 뚫는 듯한 필력이 나오게 된다. 강유위(康有爲)는 말하길 "온몸의 힘을 쓰려면 반드시 팔이 지면과 수평을 이루어야 하며, 붓은 지면에 수직으로 세워야 하며, 근육을 모르려 팔뚝이 어깨 안에 들어오도록 하여야만 온몸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필력의 실현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니 참고하기를 바란다.


필맥(筆脈)

필획의 뼈대.


필방(筆房)

서예에 필요한 여러가지 용구를 파는 곳.


필법(筆法)

운필과 용필을 통틀어 일컫는 말.


필봉(筆鋒)

붓털 중에서 뾰쪽하고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부분을 필봉(筆鋒)이라고 한다. 이외에 글자의 첫 시작 부분도 필봉이라고 한다.
붓을 움직일 때 붓의 뾰쪽한 부분을 글자의 중심에 오게 하여 글씨를 쓰는 것을 중봉(中鋒)이라 하고, 붓 끝을 감추어 모서리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을 장봉(章鋒)이라고 한다.
만약 붓 끝이 한 쪽으로 치우쳐진 상태로 글씨를 쓰게 되면 편봉(偏鋒)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잘못 된 것으로 간주한다.
모필의 탄력성은 필봉에 의하여 좌우된다.
필봉이 길면 길수록 탄력성도 풍부하고 먹의 함유량도 많아서 글씨를 쓸때 점과 획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원활하 게 할 수 있다.
붓을 움직일 때, 한 번 당기면 곧바로 되고 한 번 누르면 붓이 엎어지고 점 과 획을 꺾고 누르고 글자 사이의 종과 획을 교차시키며 서로 연결하게 하는 것도 모두 필 봉의 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서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용필(用筆)은 바로 필봉에 달려 있다.
붓 끝을 바로 하거나, 기울게 하거나, 거꾸로 하거나, 순하게 하거나, 무겁게 하거나, 가볍게 하거나, 실(實)하게 하거나, 허(虛)하게 하거나 등은 모두 필봉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 중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무겁고 가라앉은 느낌이 나며, 장봉으로 글씨를 쓰면 온후하고 중후한 맛이 나면서 뼈와 근육을 감출 수 있다.
역봉(逆鋒)으로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을 웅건하고 육중하게 할 수 있고, 노봉(露鋒)으로 글씨를 쓰면 정신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으며, 측봉(側 鋒)으로 글씨를 쓰면 험하고 기이한 맛을 나타낼 수 있다.
붓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위와 같은 효과가 나오므로 각자 개성과 특성에 맞는 필법을 선택하여 쓰면 된다.
초학자들이 글씨를 쓸 때에는 항상 붓 끝에 힘을 주어 종이를 뚫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만일 힘을 제대로 주지 않고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이 미끄러져 판에 박힌 듯한 글자가 나오게 된다.


필사(筆寫)

문자를 직접 써서 베끼는 것.


필산(筆山)

쓰던 붓을 얹어 놓는 용구.


필세(筆勢)

운필의 세기.


필세(筆洗)

붓을 빠는 그릇.


필속(筆速)

필획을 긋는 속도.


필순(筆順)

필획을 긋는 순서.


필압(筆壓)

붓의 압력, 즉 누르는 힘.


필의(筆意)

운필에서 점, 획의 상호 간에 보이지 않는 연결성.


필적(筆跡)

붓으로 쓰여진 문자나 그 문자가 실려 있는 책이나 문서.


필획(筆劃)

붓으로 그은 선.


항간(行間)

여러 줄의 글씨를 쓸 때 줄과 줄 사이의 간격.


행필(行筆)=송필(送筆)

점과 획이 기필에서 시작되어 나아가는 과정.


향세(向勢)

마주 보는 두 획을 서로 바깥쪽으로 부푼 듯이 휘게 쓰는 것으로 원필의 경우에 나타나며, 안진경의 해서체에서 많이 볼 수 있음.


현완법(懸腕法)

팔의 자세로 왼손으로 종이를 가볍게 누르고 오른쪽 팔꿈치를 지면과 나란하게 들고 쓰는 방법으로 큰 글씨나, 중간 정도 이상의 글씨에 적합함.
원(元) 나라 진역회(陳繹會)는<한림요결(翰林要訣)>에서 "팔을 공중에 드는 것이 가장 힘이 있다."라고 하였으며, 청(淸)나라 주리정(朱履貞)은 <서학첩요(書學捷要)>에서 "팔을 들면 뼈의 힘이 함께 이르게 되어 글자의 형세도 끝이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현완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칭찬한 말들이다.
팔에서 팔꿈치에 이르는 부분을 책상에 대지 않고 들고서 글시를 쓰게 되면, 온 몸의 힘이 붓끝에까지 미칠 분만 아니라 붓도 곧바르게 되어 종횡으로 움직일 적마다 자유자재로 할 수가 있다. 또한 큰 글씨나 행초를 막론하고 움직임이 영활하기 때문에 생기발랄하면서도 막히지가 않게 된다. 이러한 현완법이 초학자에게 있어서는 쉽지 않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붓을 떠는 현상도 생기게 되어 많은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위축되지 말고 정진하게 되면 팔의 힘도 자연히 조금씩 증강하게 된다.


현판(懸板)

횡액의 형식을 말하기도 하고 서각(書刻)된 것을 일컫기도 함.


형임(形臨)

자형(字形)에 치중하여 사실적으로 임서하는 방법.


호(豪)

붓의 털.


혼서체(混書體)

판본체에서 궁체로 변해가는 과정에서의 한글 서체의 한 종류.


화선지(畵仙紙)

書, 畵 전문 용지로서 보통 전지 한장의 크기가 가로 70㎝,세로 130㎝ 정도임.


황모필(黃毛筆)

족제비 털로 만든 붓.


횡액(橫額)

가로가 긴 형의 액자.


횡획(橫획)

가로로 긋는 필획.


흘림

정자의 점과 획을 서로 연결하여 쓰는 한글 서체의 한 종류.

 

한국인의 손으로 그려진 회화를 총칭하는 의미로 확대 해석할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한국의 전통적 기법과 양식에 의해 다루어진 회화를 말한다. 종래까지 서양화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통용되던 동양화라는 명칭을 일제(日帝)에 의해 타율적으로 조성된 용어로 비판, 이를 주체적 입장에서 개칭하여 최근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갈필(渴筆)
붓에 먹물을 글히 아껴서 그리는 법으로 남화 계통에서 많이 사용한다.
건필(乾筆)이라고도 한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윤필(潤筆)이다. 중국 남종화(南宗畵)는 갈필을 존중하여 노고(老枯)의 취향을 즐겼고, 이에 대하여 북종화(北宗畵)는 윤필을 위주로 하여 먹에 윤택이 있는 것을 존중하였다. 묘법에 알맞게 만들어진 빳빳한 털로 만든 붓도 갈필이라 한다.


감필묘(減筆描)
붓을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적게 사용한 최소한의 선(線)으로써 그리는 기법이며, 자유분방하고도 재빠른 속도로 다루어진다.
주로 선승화가(禪僧畵家)들에 의해 애용되었고 남송(南宋)의 양해가 전통을 확립시킨 것으로서 인물화를 사의적(寫意的)으로 표현할 때 많이 사용된다


강남화(江南畵)
북송(北宋)의 미불에 의하면 강남 지방의 툭유한 화법을 지칭하며, 그 기원은 고개지로부터
라고 한다.
따라서 동원(董源)계통의 산수화뿐만 아니라 강남의 기상을 나타내는 피마준 또는 비백(飛白)이나 초서의 법을 활용한 특징적 묘사 형식을 의미한다고 본다.
원(元), 명대(明代)에서는 미법산수(米法山水)나 강남을 주제로 한 작품을 의미한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 동양 회화(東洋繪畵)를 공부하는 데 필요한 이론(理論)과 실기(實技)를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다.
1675년 청나라 강희(康熙) 18년에 1집이 출간되었고, 그로부터 22년만인 1701년에 3집까지 완성되었다.
개자원은 명나라 말기 중국의 강소성(江蘇省) 금릉현(金陵縣) 남경(南京)에서 살던 부호이자 예술 애호가인 이어(李漁, 1611-1680)의 별장이다.
그의 후원하에 그의 별장에서 작업이 이루어져 개자원화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명나라 말기의 산수화가 이유방(李流芳, 호는 檀園, 1575-1629)이 그린 화본(畵本)을 이어(李漁)가 그의 후손으로부터 입수하여 사위인 심심우(沈心友)가 이유방의 화본을 바탕으로 더하고 편집하고 목판으로 인쇄하여 펴낸 것이다.
역대 화가의 그림을 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유방이 구해 볼 수 있었던 여러 화가들의 필흔을 읽을 수 있다.
《개자원화전》은 크게 3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집은 산수화, 2집은 화훼(花卉)와 초충(草蟲), 영모(翎毛) 등이, 그리고 3집에는 각종 채색 사용법과 역대 명인의 화과(花果), 영모의 모사본(模寫本)이 실려 있다.
우리 나라에 《개자원화전》이 전래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세기 초반에는 널리 알려져 당대의 화가들에게 교과서로서 그 끼친 영향이 많았으나, 지나치게 화보에만 의존한 나머지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지 못한 폐단도 많았다.


건필(乾筆)

물기가 거의 없는 마른 붓을 말하며 이런 상태에서 먹을 찍어 발라 사용한다.
원대(元代)이후의 남송화가(南宋畵家)들이 많이 애용하였다.


경영하필(經營下筆)
붓을 대기 전에 먼저 그림 전체에 대한 구성을 철저히 하여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경직도(耕織圖)
권계도(勸戒圖)의 한 화제. 농민의 근면함과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천자(天子)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또는, 왕후(王后)나 왕자의 교육용으로 제작된 것이 경직도의 기원이다.
즉 남송의 누숙이 고종에게 진상했던 것이 처음이며, 경도(耕圖) 21, 직도(織圖) 24장면에 각각 오언시(五言詩)를 써넣은 것이 본래의 체재지만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계화(界畵)
자를 이용하여 정밀하게 그리는 그림으로 건물 및 성벽을 그릴 때 주로 사용된다.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전설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그림.


고원(高遠)
산수화의 원근법인 삼원(三遠)중의 하나로서 산의 밑에서 높은 봉우리를 올려다볼 때의 모습이다.
산의 높이를 강조할 때 사용되며 삼원중에서 가장 보편적이다.
이때의 산의 모습은 험준하고 가파르며 분명하다.
고화품록(古畵品錄)
육조시대(六朝時代) 사람인 사혁의 저서이며, 일종의 화론집이다.
여기서 사혁은 필법의 요체를 육품(六品) 혹은 육법(六法)으로 나누어 논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동양화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육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운생동(氣韻生動) : 정신성의 표현방법을 말한다.
2. 골법용필(骨法用筆) : 결구(結構) 혹은 운필 방법을 말한다.
3. 응물상형(應物象形) : 사실적인 표현 방법을 말한다.
4. 수류부채(隨類賦彩) : 색채 혹은 명암법을 말한다.
5. 경영위치(經營位置) : 구도 및 위치 설정법을 말한다.
6. 전리모사(傳移模寫) : 사물의 모방법을 말한다.


공필(工筆)
표현하려는 대상물을 어느 한구석이라도 소홀함이 없이 꼼꼼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기법으로 외형묘사에 치중하여 그리는 직업화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사의(寫意)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과석도
괴석도의 한 화제로 구멍이 뚫린 형상의 돌을 주제로 그리는 그림.


관(款) [ 관지(款識), 관서(款署), 관기(款記)]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작가의 이름과 함께 그린 장소나 게작일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그렸는가를 기록한 것이다.
이 기록의 필치나 위치는 그림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관방인(關防印)
서화의 우견측(右肩側)에 압인(押印)한 도장.
약하여 관방이라고도 한다.
광태사학파(狂態邪學派)
15세기 후반과 16세기에 활동했던 명대절파(浙派)후기의 오위(吳偉)와 장로(張路),장숭(莊嵩)과 같은 일군의 직업화가들의 화풍을 가르킨다.
이들이 몹시 거치고 강렬한 필묵법을 사용해서 그린 그림의 경향을 당시의 문인화가들이 미치광이 같은 사학(邪學)이라고 비난하여 부른데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구륵(鉤勒)
형태의 윤곽을 선으로 먼저 그리고 그 안을 먹이나 채색으로 메우는 기법이다.
몰골화(沒骨畵)에 대치되는 수법이다.


구인묘(?蚓描)
지렁이 같은 구불구불한 선으로 그리는 옷 주름의 한 묘법(描法).


국화점(菊花點)
나무 잎 묘법의 일종.
가늘고 자잘한 세선(細線)으로 국화가 활짝 핀 것 같이 8번 혹은 9번을 돌려찍는 수법이며 주로 근경의 나무를 그릴 때 이용한다.


궁정파(宮廷派)
일명 공필인물파라고도 한다.
궁정 인물들의 호화로운 취미 생활을 화려하고 치밀한 수법으로 표현하였다.
이 파는 당에서 오대를 거쳐 송까지는 융성하였으나, 원, 명, 청대에 와서는 쇠퇴하였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당의 주방, 오대의 주문거, 남송의 유송년 등이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근대 서가로서 유명한 오세창이 편술한 우리 나라 최초의 서화가 인명사전이다.
이 사전은 1928년에 출판되었는데 신라 시대에서 근대까지의 총 1,117명의 서화가를 수록하였으며, 수많은 고전적을 참고하여 개개인의 평문을 원문에서 뽑아 실었다.
특히, 말미에 원전을 밝히고 있어 우리 나라 회화사 연구에 기본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금릉팔가(金陵八家)
명조가 청에 망하자 명조 황실 출신의 많은 이들이, 이(異)민족의 통치에 반발하여 심산유곡에 숨어 들어가 살면서, 자신들의 꿋꿋한 지조를 회화로서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 화풍은 각기 개성과 독창성에 있어 시대를 초월한 감이 있으므로 금릉팔괴(金陵八怪)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대개 금릉 출신이거나 그 지방에 숨어 지낸, 팔대산인(八大山人), 석도(石濤), 석계, 매청, 공현, 사사표, 홍인, 전산을 말한다.


금벽산수화(金碧山水畵)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 혹은 북종산수화(北宗山水畵)라고도 한다.
작품은 장식성이 짙고, 고전적이며 채색법이 매우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당대의 이사훈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금은니(金銀泥)

금이나 은가루를 아교물에 개어 만든 안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흰바탕의 종이등에서는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없으며 감지(紺紙)와 같이 어두운 바탕에 사용되어 독특한 효과를 낸다.
주로 사경(寫經)과 같은 종교용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일반서화에도 간혹 쓰여졌다. 은니는 나중에 변질되는 결점이 있다. 이징의 산수도가 유명하다.
이징의 〈이금산수도〉는 검은 비단에 금물을 풀어 그림을 그린 것으로, 대단히 귀한 그림 중의 하나이다.
이런 귀한 재료를 써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궁중 화가로서의 이징의 위치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듯 펼쳐진 산봉우리의 모양이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안견의 화풍을 띠고 있다.
이는 이징이 활동하던 시대에 다른 화가들은 주로 절파 화풍의 산수화를 그렸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먹을 쓰듯 금물로 농담(濃淡)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그려내었는데, 이처럼 화려한 산수화가 걸렸을 벽은 어떠하였을까?」

기명절기(器皿絶技)
진귀한 기물과 꽃가지, 과일 등을 조화있게 배치하여 그리는 일종의 정물화.


기승전결(起承轉結)
구도법(構圖法)의 하나이며, 본래의 뜻은 시문의 작법에서 연유한다.
즉, 처음을 기라하고, 이 뜻을 이어 쓰는 것을 승, 중간에서 변화를 주어 뜻을 바꿈을 전이라 하며, 위의 모든 것을 거두어 끝맺음을 결이라 한다.


기졸(記拙)
오우가의 작자인 윤선도의 증손이며, 조선조 중기의 대표적 화가인 공재 윤두서의 저작으로 일종의 그림 평론집이다.
1982년에 발견되었으며, 그 내용은 안견, 이상좌, 김명국, 등을 비롯한 조선조 전기의 화가 20명에 대한 비평과 함께 중국의 소동파, 조자앙 등에도 평을 가하였다.
또한 공재 자신의 화론(畵論)을 피력하고도 있어 화론 부재의 우리 나라에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 윤두서
윤두서(1668-1715)는 우리 회화사상 조선 중기와 후기를 잇는 중요한 화가이다.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로,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외증조이다.
1693년 스물다섯 살에 진사가 되었으나 당쟁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일생을 보냈다.
1712년 45세 때에는 전라남도 해남의 연동(蓮洞)으로 낙향하여 그림과 글씨를 벗하며 보냈는데, 특히 인물화와 말 그림을 잘 그렸다.
그의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이 모두 그림을 잘 그렸고, 외증손인 다산 정약용에게도 은연중 영향을 미쳐 실학적인 측면에서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현재 해남 종가(宗家)의 녹우당(綠雨堂)에는 그의 대표작인 자화상 이외에도 다양한 학문적인 경향을 알려주는 지도며 그림첩 등이 보관되어 있다.
특히 그의 소장품 중에는 남종 문인화풍의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씨역대명인화보(顧氏歷代名人畵譜)》도 있어서 그가 남종화풍과 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유명한 윤두서의 〈자화상〉과 〈채애도〉 등 60여 점의 소품으로 꾸며진 《해남윤씨가전고화첩》과 다수의 그림이 전하며, 저서로는 《기졸(記拙)》이 있다.

※ 안견
현동자(玄洞子) 안견은 조선조 초기 화가 중 가장 뛰어난 화가이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본관은 지곡(芝谷), 자는 가도(可度)이고, 세종, 문종 연간에 도화서의 전신인 도화원(圖畵院)의
화원으로서 활동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후대의 화가나 화론가(畵論家) 들이 그를 찬탄하는 글을 남기고 있는데, 성현(成俔)은 《용재총화》에서 "안견은 천성이 총민한데다 고래의 명적(名籍)을 많이 보고 연구하여 그 요체를 터득하고 고금 명가들의 장점을 모두 규합 절충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으며, 그의 산수화는 특히 빼어났다"고 적고 있다.
안견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았고, 안평대군의 수장품 중에 많은 수를 차지한 북송대 곽희(郭熙)의 화풍을 토대로 여러 화풍을 소화하여 나름대로 독특한 양식을 형성하였다.
그는 산수화에 가장 특출하였으며, 그 밖에도 초상(肖像), 화훼(花卉), 매죽(梅竹), 노안(蘆雁), 누각(樓閣)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그러나 기록과는 달리 실제로 남아 있는 작품은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 한 점밖에 없다. 그 외에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와 〈적벽도(赤壁圖)〉 등이 그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들 작품을 통해서 그의 화풍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그의 그림인 〈몽유도원도〉 한 폭만 보더라도 그의 뛰어난 기량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 이상좌
이상좌는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 활약한 도화서 화원 출신의 화가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공우(公祐), 호는 학포(學圃)이다. 산수인물화(山水人物畵)를 잘 그렸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생애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숙권의 《패관잡기》에 의하면, 본래 그는 어느 양반의 노비였으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나 중종(中宗)의 특명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고 하며, 또한 1544년에 중종의 초상화를 그린 이른바 어용 화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화가인 이숭효(李崇孝)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숭효의 아버지는 이배련(李倍蓮)이라는 기록도 있어서 이배련과 이상좌가 동일 인물인지 혹은 기록상의 오류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들도 모두가 그가 그렸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지 진필로 확인되는 것은 없다. 이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이다.

※ 김명국
김명국(1600-?)은 조선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본관은 안산(安山)이며, 자는 천여(天汝), 호는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이다.
도화서의 화원으로서 교수(敎授)를 지냈으며,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그림을 청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밤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했으며 몹시 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어서 대부분의 그림들은 취중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기질은 그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즉 굳세면서도 매우 호방하고 거친 필법을 보인다.
그의 작품은 조선 전기의 안견파 화풍을 보이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이 절파 후기의 광태사학파적인 산수인물화이다.
화제는 산수화나 달마도와 같은 선종화가 주류를 이루는데, 대담한 붓질로 간략하게 표현하면서도 대상의 내면적 세계를 잘 표출하였다.


김정희파(金正喜派)
조선왕조말기의 문인화가인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였던 조희룡, 허유, 전기등이 그 대표적인물들이다.
이들의 화풍은 남종문인화를 숭상하였다.


나한도(羅漢圖)

나한은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 최상급의 수행자이자, 공덕을 구비한 학자인 아라한의 약칭.
그 상(像)은 이미 육조(六朝)때부터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였고, 당대에는 현장의 법주기(法住記) 역편(譯編)에 따른 십육나한(十六羅漢)의 신앙과 그림이 나타났다.
그 후 다시 십팔나한, 오백나한을 비롯한 중국적 해석에 의한 많은 변화와 형식이 생겼다.


낙관(落款)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로서 서화(書畵)에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인장(印章)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후한(後漢)의 서화가 채옹은 영제(靈帝)의 명에 의하여 "적가후오대장상도(赤家侯五代將相 圖)"를 그렸고,여기에 찬문(撰文)까지 쓰게 되었는데 이 찬문은 곧 현대 동양화에 있어서 화제(畵題) 또는 제시(題詩)의 시초가 된다.
또한, 서화 작품에 낙관(落款)이라는 일종의 풍류지사(風流之事)를 즐겨하게 되는 것은 중국 송시대(宋時代)부터 그 전통이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세하게 쓸 경우에는 시구(詩句), 연월, 간지(干支), 쓴 장소, 쓴 이유, 증여한 상대방의 성 호를 써넣은 다음 자기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는 수도 있다.


난마준(亂麻)
불규칙하게 결합되어 있는 산이나 바위가 침식된 모습을 나타낸다.
남송원체 화풍 (南宋院體畵風)
궁정 취향에 따라 화원을 중심으로 이룩된 직업화가들의 화풍을 말하며 궁정의 유행이 때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일정한 양식(樣式)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남송화
남송시대에 강남지방의 온화한 기후와 나지막한 산, 그리고 물이 많은 특이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이룩한 화원의 화풍을 말하며 그 중에서도 마하파화풍이 전형적인 것이다.


남종화(南宋畵)
중국 회화를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基昌)과 막시룡(莫是龍)등이 당대 선종의 남북분파에 따라 구분 지은데서 생긴 명칭이다.
남종화는 대체로 인격이 높고 학문이 깊은 선비가 여기(餘技)로 수묵(水墨)과 담채(淡彩)를 써서 내면세계의 표출에 치중하여 그린 간일하고 품격 높은 그림을 말한다. 원말(元末) 이후로는 남종화가 구도나 준법, 필법, 수지법 등에서 일정한 화법사의 형식화 이루어 졌으며 이것을 문인화가뿐만 아니라 직업화가들도 본받아 그렸었다.


다자도(多子圖)
길상도(吉祥圖)의 한 화제로 아들이 많고, 또한 이들이 건강하고 총명하게 자라 집안을 크게
빛낼 수 있도록 기원하는 그림을 말한다.
보통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1.씨가 많은 석류를 그린다.
2. 백명의 사내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광경을 그린 백자도(百子圖).
3. 아들, 손자가 많았던 고사인물(故事人物), 또는 이런 노인 옆에 여성과 많은 아이들이 있는 그림.


단선점준

2-3mm정도의 짧은 선이나 점의 형태를 띤 준법으로 가늘고 뾰족한 붓끝을 화면에 살짝 대어 약간 끌거나 터치를 가하듯하여 집합적으로 나타낸다.
산이나 언덕의 능선 주변, 또는 바위의 표면에 촘촘이 가해져 질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며, 우리 나라 15세기 후반의 산수 화에서 필획이 개별화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전반경에 특히 유행했었다


단필마피준법(短筆麻皮)
짧은 마(痲)를 풀어 놓은 듯한 약간 거친 느낌을 주는 준으로 부서지고 각진 바위나 산봉우리의 효과를 낼 때 주로 쓰인다. 남당(南唐)거연(巨然)의 작품에서 잘 볼 수 있다.


담묵(淡墨)
흐린 먹. 물을 많이 주어서 연하게 사용하는 필법


대도도(待渡圖)
강가의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는 인마의 모습을 주제로 한 풍속화의 한 화제.


대부벽준법(大斧劈)
큰 도끼로 찍었을 때 생기는 단면과 같은 모습의 준으로 붓을 기울인 자세로 쥐고 폭 넓게 끌어 당겨 만든다. 수직의 단층이 더욱 부서진 효과를 낼 때 사용하며 남송의 이당(李唐), 마원, 하규 등이 애용했다.


대칭구도 (對稱構圖)
좌우가 대체로 대칭을 이루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구도를 말한다.


대혼점(大混點)
타원형처럼 생긴 비교적 큰점으로, 붓을 옆으로 뉘어서 혼란하게 찍는다.
무성한 여름 나뭇잎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며 산의 묘사에도 가끔 쓰인다.


도말만폭(塗抹滿幅)

화면 전체를 빈틈없이 쳐 바르거나, 전체를 그림으로 채워서 여백의 미를 살리지 못한 그림을 일컬으며, 매우 답답하여 운치가 없는 죽은 그림이 된다.


도석화(道釋畵)

도교 및 불교 관계의 인물화를 말하며, 대개 종교상 숭배할 만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인 달마대사의 상은 도석화의 대명사와 같이 쓰인다.


도원도(桃源圖)

고사산수화(故事山水畵)의 한 화제. 도원은 호남성 도원현에 있는 무릉도원동의 약칭이다.
동진의 도연명이 [도화원기]를 지은 후로 도원이란 말은 별세계 또는 선경(仙境)을 뜻하게 되었다.
복사꽃이 어우러지는 산언덕이 그려지며 물가에는 평온한 정경으로 어부와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초기의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도화서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는 기관이다.
이 도화서는 처음에는 도화원(圖畵院)이라고 하다가 1469년(예종 1) 이후부터 도화서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관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는데 신라에서는 채전(彩典), 고려에서는 도화원, 그리고 조선에서는 도화서라고 하였다.
도화서는 예조(禮曹)에 속하는 종육품 아문(從六品衙門)으로서 제조(提調) 1명과 별제(別提) 2명, 그리고 화원(畵員) 2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화원은 종육품인 선화(善畵) 1명, 종칠품인 선회(善繪) 1명, 종팔품인 화사(畵史) 1명, 종구품인 회사(繪史) 2명 등 녹봉을 받는 5명의 직위가 있었고,
이외에 3명의 화원만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였고 나머지는 그것마저도 없는 미관 말직(微官末職)이었다.
별제는 화원으로서 진급할 수 있는 최고의 직위였으나, 도화서의 화원들은 신분적으로 천시되었기 때문에 화원에서 진급하여 올라가기보다는 그림을 이해하는 사대부(士大夫)가 임명되었다.
이렇게 낮은 신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고을의 현령(縣令)으로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화원을 뽑을 때는 대나무(竹), 산수(山水), 인물(人物)과 영모(翎毛), 화훼(花卉) 등을 4등급으로 나누어 이 중 2가지를 보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높은 등급인 대나무와 산수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는 유교(儒敎)를 숭상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화서는 조선시대 말 순종 때까지 존속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수요가 많아 인원과 규정이 달라졌다
.

독필(禿筆)
몽당 붓.


동경(同景)

여러 면 전체가 한 주제의 그림으로 이어진 병풍.
연결병풍.


두방(斗方)
작은 정사각형의 그림으로 보통 화첩으로 엮을 때 사용된다.


마아준(馬牙)
남송의 화가 조백구가 창안한 것으로 그 생김새가 말 이빨과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마피준법(麻皮)
마(馬)의 올이 얽힌 것 같은 준으로 다소 거친 느낌을 준다.
피마준법(披麻)과 비슷하며 남당(南唐)의 동원(董源)이 많이 사용했다.


마하파(馬夏派)
남송(南宋)의 화원에서 활약했던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해 형성된 화파로 주로 직업화가들 사이에서 추종되었다.
마하파의 화풍은 강남지방의 특유한 자연환경과 이를 향유하는 인물을 소재로 하여 근경에 역점을 두되 한쪽 구석에 치우치게 하는 일각구도(一角構圖: 그림의 아래부분 한쪽 구석에 중요한 경물(景物)을 근경으로 부각시켜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구도로 '변각구도'라 고도 함)에, 원경은 안개 속에 잠길 듯 시사적으로 나타내어서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산과 암벽의 표면을 부벽(斧劈)준법으로 처리하고 굴곡이 심한 나무를 근경에 그려넣는 것 등도 이 화풍의 특징이다.


말각조정(抹角藻井)
벽의 네 벽을 좁혀서 덮는 천정가구법(天井架構法)으로 흑해 연안에서부터 근동(近東)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고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고구려에서만 축조되었다.
네 벽 위에 각 중앙점에서 인접 격의 중앙점과 연결되는 삼각형공간을 돌로 덮어서 네 모서리를 줄이면 천정면적이 반으로 줄어들게 되는데 이 방법을 반복하여 마지막 공간을 판석으로 덮는 가구법이다.
완성된 천정을 실내에서 쳐다보면 정사각형속에 마름모꼴이 있고 그 속에 다시 정사각형이 있는 모양이 된다.


망천도(輞川圖)

중국 협서성 람전현에 있는 곡천(谷川)을 망천이라 부른다.
l 당대(唐代)의 왕유가 이곳에 망천장이란 별장을 짓고 풍류를 즐겼다.
이로부터 이 일대의 뛰어난 자연경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데서 이 화제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명황행촉도(明皇行蜀圖)
당의 현종 황제가 안록산의 난을 피해 756년에 촉으로 가게 된 고사를 주제 삼은 그림.
촉으로 가는 험한 산세와 황제 일행의 화려한 인마행렬의 모습이 그려진다.


모(摹)
진작(眞作)을 보고 사실 그대로를 정확하게 옮겨 그리는 것.


몰골화(沒骨畵)

윤곽선을 써서 형태를 정의(定義)하지 않고 바로 먹이나 채색만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을 말하며 구륵화와 대치되는 기법이다.
윤곽선이 없기 때문에 몰골, 즉 뼈없는 그림이라 부르는 것이다.


무진도(無盡圖)
보통은 강산무진도라고 한다.
길게 그린 산수화로 횡축에 그려진다.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44.1cm×856cm)가 유명하다.

묵화(墨畵)
수묵으로 그려지는 모든 종류의 그림을 총칭한다.
약간의 부분적 담채(淡彩)가 있어도 수묵 표현이 주조인 경우는 묵화의 범주에 든다.


문방사우(文房四友)

종이, 붓, 먹, 벼루벼


문인화(文人畵)

문인이나 사대부(士大夫)들이 여가(餘暇)로 그린 모든 그림을 말한다.
문인화는 종종 남종화와 같은 의미로 불리어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문인화가들 중에는 직업적인 화가들의 화풍을 따라 그리는 경우도 있어서 문인화가 곧 남종화라고 하는 정의는 내리기 어렵다.
강희안이나 신사임당이 그 예라 하겠다.


미법 산수(米法山水)
북송대(北宋代)의 문인화가 미불과 미우인(米友仁)에 의해 이룩된 산수화풍으로 이들의 성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미점(米點)을 구사하여 산이나 나무 등을 그리고 비온 뒤의 습윤한 자연이라든가 안개 낀 자연의 독특한 분위기 묘사에 특출한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원.명.청(元明淸)으로 이어지면서 남종화의 한 조류를 이루었다.


미점(米點)
붓을 옆으로 뉘어서 횡으로 찍는 점법으로 미불이 창안한데서 그의 성을 따 붙여졌다.
녹음이 무성한 여름산이나 수림(樹林)을 그릴 때 많이 사용된다.


민화(民畵)
정통화에 반대되는 개념이며 보통은 평민, 천민, 민중 등에서 따온 말이다.
민화의 특색은 다음과 같다.
1. 람(藍), 주(朱), 황(黃), 록(綠)을 주색(主色)으로 한 진채(眞彩)를 사용하므로 무척 화려하다.
2. 대개가 아마추어의 그림인 만큼 매우 자유스러우며, 유머가 있어 과장과 천진스러움이 강하게 나타난다
3. 의식용과 생활의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여 그렸기 때문에 화제(畵題)는 민속 종교적인 경향이 뚜렷하다.
4. 거의가 낙관이 없다.


반차도(班次圖)
정부 의식에 문무백관이 늘어서는 차례를 기록한 도표 혹은 그림.


방인(方印)
4각형 인장(印章) 을 말한다.


백묘인물화(白描人物畵)
색채나 음영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윤곽선만으로 이루어진 인물화를 말하며 북송의 이공린에 의해 전통이 확립되었다.


백묘화(白描畵)
색채나 명암이 없이 윤곽선만 그린 그림.
백화(白 )라고도 한다.
백문(白文)
음문(陰文)과 동일하다.


번두준

산봉우리를 그릴 때 평평하게 하여서, 여럿이 노닐 수 있게 한 공간을 말한다.


법첩(法帖)

체법(體法)이 될만한 명필의 서첩(書帖).


변장(邊章)

서명의 옆이나, 그림의 하단부 양쪽 구석을 제외한 부분에 찍힌 도장.


보상화문(寶相華文)
고대 오리엔트와 그리이스의 장식요소인 부채꼴 형식의 팔메트잎을 변화시켜 이룩된 화려하고 복잡한 양상을 띤 꽃모양의 문양으로 수(隋) 당(唐)시대에 불교 미술에서 자주 묘사되었다.


부벽준
바위의 표면 처리에 많이 쓰이는 법으로, 붓을 옆으로 비스듬히 뉘어 재빨리 들면서 끌어당겨 마치 도끼로 찍었을 때의 자국 같은 모습이다.
바위의 모난 모양을 표현하고자 할 때 많이 쓰며, 남송원체(南宋院體) 화가들이나 명대의 절파(浙派) 화가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다.
자국의 크기에 따라 대부벽준과 소부벽준이 있다.


북종화(北宗畵)
화원(畵員)이나 직업적인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진한 채색(彩色)과 꼼꼼한 묘사로 마치 사진처럼 외형 묘사에 주력하여 그린 장식적인 그림을 말한다.
선비 화가들이 주로 그렸던 남종화(南宗畵)와 대(對)가 되는 표현이다.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其昌)과 막시룡(莫是龍)은 산수화의 화풍을 남종화와 북종화의 둘로 나누었는데, 북종화를 당나라 때의 이사훈(李思訓)과 이소도(李昭道) 부자에서 시작되어 송대(宋代)의 이당(李唐), 유송년(劉松年), 조백구(趙伯駒), 마원(馬遠), 하규(夏奎), 명대의 대진(戴進), 오위(吳偉), 장로(張路) 등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 용어가 나오게 된 동기창의 분류 기준으로는 신분의 고하가 분류의 기준으로 작용하였던 듯하나, 우리 나라에 유입되어서는 신분상의 구분이기보다는 이들 화가들의 화풍을 본뜬 화풍상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분본(粉本)
초고(草稿), 화고(畵稿) 혹은 밑그림이라 말한다.
옛날의 화고가 호분(胡粉)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비백(飛白)
서, 화를 그릴 때 붓의 먹물이 건조해서 붓자국에 흰 공간이 들어간 모양.


사계화(四季花)

작약, 철쭉, 한국(寒菊), 동백.


사녀도(仕女圖)
궁중에서 생활하는 여인들을 주제로 한 그림.
이런 그림은 한 대(漢代)에서 시작되었으며, 수, 당대에 이르면 그 성행이 눈에 띈다.
그 대부분이 오대남당(五代南唐)의 주문구의 필법을 따른 예가 많았다.
명, 청대에 이르러서는 상류계급의 부녀를 그린 그림에도 '사녀도'란 이름이 붙는다.


사신 (四神)

청용(푸른용), 백호(흰호랑이), 주작(붉은공작), 현무(검은 거북이)를 말하며 각기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신으로 방위에 따라 정해진 색깔로 표시하였다.
특히 고구려 후기 고분벽화의 단실묘에 많이 그려졌다.
청용 - 동쪽(東), 푸른 빛 / 백호 - 서쪽(西), 흰색 / 주작 - 남쪽(南), 붉은 색 / 현무 - 북쪽(北), 검은 색


사의(寫意)
사물의 외형만을 중시해서 그리지 않고 작가의 내면세계의 뜻을 자유롭게 묘사하거나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하며 남종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산배화사(山背畵師: 야마시로 에시)
일본(日本) 고대 야스카(飛島)시대에 야마토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야마시로 고마노 무라지와 동계(同系)의 고구려 후예로 추정되는 씨족(氏族)화가 집단을 말한다.


삼원(三遠)
동양 산수화에 있어서 고원(高遠), 심원(深遠), 평원(平遠)으로 나누어지는 3종류의 원근법을 말한다.


삼절(三絶)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또는 한시대의 뛰어난 화가와 서예가 새사람을 묶어서 부를 때도 사용된다.


선염(渲染)
먹이나 색채로 각 단계의 점직적인 변화가 보이도록 축축이 번지듯 칠하는 기법으로 붓자국이 하나하나보이지 않게 칠한다.


선종화(禪宗畵)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이념이나 그와 관계되는 소재를 택하여 다룬 그림을 말하며 종교화로서보다 감사화로서의 의의가 더 크다.
전통적인 불교회화와는 달리 수묵(水墨)을 사용하여 간일(簡逸)한 화풍을 이루는 게 상례이다.


소부벽준법(小斧劈)

붓을 옆으로 비스듬히 뉘어 낚아채듯 끌어서 생긴 준으로 작은 도끼로 찍었을 때 생기는 단면과 같은 모습이다. 단층이 모난 바위의 효과를 내며 대부벽준과 더불어 남송원체 화가들이나 절파화가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우리의 전통회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소상팔경도 瀟湘八景圖]라는 제목의 원류는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의 이덕익이라는 화가가 즐겨 그린 것으로 알려지며, 중국의 호남성 동정호 남쪽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류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여덟가지 빼어난 절경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소혼점(少混點)
붓끝으로 찍는 파원형의 작은 점으로 흐리고 진한 것을 뒤섞어 혼란하게 그린다.
산이나 바위, 나뭇잎등의 묘사에 폭넓게 사용된다.


송설체(松雪體)
원대(元代)의 문인화가 조맹부의 서체(書體)를 말하며 그의 호(號)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서(楷書)의 균형잡힌 균정미(均整美)와 행서(行書)의 유려함을 조화시킨 서체로서 우리 나라에는 고려 말기에 유입되어 조선 초기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었다.


수지법(樹枝法)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줄기, 가지, 잎등의 표현기법과 포치 방법을 말하며, 시대와 화파에 따라 특징을 달리하기 때문에 작품의 연대 판정과 양식의 변천을 추구하는데 좋은 증거가 되어 준다.


수직준법(垂直)
정선이 이룩한 준법으로 예리한 필선을 죽죽 그어내려 나타낸다.
대개가 강하고 활달한 맛을 내며 특히 금강산(金剛山)의 내외경의 뾰족한 암산(岩山)을 묘사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실경산수(實景山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명승(名勝)이나 고적(古蹟) 등 실제의 경치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다. 조선시대에는 진경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진경산수라고 하기도 하였다. 동양의 수묵 산수화는 실제의 경치를 사생에 의해 그리기보다는 관념적 이상향의 산수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시기나 지역에 따라 다른 화풍의 산수화가 발달하게 된 것은 실재하는 산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인들의 그림을 방(倣)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당시에는 선인들의 그림이나 화보를 보고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시대에도 이녕(李寧)이 〈예성강도(禮城江圖)〉와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 〈금강산도(金剛山圖)〉 등을 그린 기록이 있어 실경산수화가 그려졌을 것이나 남아 있는 작품은 없다. 실경산수화가 새로운 장르로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정선(鄭敾)에 의해서이며, 그의 일파에 의해 더욱 융성하였으나, 조선 말기김정희 등에 의해 만연했던 남종 문인화에 의해 그 세가 꺾이고 만다.


심원(深遠)
삼원중의 하나로서 앞에 있는 산이나 봉우리로부터 뒤에 있는 산들을 들여다볼 때의 모습이며 산의 깊이를 강조할 때 사용된다.


안견파

15세기 중엽에 이르면 안견은 조선시대 최고의 산수화가로 곽희파화풍을 토대로 마하파 화풍 등 다양한 화풍을 종합하여 독자적인 [안견파화풍]을 이루었다.
이 화풍(양팽손, 정세광, 신사임당, 이정근, 이징 등)은 조선초기는 물론 조선 중기에까지 이어졌고 일본에 건너가 주문파(周文派)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안견은 산수화만이 아니라 초상화, 화훼, 매죽, 누각, 준마, 의장도 등 다양한 화제를 그렸던 것으로 밝혀지지만 현재는 오직 [몽유도원도]만이 진작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평대군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당대 제일의 송설체(松雪體)서예가였고 최대의 중국화(中國畵) 소장가였으며 시.서.화에도 능했다 .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로부터 원대(元 代 )의 조맹부(趙 孟 부) 등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중국의 명화, 명적(名跡)을 많이 소장하고 고전(古典) 에 밝았던 안평대군의 소장품에 관해서는 신숙주(申.叔舟)의 보한재집(保閑齋 集)에 실린 [화기(畵記)]에 그 내용이 알려져 있다.
안평대군은 1445년까지 도합 222 축(軸)이 달하는 서화를 수집하였는데, 그중에는 그가 아끼던 안견의 작품 30점과 일본의 화승 철관(鐵關)의 작품이 4점 외에 그 나머지는 모두 중국 역대(歷代)의 서화였다.
[화기]에 실린 소장품의 특징을 보면 첫째, 안평대군은 주로 연대가 올라가는 송.원대의 작품을 모았고, 둘째 안견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중국의 서화만을 모으려 하였으며, 셋째 산수화는 곽희, 이간, 유융, 나치천, 등 소위 이곽파의 작품을 모았다는 사실이다.
안평대군의 비호를 받았던 안견이 곽희파화풍을 토대로 자성일가(自 成 一家)를 이룬 것은 아마도 그의 타고난 재주 이외에 안평대군을 오랫동안 가까이 섬김으로써 안평대군 소장의 명품들을 깊이 연구하고 수용할 수 있었던 데에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양문(陽文)
주문(朱文)과 같다.
도장의 글자부분이 양각되어 인주에 묻혀 찍으면 흰 바탕에 자획이 붉은 색으로 나타나는 인장(印章)이다.
단독으로 이용할 때 주문방인(朱文方印)을 많이 쓴다.


양주팔괴(楊洲八怪)
청조의 건륭년간(乾隆年間, 1736~95)에 큰 운하의 수리(水利)와 소금판매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강소성 양주에 모였던 8명의 개성적인 화가.
보통은 김농, 황신, 이선, 왕사신, 고상, 정섭, 이방응, 나빙을 말하지만 고봉한, 민정을 보태기도 한다.
이들 전부에다 화암을 보태어 양주화파라고도 한다.


어락도(漁樂圖)
어민의 모습 또는 천렵의 정경을 주제 삼은 그림.
옆으로 길게 그려지는 두루마리의 연속화면에 강물과 늪이 주위의 자연경과 더불어 전개되
고, 그 속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 올리는 어민의 표정이 담겨진다.
대개는 끝머리쯤에 가서 술잔을 기울이며 천렵을 즐기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여사잠도(女史箴圖)
서진(西晋)의 장화(232~300)가 찬(撰)한 [여사잠]을 회화화(繪畵化) 것.
혜제의 왕비 고씨가 방종하는 것을 두려워 한 장화는 여사(女史, 후궁에서 왕비의 범절을
돕던 여인)의 직분을 훈계하고, 왕비 일족을 풍자할 의도로 그 문장을 찬술하였다고 한다.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당의 하동 출신인 장언원의 저서로서 총 10권으로 되어있다.
그 내용은 앞의 3권은 화론(畵論)이며, 나머지 7권은 중국역대화가의 소전(小傳)이다.
참고 문헌의 출전을 정확히 밝히고 있어, 고증의 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연주장(連珠章)
두 개처럼 되어 있는 하나의 도장.


영모화
새와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원래 영모는 새털의 의미로 그것이 새 종류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두 글자를 각각 떼어 새 깃과 동물 털이라는 의미로 확대 해석됨으로써 새와 동물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쓰여진다.


오대당풍식(吳帶當風式)
고대의 옷을 표현하는 묘사법의 한 스타일을 의미하는 말이다.
조선미술사연구(朝鮮美術史硏究)의 저자 윤희순이 상기의 저서에서, 진의 보비흥이 옷을 그릴 때, 마치 옷이 물에 젖어서 몸에 달라붙는 것과 같이 그리며, 당의 오도현은 옷이 바람에 날려 휘날리는 것과 같이 묘사하였다고 했다.
오채(五彩)
중국사상의 원천인 오행(五行)사상에서 비롯한 것으로 황(黃), 청(靑), 적(赤), 백(白), 묵(墨)의 5가지 색깔을 말한다.


요철법(凹凸法)
그림 속의 형태에 입체감을 부여하기 위해 채색을 써서 명암의 단계를 번지듯 점진적으로 나타내는 기법이다.
지중해 지역의 후기 고전 미술로부터 유래되어 인도와 서역을 거쳐 동아시아로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장승요가 전통을 확립시켰으며, 서쪽에서 전래되었다 하여 태서법(泰西法)이라고도 한다.


우점준법(雨點)
아주 작은 타원형으로 찍혀진 붓자국이 빗방울같이 생긴 준이다.
산의 밑부분에서는 크게 나타내며 위로 올라갈 수로 작게 한다.
북송의 범관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운두준법(雲頭)
풍화 작용을 받아 침식되어 마치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 같이 생긴 산을 표현하는 준법으로 이곽파화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체 화풍(院體畵風)
궁정 취향에 따라 화원을 중심으로 이룩된 직업호가들의 호풍을 말하며 궁정의 유행이 때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일정한 양식(樣式)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윤필(潤筆)
짙은 먹이 풍부하게 묻은 붓을 말하며 대담한 터치를 필요로 할 때 잘 사용된다.


음문(陰文)
백문(白文)과 같다.
도장의 글자 부분을 음각한 것으로 찍으면 붉은 바탕에 자획이 희게 나타나는 인장(印章)이다.
도장 두 개가 이용될 때에 백문방인(白文方印)을 위쪽에 주문방인(朱文方印)을 아래쪽에 찍는 것이 일반적이다


음영법(陰影法)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하여 그 물체가 빛을 받아 이루는 그림자를 나타내어 그림을 그리는 방법


이곽파(李郭派) 화풍
(곽희파화풍 이라고도 한다)
북송대의 이성(李成)과 곽희(郭熙)에 의해 이룩된 화풍으로 금(金)과 원대(元代)에도 이 화풍을 많이 따라 그렸다.
이성의 화풍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보다 화풍이 뚜렷한 곽희의 이름을 따서 '곽희파'라고도 불리어진다.
대체로 이곽파의 화풍은 뭉게구름처럼 보이는 침식된 황토산(黃土山)을 즐겨 그리되 그 표면 처리에 있어서 필선이 하나하나 구분되지 않도록 붓을 엇대어 쓰며, 곽희 때부터는 산의 밑동을 밝게 표현하는게 특색이다.
산수(山水)는 대개 근경. 중경. 원경이 점차 상승 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향을 띠고, 나뭇가지들은 게발톱처럼 보이는 해조묘(蟹爪描)로 그려지며 소나무 잎은 송충이털을 연상시키게 묘사된다.
산의 윤곽선 바깥쪽에 이빨모양으로 돋아나 붙어 있는 치형돌기(齒形突起)형태를 쓰는 것도 이곽파 화풍의 특징중에 하나이다.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
고대 그리이스의 식물문양에 기원을 두고 있는 어켄서스 계통의 덩굴무늬로서 S자형으로 연속되는 리드미컬한 문양 형식이다.


저묵산수

천강산수(淺絳山水)라고도 한다.
면저 수묵(水墨)으로 그림의 기초를 그리고, 여기에 엷게 색을 칠하여 주는 일종의 담채법
(淡彩法)을 말하며, 원대의 황공망 이 창안하였다.


전신(傳神)
전신사조(傳神寫照)가 줄어서 된 말로 초상화에 있어서 인물의 외형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고매한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초상화론(肖像畵論)이다.
절대준(折帶)
대(帶)가 갈라진 것 같은 준으로 여러 개의 단층이 모여 지층을 이룬 것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절파 화풍(浙派 畵風)
명초(明初) 절강성 출신의 대진(戴進)을 시조로 하며, 그와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절강 지방 양식의 영향을 받았던 화가들의 화풍을 집합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남송원체 화풍을 주로 하여 거기에 이곽파 화풍 등 여러 요소를 융합하여 이룩된 복합적 양식을 보여주며 15세기 후반부터 명대 화원의 주도 화풍이 되었다.
대체로 남송원체 화풍에 중경을 삽입시킨 복잡한 구성과 거친 필치를 구사하여 그림 전체가 다소 조잡한 느낌을 준다.


점경(點景)
그림에 곁들인다는 뜻.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곁들이는 것으로 산수화에 있어 돛단배, 산사, 탑 등을 가르킨다.


점태(點苔)

돌을 그릴 때 작은 점을 찍어서 이끼 혹은 풀 등으로 보이게 하여 오래된 돌임을 나타내기도 하며, 먼 산의 침엽수림이나 잡초 등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현미를 느끼게 한다.


정선파(停船派)

조선 후기의 정선이 이룩한 진경산수 화풍을 따랐던 일편의 화가들을 함께 지칭한다.
강희언, 김득신, 최북 등을 위시한 많은 화가들이 따라 그렸다.
이 화파의 영향은 민화(民話)에 까지 미쳤다.


제발(題跋)

그림이나 표구(表具)의 대지(臺紙)위에 쓰여진 그 그림과 관계되는 산문(散文)의 글로서 화가 자신이 쓰거나 다른 사람이 쓰기도 한다.
이 글을 통하여 그림이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제시(題詩)

그림이나 표구의 대지 위에 그림이나 받은 감흥 등을 그 그림과 같은 기분으로 적은 시다.
제시와 그것을 쓴 서체(書體), 그리고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을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이끄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주문(朱文)
양문(陽文)과 같다.


준법

형태의 외형을 끝낸 다음에 산이나 바위, 토파(土坡)등의 입체감과 명암, 질감을 나타내기 이해 표면을 처리하는 유형적(類型的)수법을 말하여 약 25가지의 준법이 있다


지어본(紙魚本)

지어(紙魚)가 갉아먹어 구멍을 낸 서화나 책을 말하며, 충입본(蟲入本)이라고도 한다.


지화(指畵, 指頭畵)

붓대신 또는 붓과 함께 손톱이나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


직찰준(直擦 )

붓을 똑바로 세워주고 비비면서 그려 나가는 것으로, 오대(五代)의 관공, 북송의 이성이 상용하였다.


직필(直筆)

서예의 필법 중의 하나이며, 붓을 종이에 수직이 되게 잡고 쓰는 방식이다.
그 느낌은 엄정(嚴正)하며 장중(壯重)하다.
따라서 강인한 표현법에 적당하다.


진경산수(眞景山水)

조선 후기 정선(鄭敾)에 의해 형성된 화풍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 실재하는 경관(景觀)을 남종화에 바탕을 두고 발전된, 정선 특유의 화풍을 가미하여 그린 산수이다.
이 화풍은 조선 후기의 화원들 사이에서 한때 널리 추종되었다.


찰염(擦染)

먹이나 색채를 축축히 문지르듯 칠하는 것으로 서서히 물이 스며들 듯 변하는 효과를 낸다.


철선묘(鐵線描)
굵고 가는 데가 없이 두께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꼿꼿하고 곧은 필선으로, 매우 딱딱하고 예리하여 철사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붓을 세워 강하게 베풀고 선이 길며 인물화에 사용된다.


철선준법(鐵線)
철사와 같은 곧은 필선의 준으로 수직으로 연결된 바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청록산수화
여러 색깔의 안료로 채색된 산수화를 말한다.
산을 군청색 계열과 녹청색 계열로 채색하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생긴 것이다.
주로 먼 산은 군청색 계열로, 앞쪽의 산은 녹청색 계열로 채색된다.
산꼭대기나 산 주름의 능선은 녹청색 위에 군청을 덧칠하는 일이 많으며, 금물을 함께 사용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금벽산수(金碧山水)라고 하기도 한다.


치형돌기(齒形突起)
산의 윤곽선 바깥쪽에 이빨 모양을 돋아나 붙어 있는 작은 형태로 이곽파 화풍,
특히 금대(金臺) 및 원말(元末) 명초(命招)이 매너리즘이 심한 산수도에 자주 나타난다.
타지(拖枝)
마치 밑에.서 끌어당긴 것 같이 거의 90도로 꺾여 굴곡이 매우 심한 나뭇가지를 말하며 마하파화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태서법(泰西法)
요철법과 같다.


편파구도(偏頗構圖)

그림을 종(縱)으로 2분할 때 한쪽 반이 다른 쪽 반보다 더 강조되고 더 큰 무게가 주어진,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구도를 말한다.
조선 초기 안견파(眼見派) 작품에서 흔히 발견된다.


평원(平遠)
삼원중의 하나로서 근산(近山)들로부터 원산(遠山)들을 보았을 때 거의 평면적으로 전개되어 있는 모습으로 고요한 분위기를 준다.


피마준법(披麻)
마(麻)의 올을 풀어서 늘어놓은 듯 실같은 모습의 준을 말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준 가운데 하나로 특히 남종화와 관계가 깊다.
원말(元末) 4대가(大家)의 한 사람인 황공망이 즐겨 사용하였다.


하엽준법(荷葉)
연잎 줄기와 같이 생긴 준으로 산봉우리에 주로 사용된다.
물이 흘러내려 고랑이 생긴 산비탈 같은 효과를 내며 조맹부가 창안한 후 남종화가들이 종종 사용하였다.


한림(寒林)
잎이 떨어져 버린 앙상하게 헐벗은 가지만 있는 차갑고 삭막한 나무숲을 말하며 이를 소재로 택하여 다룬 그림도 가리킨다.


해조묘(蟹爪描)
나뭇가지를 게발톱처럼 날카롭게 묘사한 수지법(樹枝法)으로 이곽파 화풍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원(畵員)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도화원(圖畵院)(후에 도화서(圖畵署)로 개칭)이 설치되 많은 화원들이 배출되었다.
화원들은 초상화제작이나 궁중의 각종 행사 모사(模寫)나 사대부의 요청에 따라 계회도(契會圖)나 사대부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궁정.사대부 취미에 맞춘 것이 많다.
화원은 본시 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던 것인데 후기에 이르면 사대부의 추천에 의해 발탁되기도 하였던 모양이다.
조선 초기 화원 출신으로는 안견과 이상좌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황문화사(黃文畵師: 기부미노 에시)
일본 야스카시대에 야마토지방에서 거주했던 고구려 후예인 기부미노 무라지와 동계(同系)의 씨족(氏族) 화사집단(畵師集團)을 말한다.
이들은 604년부터 세금을 면제받는 등 화업(畵業)의 세습을 국가로부터 보호받았다.

'앙드레 김 별세'
생전에 털어 놓은 숨겨진 이야기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75)이 오늘(12일) 오후 7시25분쯤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앙드레 김은 지난달 말 폐렴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앙드레 김의 사망 원인은 대장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온 폐렴인 것으로 밝혀졌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시사저널>은 지난 2007년 3월 앙드레 김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이때 평소 그에 대한 궁금한 것을 직접 물어봤다. 물론 앙드레 김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질문도 포함되었다. 

'특유의 메이크업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라는 질문에는 "세계적 디자이너를 인터뷰한 기사 어디에도 그렇게 세련되지 않은 질문은 나와 있지 않다"라며 불쾌해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시사저널> 기자는 준비해 간 모든 질문을 물어봤고, 앙드레 김은 답변을 해주었다.

인터뷰에는 '앙드레 김'은 누구인지, 왜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입양 아들 중도씨의 이야기 등 그의 솔직한 대답이 들어있다. 물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도 담겨있다. 그 당시의 인터뷰 내용을 전제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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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중학생 때부터 세계인이 되려고 준비했다"  
      

앙드레 김은 일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올해 일흔 두 살인 그는 "휴일이 싫다. 출근을 못하는 연휴가 자주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라고 말했다.  
 
세계 패션계에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디자이너, 주한 외교 사절들이 가장 아끼는 최고의 민간 외교관, 패션에서 출발해 건축·가전 제품으로까지 브랜드를 확장한 브랜드 마케팅의 성공 신화,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한’ 독특한 말투와 차별화된 외모로 대중 문화의 아이콘이 된 남자. 앙드레 김이 패션 인생 45년을 맞았다.

서울 소공동의 양장점 ‘GQ’에 세를 내 여성 양장점 ‘살롱 앙드레’를 개업한 1962년부터 지금까지 45년 동안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오면서 앙드레 김은 시류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켜왔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1백70여 차례 패션쇼를 열었으면서도 1990년대 후반까지 자신의 건물을 소유한 적이 없었다.

국내외 문화예술계 스타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훈장까지 받았으면서도 해외에 자신의 매장을 세우거나 의상을 수출한 적도 없었다. 그가 사업적으로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앙드레 김의 브랜드 가치를 알아본 기업들이 그를 모셔 가려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2000년부터였다.


앙드레 김을 만나러 서울 신사동에 있는 그의 부티크를 찾아가던 날, 공교롭게도 눈이 내렸다. 동화 속 ‘눈의 여왕’ 궁전처럼 그의 부티크는 온통 하얗거나 투명했다.

1분에 한 번꼴로 울려대는 투명 전화기, 크리스털 조명등, 모델같이 늘씬하고 아름다운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앙드레 김은 일흔두 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의욕적이고 힘이 넘쳤다. 소매가 긴 순백의 의상에 가려진 손등의 검버섯만이 그의 생물학적 나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는 부엌에도 들어가면 안 되는 시절에 어떻게 이름조차 생소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나?

내 고향은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현 서울시 은평구 구파발동)다. 북한산 너머 멀리 한강이 흘렀다. 진관사라는 절이 있었고 바위와 솔숲이 어우러진 풍광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주 어릴 때, 학교 들어가기 전 의상에 대한 충격적 경험이 있다. 여섯 살 전후니까 아마 1941년이나 1942년이었을 텐데 우리 동네에서 전통 혼례식이 열렸다. 컬러풀한 족두리며 활옷의 화려한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의상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신도공립국민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모든 예술 분야를 좋아했다. 그림, 독창과 합창, 연극, 독서도 좋아했다. 저학년 때는 동네 풍경을 그리는 걸 좋아하다가 3, 4학년 되면서부터는 옷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난 누나와 여동생을 모델로 예쁜 옷을 입은 여인을 그렸다. 1961년 국내 최초로 서울 명동에 인터내셔널 디자인스쿨(국제복장학원)이 생겼을 때 주저 없이 1기생으로 들어가 1년 과정을 졸업했다. 


앙드레 김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 

인터내셔널디자인스쿨에 다닐 때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대사관을 방문하게 됐다. 한 프랑스 외교관이 내가 세계적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것을 알고 프랑스 패션 잡지를 보내주고 그랬다.

그분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려면 부르기 쉽고 빨리 기억될 수 있는 이름을 가져야 한다면서 ‘앙드레’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하지만 성까지 버릴 수는 없어서 앙드레 뒤에 성을 붙였다(그의 본명은 김봉남이다). 1년 뒤 양장점을 개업했을 때 처음에는 ‘살롱 앙드레’로 이름을 붙였다가 ‘앙드레 김’으로 바꾸었다.  

앙드레 김은 데뷔 당시부터 패션계의 이단아였다. 여성 일색인 패션계가 남성, 그것도 일반적인 한국인과는 매우 차별화된 외모와 사고방식을 가진 독신 남성을 환영할 리 없었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3시>에 출연했을 때 한국인이 아닌 프랑스 종군기자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이국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보다 몇 발짝 앞서 추진한 국제화와 스타 마케팅 덕분이었다. 그는 1964년 당시 톱스타였던 신성일-엄앵란 커플의 결혼식 때 엄씨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한 것을 시작으로 김지미·문희·윤정희 등 은막 스타들의 의상을 디자인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1966년 파리와 워싱턴, 1968년에는 뉴욕에서 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려 패션 본고장으로부터 쏟아진 찬사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높였다.

40여 년 동안 당대의 톱스타를 모델로 출연시키고 파리·뉴욕·시드니·홍콩·싱가포르·베이징·앙코르와트 같은 해외 유명 도시에서 패션쇼를 개최한다는 것은 그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디자이너임을 간접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단골 심사도 그의 권위를 높이는 데 한몫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이 세계적 패션 감각과 톱스타 취향의 소유자임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문화가 국가와 사회에 종속당하던 시절, 앙드레 김은 해외 패션계와 한국 패션계, 화려한 연예계와 일반 대중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화에 눈을 뜬 계기는 무엇인가?

중학교 1학년 때 광복이 되었는데 세계 역사와 지리를 배우면서 세계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영어 과목을 가장 좋아했다. 그 다음이 역사와 지리였는데 세계 지리가 너무 좋았다.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 이런 식으로 100여 개 나라의 수도를 모두 암기했다. 우리나라는 지도상으로 작은 나라고 슬프게도 분단된 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때부터 세계인이 되어야지 하는 굉장히 강한 신념을 가졌다. 


인기와 명성을 유지하면서 브랜드 확장을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세계 모든 디자이너들의 꿈은 의상으로 시작해 다양한 영역으로 작업을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2001년 앙드레김 코스메틱을 시작으로 골프 웨어, 키즈(아동복), 아이 웨어(선글라스), 이너 웨어(속옷), 홈(침장) 등으로 계속 넓혀나갔다. 앙드레김 주얼리도 준비 중이다.

삼성과 손잡고 아파트 인테리어와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가전제품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신용카드(국민카드) 디자인도 맡았다. 최근에는 조명도 계약해 가을쯤 론칭한다. 샤넬·디오르·지방시·이브생로랑이나 돌체&가바나도 화장품이나 향수 정도만 있지 다양한 전개는 하지 못하고 있다. 뉴욕의 폴로가 유일하게 퍼니처를 하지만 가전제품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 스스로 평가하기 쑥쓰럽지만 비결을 굳이 말하라면 다양한 문화를 굉장히 소중히 생각하고 좋아하는 덕분이 아닐까 싶다. 모든 예술 세계, 나아가 국제 외교 관계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다.

미지의 세계의 문화, 역사 등 모든 걸 다양하게 좋아하고 알고 싶어하고 끊임없이 ‘스터디’하려 한다. 그런 추구가 오늘날 여러분이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열일곱 가지 신문을 본다. 읽지 못한 기사는 스크랩해두고 차 안에서 읽거나 신문이 나오지 않는 일요일에 모아 읽는다. 나는 휴일이 싫다. 출근을 못하는 연휴가 자주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오전 9시 반쯤 사무실에 출근해서 국내외 패션쇼를 끊임없이 준비한다.

하나가 끝나면 바로 다음 컬렉션을 준비해야 한다. 틈틈이 대사관 리셉션, 문화 행사, 예술 행사, 시상식에 참석한다. 오페라나 콘서트에 갈 때 주한 외교 사절들을 초청해서 함께 간다. 대사들은 나이가 대개 50~60대인데 그전까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최고 수준의 문화 행사에 많이 초청받기 때문에 대화 수준이 굉장히 높다.

패션쇼에 와서도 작품에 깃들인 디자이너의 철학과 메시지, ‘정신적 에스프리’에 대해 얘기한다. 패션쇼는 여성이 관심을 갖는 것으로 상식화되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적 수준의 외국 교향악단 또는 공연예술단이 한국에 오거나 조수미·정명훈 같은 세계적인 한국 출신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열릴 때 한국이 정말 굉장한 나라라는 걸 느끼게 된다.


항상 공연장의 가운데 맨 앞줄에 자리 잡는 걸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예술가와 연기자들의 특성 및 개성을 굉장히 깊이 있게 관찰한다. 음악 감상이 목적이라면 집에 좋은 오디오 시설 설치해놓고 들으면 된다. 나는 그 이상의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아티스트의 눈동자, 손끝 하나의 움직임도 관심 있게 본다. 소리가 제일 좋다는 공연장 1층 중간이나 2층 발코니에서는 이런 섬세한 움직임을 볼 수가 없다.

원래 1층 중간과 2층 발코니가 제일 비싸고 맨 앞은 2등석인데 7~8년 전부터 앞자리가 다 특석이 돼버렸다. 세종문화회관은 C줄 1열이 12석.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도 C줄 1열이 12석, 오페라하우스는 B줄 1열이 15석이다. 나는 음악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감상하는 걸 즐기기 때문에 한꺼번에 예약한다. 

명성이나 인기와 달리 사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웃으며) 사실이다. 사업적인 분야에는 실력이 없다. 디자이너 생활 38년 만에야 내 소유의 부티크를 갖게 됐다. 요즘에 와서 아파트 인테리어, 가전제품 신용카드를 디자인했지만 그것도 라이선스 계약을 한 것이지 직접 운영하는 건 아니다. 디자이너가 자기 세계를 이끌어가야지 지나치게 외국의 트렌드를 따르다 보면 독창성이나 개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한국 디자이너로서, 아시아인으로서, 동양인으로서, 한국과 동양의 역사, 문화 세계를 좋아하고 소중히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적이면서 아시아적인 왕실의 다양한 문양을 재창조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적 소재만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유럽의 비잔틴·바로크·로코코·르네상스 시대의 모티브를 아시아 왕실의 그것과 조화시켜 굉장히 서구적이면서도 동시에 동양적인 모티브를 추구한다.


싱글 대디로 아들을 키워 손자도 보았다는데….

아기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결혼은 안 하고 입양하게 됐다. 사람들이 자기 핏줄 아닌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정은 친자식 친부모보다는 덜할 것으로 상상하는데, 오히려 더 강하다. 우리 아들이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3학년 형아에게 맞아 이가 아프다고 했다.

그날 밤 분해서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들과 같이 스쿨버스에 타서 문제의 3학년생에게 맞은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더니 일곱 명이나 손을 들었다. 그래서 문제 학생을 야단치고 학교로 가서 교장·담임 선생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그 다음부터 그 아이가 다른 애들을 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나는 그만큼 극성 학부모였다. 아들은 밝게 모범적으로 잘 자라 결혼했다. 손자 손녀가 열흘 전에 두 돌 지났다. 현서와 현류는 이란성 쌍둥이인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 얘들이 “합지, 합지” 하고 재롱떨 때, 그것이 나의 행복이다.



인터넷에 ‘앙드레 김 어록’이 올라 있고, ‘우리말 해침꾼’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몰지각하고 논할 대상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좀더 깊이 있게 관찰해서 말해야지, 경박하고 경솔한 판단이다. 나는 병적으로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강하다. 개그맨들이 내 흉내 내는 것을 듣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개그맨들이 내는 흉내는 내가 보기에도 민망하다. 그런데 이상한 효과가 나타난다. 사람 많은 데 가면 팬들이 더 열광적이다.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판단한다. 나는 영국식 옥스퍼드 악센트를 좋아한다. 미국을 자랑스러운 우방이라 생각하지만, 영어는 역시 영국식 영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옥스퍼드 악센트를 그대로 다 쓰기보다는 미국식 영어와 조화를 이뤄 말한다.

내가 공부한 중학교에서는 옥스퍼드 악센트를 많이 썼다. 나는 품격 있는 영어를 좋아한다. 영어를 들었을 때 얼마나 지적이고 품격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수준도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 차원에서 관찰해야지 개그맨이 웃기려고 과장한 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신을 문화 아이콘으로 만든 순백 의상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

어릴 때부터 무조건 흰색의 세계를 좋아했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밤사이 눈이 쌓여 지붕과 온 마을이 온통 하얗게 덮일 때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걸 경험했다. 계곡과 호수의 맑고 투명한 물, 크리스털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보다시피 부티크에도 크리스털 장식을 많이 했다. 다음에 인테리어를 바꿀 땐 신선하고 충격적인 컬러로 변화를 주고 싶다. 하지만 옷은 늘 흰색이 될 것이다. 흰색을 입으면 집중력이 좋아진다. 20여 년 전까지는 다양한 색을 입었는데 다른 사람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은 그런 색을 대봐도 어울리지 않는다.


특유의 메이크업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

세계적 디자이너를 인터뷰한 기사 어디에도 그렇게 세련되지 않은 질문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앙드레 김을 차별화하는 중요한 요소이지 않은가?

처음에는 방송 출연하면서 결점을 커버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러다가 얼굴이 알려지게 되어 계속 하게 됐다. 장동건·송승헌 같은 남자 스타들도 모두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가? 아이섀도를 바르거나 립스틱을 칠하는 것도 아닌데, 메이크업이라는 표현은 좀 지나치다(하지만 그는 사진 촬영에 앞서 한참 동안 메이크업을 했다).


후계자 양성과 앞으로의 계획은? 

아쉬운 점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다. 지금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 공부, 연구해야 한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끝이 없다. 45년 전보다야 나아졌겠지만 점점 공부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아들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다. 어시스턴트 디자이너가 여러 명 있지만 아직 정해진 후계자는 없다. 참신하고 성실한 사람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모든 걸 다 한다. 현재 해외 부티크 론칭 계획은 없지만 직접 수출을 추진 중인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김세원 (시사저널 편집위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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