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동양화 특징이 여섯가지인가 한참 생각하다가

검색을 해보았는데 다섯가지네요

혹시 오타나신건 아니실런지요 ^^;

 

아래 동양화의 특징 적어드립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 선적인 표현이다.

 

선의 강약 - 선의 강약에 의해 작가의 감정, 개성, 화면의 생동감

                  까지도 표현할수 있다.

 

 

★ 여백의 미를 표현한다.

 

- 여백은 미완성의 덜 그려진 공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해방감과 여유있는 멋을 상징한다.

 

 

★ 먹색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먹색의 농담 - 먹색의 진하기에 따라 삼묵법(농묵, 중묵, 담묵)으로

                     나뉘며 부드러운 화면을 표현한다.

 

 

★ 정적ㆍ정신적 표현이다.

 

- 화면의 기품과 운치를 존중하고 정신세계의 표현을 소중하게 다룬다.

 

 

★ 평면적ㆍ상징적 표현이다.

 

- 물체 자체의 양감, 질감 등에 치우치지 않고 명암을 거의 그리지 않으며,

   물체가 지닌 존재에 주의하여 그린다.

 

 

출처 : 한국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글쓴이 : 정산 백현호 원글보기
메모 :

 

한 국 화

       산 수 화

     수묵담채화1

    수묵담채화2

     민    화

        작품보기 

             한국화

 http://my.netian.com/~sulzee/water/sub_23.htm     

 http://dong-gu.ms.kr/sun/art/index.htm    

     우리 조상들의 얼과 정신이 담긴 그림이다

     정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다

     선과 여백을 중시한다

     먹의 농담효과를 살려 표현한다

     먹선의 굵기,속도,강약등 운필의 표과를 표현한다.

            동양화

중국에서 발생하여 중국,우리나라,일본등에서 그려진그림

남종화   수묵위주,주관적,상징적     시조는 당나라의 왕유       주로 몰골법을 사용     수묵화의 표현

북종화   채색위주,객관적,사실적     시조는 당나라의 이사훈    주로 구륵법을 사용     진채화의 표현

       표현상의 분류

수묵화  먹의 농담으로 그린 그림

수묵담채화   먹으로 그리고 먹선에 지장이없게 엷게 표현

진채화(농채화,채색화)  채색위주의 그림

    

                               

            수묵화                 수묵담채화                    진채화

             사군자

매난국죽을 그림 그림으로, 그 향기나 절개를 닮고자 하여 예로부터 문인사대부들이 많이 그려왔다

사군자를 그릴 때는 그림과 여백을 고려하여 주제를 배치하고 필력에 의해 생동감있게 표현한다

             민   화

조선시대 무명화가들의 그림 (서민적)

             문인화

문인사대부들이 취미로 그린 그림이다 시,서,화 3요소가 표현된다(시서화 3절)  주로 사군자를 즐겨 그렸다

       진경산수화

실제 경치를 보고 그린 산수화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이 처음으로 그린 그림

        한국화의

        표현기법

구륵법 윤곽선을 그리고 그안에 채색한다

몰골법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이나 채색으로 한붓에 그리는 기법

백묘법 선으로만 그리는 기법이다

운염법 먹이 번지는 효과를 살려 그린다(구름,안개)

갈필법 붓에 물기를 빼고 거칠게 표현한다

                              

                  구륵법                          몰골법                       백묘법

            삼원법

중국의 '곽희'에 의해 정립된 원근법

고원법: 산아래서 정상을 올려다 본 시점 자연의 위압감이나 웅대함을 표현한다

심원법: 산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시점  무한한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

평원법: 일반적인 평행한 시점 자연의 광활함을 표현한다

            삼묵법

담묵 : 먼 곳이나 약하게 표현할 때 사용

중묵 : 자연스러운 농담의 변화를 줄 때 사용

농묵 : 가까운 곳이나 힘 있고 강하게 표현할 때 사용

      삼묵참고작품

            

      한국화의 분류

산수화: 자연경치를 소재로 함

인물화: 초상화,신선도,탱화등 사림이 주제

화조화: 꽃과 새를 소재로 함

화훼화: 꽃,벌,나비를 소재로 함

어해화: 물고기류를 소재로 함 (잉어,새우,거북등)

초충도: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함 (신사임당)

영모화: 털달린 새나 짐승을 소재로 함(호랑이등)

풍속화: 그 시대의 생활모습을 그림 (김홍도) 기명절지화: 그릇,꽃가지등을 그린 정물그림

 

 

 

   한국화의 분류별  

       참고작품

 

 

 

 

                                         

            인물화                풍속화                  산수화                 영모도                초충도 

 

                                         

              문인화                화훼화                 어해화               화조화             기명절지화

                                                                    

      수묵화

 

  수묵화와 채색화

채색을 쓰지 않고 먹만으로 그리는 동양화 고유의 회화(繪畵)양식. 문인화(文人畵)의 대종(大宗)을 이루며 기법에 따라 크게 농묵(濃墨)·담묵(淡墨)·발묵(潑墨)·파묵(破墨) 등으로 나뉜다. 수묵화는 특히 현란한 채색을 피하고 먹의 정신성(精神性)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양식으로, 예로부터 많은 문인과 선비들이 즐겨 그렸다. 동양인의 미의식과 사의(寫意)를 반영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문인과 선비는 교양과 여기(餘技)의 한 방편으로
수묵화를 자주 그렸으며, 화원(畵院)에서의 그림과 같은 본격적이고 직업적인 회화로서보다는 시(詩)·서(書)를 일치, 조화시켜 문기(文氣) 짙은 화면을 이루어 내기 위하여 수묵화를 자주 그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문인화의 비조(鼻祖)라 할 수 있는 시백(詩伯) 왕유(王維) 같은 이는 그의 《화학비결(畵學訣)》 이라는 화론서(畵論書)에서 ‘화도지중 수묵 최위상(畵道之中 水墨最爲上)’이라 하여 이론적으로 수묵화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먹은 본시 단일색이지만 고래로 중국인들은 먹색이 모든 색을 다 함유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질료적(質料的) 성격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정신성이 강한 재료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먹만을 써서 그리는 수묵화는 채색화가 지닐 수 없는 담담한 맛과 운치를 구현하기에 좋은 양식이었던 것이다

     수묵화의기법

수묵화의 기법은 크게 발묵·파묵·농묵·담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발묵기법은 주로 종이 위에 먹이 번져 퍼지는 효과를 얻는 방법으로 농묵이 담묵이나 물기를 따라 삼투압현상을 일으켜 번져가는 변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파묵기법은 담묵으로 윤곽이나 용적 밑을 일차적으로 칠하고 그 뒤에 차차 농묵으로 덮어 습하듯이 하며 왕왕 초묵(焦墨)으로 그 윤곽선을 깨뜨리거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기법이다. 농묵기법은 먹을 진하게 갈아서 그리는 기법이며 담묵기법은 보다 흐리고 습하게 운필하는 기법으로서 물기와 먹이 번져 어울리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법이다. 이 외에 먹을 농담으로 순차적으로 쌓아 가듯이 그리는 적묵법(積墨法) 등도 있다.

    수묵화의 역사

수묵화의 발생은 당(唐)나라 때부터이며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와 더불어 발달하였다. 수묵화는 종래의 선묘(線描)에 의한 윤곽 위주로 그리는 관습을 깨고 먹의 농담 변화와 효과에 의해 질량과 암영을 나타내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특히 왕유(王維)에 의해 시작된 사의적(寫意的)이고 시취적(詩趣的)인 남종문인화는 거의 수묵 위주이므로 한층 더 수묵화가 발달하였다. 원래 남종화는 중국 남방의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양쯔강[揚子江] 유역에서 발생한 문인(文人)·고사(高士)의 그림이지만 점차 지역적 의미를 떠나서, 이사훈(李思訓)류의 사실적(寫實的)이고 장식적이며 유교의 현실주의 및 불교의 북종(北宗)과 그 원류를 같이 하는 그림양식과 대칭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당대(唐代)의
수묵화는 그 성격이 한마디로 조방일격(粗放逸格)한 묘사정신으로 구축된 것이었으며 후에 중국 수묵화의 향방(向方)을 어느 정도 결정하였는데, 주로 대상의 간명직절(簡明直截)한 표현에 주안을 두고 있다. 이런 의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작가는 중당(中唐) 때의 왕묵(王墨:王默)이다. 그의 그림은 한 마디로 수묵의 정신을 극대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 등이 전하는 그의 화풍은 형식주의를 벗어나 탈속(脫俗)의 경지를 구가하는 것으로, 제작태도 또한 표일분방(飄逸奔放)하였다. 그리하여 중당 후반 강남의 항용(項容) 천태처사(天台處士) 고황(顧況) 등에 의해 수묵화의 화풍이 어느 정도 정립되었다. 이 발흥기에 강남 오군(吳郡) 등지에서는 독필(禿筆:몽당붓)로 양손에 두 붓을 쥐고 그리는 기묘한 묘사법이 나왔다.
만당(晩唐)에 이르면 왕묵이나 항용(項容)류의 다소 광태적(狂態的)인
수묵화는 점차 온건하게 자리를 잡아가는데 오대(五代)를 거쳐 송대(宋代)에 이르면서 소동파(蘇東坡) 등에 의해 문인화론의 이론적 성립을 보게 되면서 동양적인 독특한 회화 표현양식으로서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또한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川高致)》 등의 화론(畵論)에 의해 수묵산수화의 이론적 뒷받침을 받으면서 이·곽파(李郭派) 등의 화풍이 유행하였고, 미불·미우인(米友仁) 부자(父子) 등에 의해 수묵산수의 새로운 양식이 싹텄다. 그 후 원(元)·명(明)·청(淸)나라 때에 이르면서 왕유 이래 지금까지 수묵화는 시·서·화 일치(詩書畵一致)사상과 결합되면서 많은 걸출한 화가를 배출시켰다.
한국에서는 주로 남종문인화의 수용과정을 통해
수묵화가 발달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수묵화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 체계적인 파악이 불가능하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실용적 기능을 지닌 작품들뿐만 아니라 여기와 감상대상이 되는 작품 등이 있다.

 

출처 : 삶의 의미를 찾아서
글쓴이 : 억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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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文字)를 소재로 하는 조형예술(造形藝術). 점과 선·획(劃)의 태세(太細)·장단(長短), 필압(筆壓)의 강약(强弱)·경중(輕重),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 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진다.

가로쓰기
서제를 가로로 배열하여 쓰는 방법으로 글자의 윗 부분을 맞추어씀


가리개=곡병(曲屛)
두 쪽짜리의 병풍으로 물건을 가리건 구석 장식용 등의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임.
간가(間架)
점과 획의 간격을 조형적으로 알맞게 하는 것.


간찰(簡札)
간지에 쓴 편지글.


갈필(渴筆)
먹이 진하거나, 속도를 빨리 하여, 종이에 먹이 묻지 않는 흰 부분이 생기게 쓰는 필획.


강약(强弱)
필획의 표현이 강하고 약한 정도.


강호(强豪)
털의 성질이 강한 붓, 황모(黃毛), 낭호(狼豪), 서수(鼠鬚) 등으로 만들어진 것.


개형(槪形)

글자의 외형(外形).


결구(結構)

점, 획을 효과적으로 조화 있게 결합하여 문장을 구성하는 것.


겸호(兼豪)

강모(强毛)를 호의 가운데에 넣고 두 종류 이상의 털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초보자에게 적합함.


경중(經重)

필획의 표현 느낌이 가볍고 무거운 정도.


경필(硬筆)

모필(毛筆)에 맞서는 말로서, 현대의 필기 도구인 연필, 볼펜, 만년필 등이 이에 속함.


고묵(古墨)
옛날에 만든 먹.


골법(骨法)=골서(骨書
)
붓 끝으로 점획의 뼈대만 나타나게 쓰는 방법.


골서법(骨書法)

체본 위에 투명지를 놓고 문자를 골법(骨法)으로 쓰고, 그 다음 붓으로 그 골서(骨書)를 따라 연습하는 방법.


곡직(曲直)

필획의 표현이 굽거나 곧은 정도.


구궁격(九宮格)

구궁격(九宮格)이란 비첩(碑帖)을 임서할 때 사용하는 종이로 정사각형 안에 정(井)자형의 줄을 그어 9등분한 것을 말한다.
구궁격은 당나라 사람들이 발명한 것으로 그들은 이것을 통하여 옛사람들의 글씨의 법과 짜임새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글씨의 자형과 점과 획의 위치 등을 익히는데 아주 적합하다.
뒤에 사람들은 이를 응용하여 전자격(田字格)혹은 미자격(米字格)등을 발명하였다.
그 쓰임새는 구궁격과 같이 글자의 자형을 익히는데 사용되었다.
물론 이러한 방법에도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글자의 자형과 점,획의 위치를 정확하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단점은 글자를 너무 판에 박은 듯이 쓰기 때문에 융통성과 필력이 향상되지 못한다.
초학자들은 처음에 글자의 형태를 익히기 힘들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여 어려운 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글자의 자형이 익숙한 뒤에는 이것을 버리고 다시 임모(臨摹)를 하여야 한다.
구궁격은 약간 번잡한 점이 있으니 미자격을사용하여도 무방하다.


구궁법(九宮法)

투명 구궁지를 체본 위에 놓고 보면서 다른 구궁지에 도형을 그리듯이 연습하는 방법.


구궁지(九宮紙)

모눈이 그어진 습자지. 필획의 위치, 간격, 장단 등을 이해하기 쉽게 1칸을 가로로 3, 세로로 3으로 나누어 선을 그어 놓은 종이.


구세(九勢)

구세(九勢)란 동한(東漢)의 서예가인 채옹(蔡邕)이 말한 것으로 붓을 움직일 때 지켜야 할 9가지 규칙을 말한다.
이것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결자(結字) 붓을 댈 때 짜임새에 유의하여야 하는데 윗획은 모두 아래로 엎어지는 듯하게 하고, 아 랫획은 위를 이어받는 듯하게 하여 형세가 서로 그림자 띠를 연결하는 것처럼 하며, 등을 지는 형세를 취해서는 안된다.
이 말은 모든 글자들이 서로 필획을유지하면서 호응하는 형 태를 취하고 등지는 형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2.전필(轉筆) 붓을 꺾을 때에는 좌우를 돌아보면서 마디가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이 말의 뜻은 획의 방향을 바꿔 전절(轉折)을 할 때 필봉을 둥글게 꺾어 돌리면서 좌우가 균형있게 되어 점· 획과 서로 일체감이 되어 혼자 삐죽 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3.장봉(藏鋒) 점과 획을 그을 때 오른쪽으로 가려면 먼저 붓을 왼쪽으로 향하여 힘을 주다가 다시 오 른쪽으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점과 획을 그을 때에는 항상 필봉이 획 안에 있으면 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 탄성을 얻은 뒤에 다시 제 방향으로 나아가되 필봉을 감추면서 붓 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4.장두(藏頭) 붓을 둥글게 하여 붓의 중심이 항상 점과 획의 중앙에 위치하여야 한다.
5.획미( 尾) 점과 획에서 세력이 다했으면 힘을 들여 붓을 거둔다.
6.질세(疾勢) 탁(탁)획과 파임에서 나왔으며, 세로획의 갈고리도 이에 해당한다.
7.약필(掠筆) 필봉이 나아갈 때 험악하면서도 재빨리 해야 한다.
약(掠)획은 길게 삐치는 획으로 필봉 이 왼쪽으로 향해 나아갈 때 예리하면서도 힘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중간에 힘이 없거나 가늘게 되면 형세를 잃어버리게 된다.
8.삽세(澁勢) 획을 빠르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9.횡린(橫鱗) 가로획에 대한 설명이다. 가로획이 너무평평하면 안되므로 린(鱗)자를 더하여 이를 제지 한 것이다.
가로획을 늑(勒)이라 하는데 이는 말의 재갈을 말하는 것으로 때로는 긴장되게 때로는 여유있게 하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가로획이 너무 평평하면 판에 박은 듯하여 좋지 못하다.
세로획도 너무 곧으면 좋지 못하니 곧은 형세를 가지되 약간 굽은 모양이 있어야 한다.


금석문(金石文)
청동기나 돌에 새겨진 문자.


금석학(金石學)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문자를 연구하는 학문.


기운(氣韻)

기운(氣韻)이란 서예 작품에서 정신과 풍채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표준을 구현하는 것이다.
물론 창작의 요구나 아니면 서예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기운의 우열을 가늠할 수 있다.
기운에는 깊은 감정세계와 농후한 정과 열활한 풍채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서예가 고도로 승화된 예술감각과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장언원(張彦遠)은 <역대 명화기(歷代名 記)>에서 "만약 기운이 두루 미치지 못하면 공허한 진영과 같고,필력이 굳세지 못하면 쓸데없이 먹칠만 하는 것과 가아 묘한 맛이 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사실 서예의 묘는 풍채에 있으며, 풍채는 기운이 응축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작품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기운은 결코 기력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며, 기세가 또한 기운은 아니다.
기운은 천기가 스스로 발동하여 작가의 의식세계에 스며들어 이것을 승화시켜 내심에 잠재하고 있는 잠재의식과 융화시켜 고도의 예술적 기교를 재현시켜야 기(氣)가 풍족하고 운(韻)이 농후한 예술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기운이 생동하는 것은 다방면의 요소가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글씨 자체의 짜임새,장법, 묵법 등의 기교를 제외하고 관건은 바로 작가의 의식세계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서예의 규율을 볼 때 법은 사람마다 전할 수 있지만 정신세계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흉중에 커다란 뜻을 품고 종횡으로 달리는 기상이 있어 야 붓이 이르는 곳마다 기운이 만족하여 훌륭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기필(起筆)
점과 획의 시작으로 처음 종이에 붓을 대는 과정.


낙관(落款)
서화(書畵) 작품에 제작 연도, 아호, 성명 등의 순서로 쓰고 도장을 찍는 것.


노봉(露鋒)
기필(起筆)에 있어서 봉(鋒)의 끝이 필획에 나타나는 것.(→장봉)


농담(濃淡)

필획의 표현이 짙고 옅은 정도.
농담(濃淡)이란 먹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표현으로 농(濃)이란 먹색이 진한 것을 말하고 담(淡)이란 먹색이 흐린 것을 말한다.
서예에서는 먹물이 마르고 축축한 것보다 진하고 흐린 것을 더욱 중요시 여기고 있다.
그 것은 각각 특색이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하여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옛사람들은 축 축한 것으로 연미함을 취하고 마른 것으로 홈악함을 취한다고 하였다.
진한 먹은 작품에서 웅장한 기세를 표현하기에 적당하며, 흐린 먹은 고상한 경지를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그러므 로 한 폭의 작품 안에는 마르고 축축한 것이 서로 어우러져 진하고 흐린 것으로 체를 이루어야 걸작이 될 수 있다. 농담의 관건은 흐린 먹으로 육중함을 나타내고 진한 먹으로도 막히지 않고 쓸 수 있을 정 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진한 먹을 쓰더라도 둔하지 않으며 흐린 먹을 쓰더라도 애매모호 하지 않은 글씨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반천수(潘天壽)는 "먹은 반드시 흐린 가운데도 진 한 맛이 있어야 하며 진한 가운데도 흐린 맛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흐리더라도 웅장한 맛을 나타내어 평평하면서도 평평하지 않은 글씨가 된다." 라고 하였다. 글씨의 묘미는 바로 이 말 가운데 있으니 먹의 농담을 잘 연구하면 좋은 작품을 이룰 수 있다.


농묵(濃墨)
진하게 갈려진 먹물.


농서법(籠書法)

체본 위에 투명지를 놓고 문자의 윤곽을 그린 후 붓으로 그 윤곽을 채우듯이 연습하는 방법.


단구법(單鉤法)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붓대가 지면과 수직이 되도록 잡고, 가운데손가락, 약손가락, 새끼손가락으로 안에서 받쳐 작은 글씨를 쓸 때의 붓 잡는 방법.


단봉(短鋒)
붓의 털의 길이가 짧은 붓. 주로 회화용으로 쓰임.


담묵(淡墨)

묽게 갈아진 먹물.


대련(對聯)

세로가 긴 족자나 액자를 두 개로 하여 한 작품을 이루도록 한 것.
낙관은 좌측의 것에만 함.


두인(頭印)

두인이라는 용어보다는 수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게 바람직하다.
두인의 머리두는 두령,두목등 안좋은 의미에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수인(首印)


마묵(磨墨)
먹을 가는 것.


먹(墨)

나무나 기름을 불완전 연소시켜 만들어진 그을음에 아교와 향료를 섞어서 만든 서예 용재.
유연묵과 송연묵이 있다.


먹색(墨色)

먹의 질과 농도, 운필 방법, 지질(紙質)에 따라 나타나는 먹의 색.


먹즙

시판용 먹물로서 물을 섞어 사용.
부패를 막기 위해 방부제를 넣었으므로 붓의 털에는 좋지 않음.


먹집게

먹이 닳아 손으로 잡고 갈기에 불편할 때 먹을 끼워 쓰는 도구.


모사법(模寫法)

체본 위에 투명지를 놓고 위에서 투사하여 연습하는 방법.


모필(毛筆)

동물의 털을 묶어 붓대에 끼워 쓰는 붓을 일컬음.


묵상(墨床)
먹을 올려놓는 상.


문방(文房)

옛날 문인(文人)들의 거실.
즉 서재(書齋)를 말함.


문방사우(文房四友)=문방사보(文房四寶)
문방에 필요한 4가지 용구, 용재로서 종이, 붓, 먹, 벼루를 말함.


반절(半切)

←전지(全紙)


반흘림
정자와 흘림 글씨의 중간 정도의 한글 서체


발묵(潑墨)
서화에서 먹물이 번지는 정도.
벼루에 먹을 갈아 얻은 먹묵이 먹빛이나 점도 등 모든 조건이 이상적인 경우 발묵이 좋다고 한다.
먹물이 짙을 뿐 아니라 청자색을 띠며 마치 기름이나 옻칠처럼 반질반질하고 밝은 먹빛을 말한다.
발묵이 좋으면 한 번 찍 어서 여러 글자를 쓸 수 있다.
아무리 먹이 잘 갈리더라도 발묵이 좋지 않으면 좋은 벼루라 할 수 없다.
좋은 먹도 좋은 벼루를 만나야 발묵이 좋다.


방필(方筆)
기필과 수필에서 보가 는 방형(方形)의 필획으로 장중한 느낌이들며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의 한글 판본체에서 볼 수 있음.


배세(背勢)

마주 보는 두 획을 안 쪽으로 휘게 쓰는 것으로 방필의 경우에 많이 나타나며, 구양순의 해서체에서 볼 수 있음.


배임(背臨)

임서의 한 방법으로 체본을 보고 형임, 의임을 충분히 한 후에 체본을 보지 않고 연습하는 방법.


배자(配字)

글자간의 사이를 아름답게 배치하는 것.


백문(白文)

전각의 한 방법.
음각으로 새겨 도장의 문자가 희게 찍히는 것.


법첩(法帖)

옛날의 훌륭한 글씨의 명적을 탁본하여 서예 학습을 위해 책으로 만든 것.


벼루(硯)

먹을 가는 용구.
재료에 따라 옥연(玉硯), 목연(木硯), 도연(陶硯), 동연(銅硯), 칠연(漆硯), 와연(瓦硯), 석연(石硯) 등이 있음.


병풍(屛風)

두 쪽 이상의 것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들어 세워 두는 것으로 원래는 실내의 바람을 막는 가구의 한 종류.


봉(鋒)

붓의 털의 끝 부분으로 붓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임.


봉니(封泥)

종이가 발명되기 전의 전한(前漢)시대에 끈으로 엮어진 목편(木片)의 문서를 말아서 진흙으로 봉하고 도장으로 찍은 것.


봉서(封書)

궁중 내에서 근친이나 근신(近臣) 간에 전해지는 사사로운 편지글.


붓말이개

붓을 휴대 할 때 붓의 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발.


비문(碑文)
비석에 새겨진 문자.


비수(肥瘦)

필획이 굵고 가는 정도.


사군자(四君子)
매(梅) 난(蘭) 국(菊) 죽(竹)을 말함.


사절(四切)

←전지(全紙)


서각(書刻)

글씨를 물체에 새김.


서법(書法)

집필, 용필, 운필, 장법(章法) 등 서예 표현에 필요한 방법이나 법칙.


서사상궁

조선 중기 이후 한글의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궁중에서 교서(敎書)나 편지 등을 쓰던 상궁.


서식(書式)
글씨를 쓰는 목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양식(樣式). 일상적인 것으로는 엽서, 일기, 노트 등이 있고, 예술적인 것에는 족자, 액자, 선면 등이 있음.


서제(書題)
붓으로 글씨를 쓸 때 필요한 글귀. 옛날에는 스스로 지어 썼으나, 요즘은 명구(명구) 격언, 시, 시조, 고전 등에서 부분 또는 전체를 발췌하여 사용.
서진(書鎭)=문진(文鎭)
글씨를 쓸 때 종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누르는 도구.


서체(書體)
문자의 서사(書寫) 표현으로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형(形)과 양식(樣式). 즉, 전서, 예서, 행서, 초서, 해서 등을 말함.


서풍(書風)
같은 서체라도 사람에 따라 문자의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즉 서가(書家)의 개성.


선면(扇面)
부채 모양의 종이.


세로쓰기
서제를 세로로 배열하여 쓰는 방법으로 글자의 오른쪽을 맞추어 씀.


세자(細字)
매우 작게 쓰는 글자.


송연묵(松煙墨)
소나무의 그을음에 아교와 향료를 섞어 만든 먹.


수인(首印)
서화의 앞부분에 찍는 도장.


수필(收筆)
점, 획의 끝마무리 과정.


쌍구법(雙鉤法)
붓을 잡는 방법의 하나. 엄지와 집게손가락, 가운데손가락 끝을 모아 붓을 잡고, 약손가락으로 붓대를 밀어서 받치고 그 약손가락을 새끼손가락이 되받쳐 쓰는 방법. 큰 글씨를 쓰는데 적합함.
당나라 서예가인 한방명(韓方明)은 <수필요설(授筆要說>에서
"대저 서예의 묘는 붓을 잡는데 있다. 두 손가락으로 붓대를 싸매면 다섯 손가락도 마땅히 힘을 균등하게 하여야 하며, 요점은 손 가락의 사이를 조밀하게 하여야 하며, 손가락을 굽히고 눌러 가면서 붓을 움직이니 이를 저 송(抵送)이라고도 하여 입으로 전해주는 말이 되었다." 라고 하였다. 이 방법은 첫째 손가락을 밖으로 향하게 하면서 붓대를 눌러주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은 안으로 향하면서 갈고리처럼 굽힌다.
넷째 손가락은 밖으로 들어올리고, 다섯째 손가락은 넷 째 손가락의 아래쪽에 붙여서 움직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여 다섯 손가락이 모두 작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오지법(五指法)'도 '쌍구법(雙鉤法)'의 일종이다.
'쌍구현완(雙鉤懸腕)'이라고 하는 것은 둘째와 셋째 손가락을 둥글게 굽혀 마치 갈고리처럼 만들어서 첫째 손가락과 서로 힘을 균등하게 하고 손가락의 끝으로 붓대를 잡는다.
이렇게 하면 붓대는 똑바로 서게 되어 큰 글씨를 쓸 때에는 위팔을 사용하며 작은 글씨를 쓸 때 에는 아래팔을 사용하여 종이에 팔이 닿지 않으니 붓 움직임이 뜻대로 되어진다.
이렇게 쌍구법으로 붓을 잡는 것은 초학자에게 적당한 방법으로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제창하고 있었다.


아호인(雅號印)

호를 새긴 도장. 주로 주문(朱文), 양각(陽刻)임.


양각(陽刻)
글자를 볼록판으로 새기는 것.


양호필(羊毫筆)

붓의 호를 양털로 만든 붓으로 성질이 부드러움.


액자(額子)=편액

틀에 끼워 표구하는 방법.
틀의 모양에 따라 횡액, 종액 등으로 나눌 수 있음.


억양(抑揚)

한 글자를 쓸 때 좌우의 방향으로 자유롭게 운필하면서 필압의 변화를 주는 필획의 표현.


여백(餘白)

종이에 먹으로 나타난 글씨나 그림의 부분이 아닌 나머지 공간.


역입(逆入)

기필할 때에 붓을 거슬러 대는 방법.


연당(硯堂)

벼루에서 먹을 가는 부분의 명칭.


연적(硯滴)

먹을 갈 때 필요한 물을 담아 두는 용기.


연지(硯池)
벼루에서 물이 고이는 부분.


영인본(影印本)

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과학적인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


영자팔법(永字八法)

영자를 통해 한자의 기본 점획을 익히도록 만들어 놓은 운필방법 여덟 가지.
영자팔법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많은 언급을 하였으며 서예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몇 천년을 내려오면서 서법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고 많은 서체가 등장하고 거기에따른 유파도 분분히 일어났지만 오직 변하지 않고 이어진 것은 바로 팔법(八法)이다.
<금경(禁經)>에 이르기를 "팔법의 근원은 예서(隸書)에서 출발하였으며 장지(張芝), 종요(種
繇), 왕희지(王羲之)등이 이를 전수하여 많은 글씨에 응용하였으니 서예의 가장 요긴한 부분
으로서 분명하게 알지 않으면 안된다.
수(隋)나라 중이었던 지영(智永)은 그 취지를 밝혀 우세남(虞世南)에게 전수하였다.
이대부터 팔법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양빙(李陽氷)은 "옛날 왕희지가 글씨를 배울 때 15년 동안이나 영(永)자에 전력하여 팔 법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모든 글자들을 통달할 수 있었다. 팔법이라고 하는 것은 영(永)자 의 팔획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본다면 영자팔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자팔법은초학자에게 대단히중요한 것으로 해서(楷書)의 기초를 이루며 필법의 요지를 터득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이것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점을 측(側)이라고 한다.
필봉을 기울려 날카롭게 떨어뜨린 다음 붓털을 펴서 진행시키다 발을 디디는 형세를 취 한 다음 붓을 거둔다.
2.가로획을 늑(勒)이라고 한다.
붓을 역입(逆入)한 후 필봉을 지면에 댄다. 그리고는 서서히 진행하다가 급하게 돌리되 붓을 평평하게 해서는 안된다.
3.세로획을 노(努)라고 한다.
지나치게 곧거나 너무 빼어서도 안된다. 너무 곧으면 힘이없게 되므로 곧은 중에도 굽 은 형세를 취하여야 한다.
4.갈고리를 적이라고 한다.
붓 끝을 머무르게 하고 붓을 누른 다음 갑자기 뛰게 하면 힘이 붓 끝에 집중된다.
5.위로 쳐다보는 왼쪽의 윗획을 책(策)이라고 한다.
힘들 들여 붓을 펴면 획의 끝에 힘이 붙는다.
6.길게 왼쪽으로 삐친 획을 약(掠)이라고 한다.
붓을 정성껏 일으키면 곧은 획이 나오게 된다.
처음필봉이 출발할 때 약간 살찌게 하고 그 힘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만일 쭉 빼기만 하고 거두어 들이지 않는다면 가볍고 온화하지 않은 획이 되기가 쉽다.
7.오른쪽에서 짧게 삐친 획을 탁(啄)이라고 한다.
붓을 댈 때에 왼쪽으로 하여 일으킨 다음 빠르고 예리하게 진행시킨다.
획이 거칠면서 도 뾰쪽해야세력을 얻는다.
8.오른쪽으로 삐치는 획을 책이라고 한다.
붓을 역입하여 붓털을 펴서 서서히 진행시키다 끝에 와서 거두어 세우는데 함축의 뜻이 담겨 있어야 한다.
영자팔법의 기본은 획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비록 상세하게 알고 있어도 완전할 수는 없으므로 초학자는 이것에 근거하여 부단히 노력하여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찾길 바란다.


예둔(銳鈍)

필획의 표현이 예리하고 둔한 정도.


오지법(五指法)
붓을 잡는 방법. 다섯 손가락을 모두 이용하여 붓대의 윗 부분을 잡고 쓰는 방법으로 큰 글씨에 적합함.


완급,지속(緩急,遲速)

붓이 움직이는 속도가 완만하고 급하며, 느리고 빠른 정도.


완법(腕法)

글씨를 쓰는 팔의 자세. 현완법(懸腕法), 제완법(提腕法), 침완법(枕腕法)이 있음.


용필(用筆)

점과 획을 표현하는 데 붓의 사용 위치에 따른 기필(起筆), 행필(行筆), 수필(收筆)의 과정.
용필(用筆)을 서법용어로는 '필법(筆法)'혹은 '운필(運筆)'이라고도 부른다.
용필에 대하여 진(진)나라 왕희지는 "매번 바르게 하려면 열 번 더디게 하고 다섯 번 급 하게 하며, 열번 굽게 하고 다섯 번 곧게 하며, 열 번 일어나게 하고 다섯 번 엎드리게 하여 야 글씨가 된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구양순(歐陽詢)은 <용필론(用筆論)>에서 "대저 용필의 법이란 급하게 재촉하고 짧 게 잡으며, 신속하게 당기고 재빠르게 글며, 송곳을 매달고 이슬이 맺히는 듯하게 하며, 자 벌레가 굽히고 뱀이 몸을 펴는 듯하게 하며, 깨끗하면서도 한가롭게 하여 행마다 눈이 아찔 하게 하며, 글자마다 마음을 놀라게 하여 마치 동산에 봄 꽃이 여기저기서 피는 듯하여 둘 러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용필의 묘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용필은 둥근 송곳 모양의 모필에 먹을 듬뿍 묻혀 운행할 때 먹물이 주사기에서 나오는 것 처럼 흐르다 끌고, 누르고, 꺾고, 둥글게돌림에 따라 급하고, 더디고, 굽고, 바르고, 감추고, 나타나고, 일어나고, 엎드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글자의 형태도 이레 따라서 거칠고, 가늘고, 가볍고, 무거운 맛이 나타나 근육과 뼈와 피로아 살이 형성되어 정신과 풍채가 어우러지는 예술을 형성하게 된다. 서예의 관건은 용필에 있으며, 이것은 또 붓 끝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붓끝을 어 떻게 쓰나냐에 따라서 정봉(正鋒), 중봉(中鋒), 장봉(藏鋒), 역봉(逆鋒), 노봉(露鋒), 측봉(側 鋒), 편봉(偏鋒), 순본(順鋒) 등으로 구별된다.
이렇게 많은 방법이 있지만 이중에서 중봉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서 초학자에게는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만약 이것을 무시하게 된다 면 글씨는 정신과 자세를 얻기가 곤란해 진다.
이른바 중봉이라는 것은 붓을 움직 때 붓의 중심이 항상 가운데 있으면서 상하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방법을 쓰면 스스로 점과 획이 굳세게 가라앉으며 무겁게 응축되어져 졸하게 써도 공교하게 되고, 부드럽게 써 도 강한 맛을 얻을 수가 있다.
중봉의 기본 요령은 붓을 바르게 잡아야 한다.
붓을 바르게 잡으면 붓 끝도 자연히 바르게 된다.
그 다음 글시를 쓸 때 점과 획의 요구에 근거하여 누르고 당기고 꺾고 머무르면서 경중과 빠르기의 변화 속에서도 절대로 붓을 한쪽으로 눕히거나 기울여서는 안된다.
붓을 움직일 때의 각도에 따라 중봉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물론 완전히는 안된다. 붓을 움직일 때 의 각도에 따라 중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지법(運指法)

체본의 글자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듯이 연습하는 방법


운필법(運筆法)

붓을 움직여 가는 것, 즉 용필(用筆)에 따른 붓의 운행의 변화에 의해 필획이 표현되는 방법.


원필(圓筆)

기필과 수필의 형이 둥근 원형의 필획으로 우아 유창한 기분이 들며 한글 판본체인 훈민정음 원본에서 볼 수 있음.


유연묵(油煙墨)

기름을 태워서 생기는 그을음에다 아교와 향료를 섞어 만든 먹.


유호(柔豪)

붓의 털이 부드러운 것.


육절(六切)

←전지(全紙) 참조


육필(肉筆)

손으로 직접 쓴 글씨.


윤갈(潤渴)

먹의 농담, 속도에 의해 나타나는 필획이 윤택하거나 마른 느낌.


음각(陰刻)

글자를 오목판으로 새기는 것.


의임(意臨)

시각적인 자형(字形)보다 내면적인 정신을 좇아 임서하는 방법.


인고(印稿)

도장을 새길 때 인면(印面)에 써넣을 글자를 구성한 원고.


인구(印矩)

서화에 낙관을 할 때 도장을 정확하게 찍게 위해 사용하는 도구.


인보(印譜)

도장을 찍어서 모아 엮은 책.


인재(印材)

도장의 재료로서 옥, 금, 동, 나무, 돌 등이 있음.


임서(臨書)

옛날의 훌륭한 법첩을 체본으로 하여 그대로 본 떠 써서 배우는 방법.
효과가 크기 때문에 초심자나 대가나 임서를 많이 사용한다.
옛사람의 글씨를 자습서로 하는 경우와 스승의 육필을 자습서로 하는 경우가 있다.


운지법(運指法)

체본의 글자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듯이 연습하는 방법


운필법(運筆法)

붓을 움직여 가는 것, 즉 용필(用筆)에 따른 붓의 운행의 변화에 의해 필획이 표현되는 방법.


원필(圓筆)

기필과 수필의 형이 둥근 원형의 필획으로 우아 유창한 기분이 들며 한글 판본체인 훈민정음 원본에서 볼 수 있음.


유연묵(油煙墨)

기름을 태워서 생기는 그을음에다 아교와 향료를 섞어 만든 먹.


유호

(柔豪)

붓의 털이 부드러운 것.


육절(六切)

←전지(全紙) 참조


육필(肉筆)

손으로 직접 쓴 글씨.


윤갈(潤渴)

먹의 농담, 속도에 의해 나타나는 필획이 윤택하거나 마른 느낌.


음각(陰刻)

글자를 오목판으로 새기는 것.


의임(意臨)

시각적인 자형(字形)보다 내면적인 정신을 좇아 임서하는 방법.


인고(印稿)

도장을 새길 때 인면(印面)에 써넣을 글자를 구성한 원고.


인구(印矩)

서화에 낙관을 할 때 도장을 정확하게 찍게 위해 사용하는 도구.


인보(印譜)

도장을 찍어서 모아 엮은 책.


인재(印材)

도장의 재료로서 옥, 금, 동, 나무, 돌 등이 있음.


임서(臨書)

옛날의 훌륭한 법첩을 체본으로 하여 그대로 본 떠 써서 배우는 방법.
효과가 크기 때문에 초심자나 대가나 임서를 많이 사용한다.
옛사람의 글씨를 자습서로 하는 경우와 스승의 육필을 자습서로 하는 경우가 있다.


첨삭(添削)

교사가 학생의 작품을 목표에 따라 고치거나 보완해 주는 것으로 주로 주묵(朱墨)을 사용해서 함.


체본

서예 학습에서 임서를 할 때 본보기가 되는 글씨본.


측봉(側鋒)=편봉(偏鋒)

붓의 끝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행필하는 것(→중봉)


침완법(枕腕法)

팔의 자세로 왼손을 오른손의 베개처럼 받치고 쓰는 방법. 작은 글씨를 쓰는 데 적합.


탁본(拓本)=탑본(榻本)

돌, 금속, 나무 등에 새겨진 문자나 문양 등을 직접 종이에 베끼어 내는 것.


파세(波勢)=파책

예서의 횡획의 수필에서 붓을 누르면서 조금씩 내리다가 오른쪽 위로 튕기면서 붓을 떼는 방법. 예서의 특징임.


판본체(版本體)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의 모양을 본뜬 글씨체로 목판에 새겨진 문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팔절(八切)

←전지(全紙)


표구(表具)

표구란 서, 화, 자수,탁본,섬유공예, 사진 등의 작품을 보존, 보관, 전시 또는 완상하기 위하여 족자, 액자, 병풍, 서화첩, 횡권 등으로 표장하는 제반 기술적 방법을 말하며, 넓은 뜻으로는 낡거나 훼손된 작품의 보완과 재생 작업까지도 포함된다.
표구는 원래 일본에서 사용한 용어이며, 우리나라는 한일합방을 전후로 쓰기 시작해서 지금은 널리 일반화되었다.
표구로 불리기 이전에는 표장, 장배, 표배, 장황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장황이 가장 오래전부터 쓰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장황이란 '단장할 장'과 '책꾸밀 황'의 합자로서 글뜻 그대로, 책을 꾸미고 단장하는 기술행위를 말한다.
장황은 이희승 편의 국어 대사전에서도 "책이나 서화첩을 꾸미는 일"로 풀어 쓰고 있는데,
본래 표구라는 개념의 성립은 고대 서적의 제책, 또는 불경의 장정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족자나 병풍들의 본격적인 표장물이 나타나기 전에 간단한 서적이나 사경을 재단하고 꾸며서 마무리 짓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을 장황사라 불렀다.
원래 단순한 배접과 재단, 또는 경권의 쾌선을 치는 작업만을 의미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표구의 개념은 후대에 이르면서 장정기술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게되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수리와 재생을 비롯한 보존기술까지 포함하고 있다.


필력(筆力)

글씨를 쓸 때 필력(筆力)은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요소다.
서예작품상으로 보거나 감 상적인 측면에서 보거나 필력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제일 중요한 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이 것을 가지고 일반 사람들은 힘이 있다 혹은 없다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심개주(沈芥舟)는 <논필법(論筆法)>에서
"옛사람이 말하길 필력은 능히 솥을 들 정도가 되어야 하며, 기(氣)는 가라앉혀야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붓을 댈 때에는 기를 위주로 하되 힘도 함께 이르러야 한다."라고 하였다.
당태종(唐太宗)도 "지금 내가 옛사람의 글씨를 임서 (臨書)함에 있어서 비록 그 형세는 배우지 못하지만 주력하는 것은 골력(骨力)을 구하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형세는 자연히 생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논법은 힘을 어떻게 보내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말은 없지만 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필력이란 현묘하여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작품 중에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감상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글씨를 씀에 금방 터득할 수 있다.
필력의 강약을 표현하는 데 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본기와 기교다.
연로한 서예가나 젊은 작가 심지어는 아동들이라도 모두 필력을 추구하고 표현할 수 있다.
세련되고 박력이 있으며, 건장하고 힘이 있으며, 침착하면서도 무게가 있으며, 순박하고 무던하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필력을 표현한 말들이다.
또한 붓을 쓸 때 빠르고 더디게 하거나, 가볍고 무겁게 하거나, 점과 획을 거칠게 혹은 가 늘게 하고, 또는먹색의 농담에 따라 변화를 주거나, 손가락·팔·팔꿈치·어깨 등의 힘을 운 용하여 필력의 정도를 표현한다.
옛사람들은 항상 침착하면서도 통쾌한 것으로 필력을 형용 하곤 하였다.
침착하다는 것은 글씨가 나부끼지 않는 것으로 붓에 먹물이 충분히 스며들게 하여 종이에 눌러 쓰는 것을 말한다.
통쾌하다는 것은 필세가 유창하면서도 나는 듯하여 거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대조적이지만 통일체를 이루어야만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이 결합되어 생동감이 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손가락, 팔, 팔꿈치, 어깨 등 의 힘이 붓 끝에까지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기교와 붓을 다루는 방법이 숙달되어야 필력의 강약과 후박(厚薄)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필력이 어떻게 도달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논할 때 힘이 건장한 사람은 필력이 왕성하고 힘이 없는 연약 한 여자는 필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필력의 관건은 바로 기교와 붓을 다루는 성숙도의 여부와 관계가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붓을 댈 때에는 기(氣)를 위주로 한다고 하 였으니 이점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글씨를 쓸 때에는 먼저 마음을 움직여야 하며 다음은 몸을 움직여 온몸의 힘이 어깨를 통하여 손가락에 전달되고 이것이 다시 붓 끝에 집중되어 야 비로소 종이를 뚫는 듯한 필력이 나오게 된다. 강유위(康有爲)는 말하길 "온몸의 힘을 쓰려면 반드시 팔이 지면과 수평을 이루어야 하며, 붓은 지면에 수직으로 세워야 하며, 근육을 모르려 팔뚝이 어깨 안에 들어오도록 하여야만 온몸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필력의 실현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니 참고하기를 바란다.


필맥(筆脈)

필획의 뼈대.


필방(筆房)

서예에 필요한 여러가지 용구를 파는 곳.


필법(筆法)

운필과 용필을 통틀어 일컫는 말.


필봉(筆鋒)

붓털 중에서 뾰쪽하고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부분을 필봉(筆鋒)이라고 한다. 이외에 글자의 첫 시작 부분도 필봉이라고 한다.
붓을 움직일 때 붓의 뾰쪽한 부분을 글자의 중심에 오게 하여 글씨를 쓰는 것을 중봉(中鋒)이라 하고, 붓 끝을 감추어 모서리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을 장봉(章鋒)이라고 한다.
만약 붓 끝이 한 쪽으로 치우쳐진 상태로 글씨를 쓰게 되면 편봉(偏鋒)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잘못 된 것으로 간주한다.
모필의 탄력성은 필봉에 의하여 좌우된다.
필봉이 길면 길수록 탄력성도 풍부하고 먹의 함유량도 많아서 글씨를 쓸때 점과 획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원활하 게 할 수 있다.
붓을 움직일 때, 한 번 당기면 곧바로 되고 한 번 누르면 붓이 엎어지고 점 과 획을 꺾고 누르고 글자 사이의 종과 획을 교차시키며 서로 연결하게 하는 것도 모두 필 봉의 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서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용필(用筆)은 바로 필봉에 달려 있다.
붓 끝을 바로 하거나, 기울게 하거나, 거꾸로 하거나, 순하게 하거나, 무겁게 하거나, 가볍게 하거나, 실(實)하게 하거나, 허(虛)하게 하거나 등은 모두 필봉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 중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무겁고 가라앉은 느낌이 나며, 장봉으로 글씨를 쓰면 온후하고 중후한 맛이 나면서 뼈와 근육을 감출 수 있다.
역봉(逆鋒)으로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을 웅건하고 육중하게 할 수 있고, 노봉(露鋒)으로 글씨를 쓰면 정신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으며, 측봉(側 鋒)으로 글씨를 쓰면 험하고 기이한 맛을 나타낼 수 있다.
붓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위와 같은 효과가 나오므로 각자 개성과 특성에 맞는 필법을 선택하여 쓰면 된다.
초학자들이 글씨를 쓸 때에는 항상 붓 끝에 힘을 주어 종이를 뚫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만일 힘을 제대로 주지 않고 글씨를 쓰면 점과 획이 미끄러져 판에 박힌 듯한 글자가 나오게 된다.


필사(筆寫)

문자를 직접 써서 베끼는 것.


필산(筆山)

쓰던 붓을 얹어 놓는 용구.


필세(筆勢)

운필의 세기.


필세(筆洗)

붓을 빠는 그릇.


필속(筆速)

필획을 긋는 속도.


필순(筆順)

필획을 긋는 순서.


필압(筆壓)

붓의 압력, 즉 누르는 힘.


필의(筆意)

운필에서 점, 획의 상호 간에 보이지 않는 연결성.


필적(筆跡)

붓으로 쓰여진 문자나 그 문자가 실려 있는 책이나 문서.


필획(筆劃)

붓으로 그은 선.


항간(行間)

여러 줄의 글씨를 쓸 때 줄과 줄 사이의 간격.


행필(行筆)=송필(送筆)

점과 획이 기필에서 시작되어 나아가는 과정.


향세(向勢)

마주 보는 두 획을 서로 바깥쪽으로 부푼 듯이 휘게 쓰는 것으로 원필의 경우에 나타나며, 안진경의 해서체에서 많이 볼 수 있음.


현완법(懸腕法)

팔의 자세로 왼손으로 종이를 가볍게 누르고 오른쪽 팔꿈치를 지면과 나란하게 들고 쓰는 방법으로 큰 글씨나, 중간 정도 이상의 글씨에 적합함.
원(元) 나라 진역회(陳繹會)는<한림요결(翰林要訣)>에서 "팔을 공중에 드는 것이 가장 힘이 있다."라고 하였으며, 청(淸)나라 주리정(朱履貞)은 <서학첩요(書學捷要)>에서 "팔을 들면 뼈의 힘이 함께 이르게 되어 글자의 형세도 끝이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현완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칭찬한 말들이다.
팔에서 팔꿈치에 이르는 부분을 책상에 대지 않고 들고서 글시를 쓰게 되면, 온 몸의 힘이 붓끝에까지 미칠 분만 아니라 붓도 곧바르게 되어 종횡으로 움직일 적마다 자유자재로 할 수가 있다. 또한 큰 글씨나 행초를 막론하고 움직임이 영활하기 때문에 생기발랄하면서도 막히지가 않게 된다. 이러한 현완법이 초학자에게 있어서는 쉽지 않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붓을 떠는 현상도 생기게 되어 많은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위축되지 말고 정진하게 되면 팔의 힘도 자연히 조금씩 증강하게 된다.


현판(懸板)

횡액의 형식을 말하기도 하고 서각(書刻)된 것을 일컫기도 함.


형임(形臨)

자형(字形)에 치중하여 사실적으로 임서하는 방법.


호(豪)

붓의 털.


혼서체(混書體)

판본체에서 궁체로 변해가는 과정에서의 한글 서체의 한 종류.


화선지(畵仙紙)

書, 畵 전문 용지로서 보통 전지 한장의 크기가 가로 70㎝,세로 130㎝ 정도임.


황모필(黃毛筆)

족제비 털로 만든 붓.


횡액(橫額)

가로가 긴 형의 액자.


횡획(橫획)

가로로 긋는 필획.


흘림

정자의 점과 획을 서로 연결하여 쓰는 한글 서체의 한 종류.

 

한국인의 손으로 그려진 회화를 총칭하는 의미로 확대 해석할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한국의 전통적 기법과 양식에 의해 다루어진 회화를 말한다. 종래까지 서양화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통용되던 동양화라는 명칭을 일제(日帝)에 의해 타율적으로 조성된 용어로 비판, 이를 주체적 입장에서 개칭하여 최근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갈필(渴筆)
붓에 먹물을 글히 아껴서 그리는 법으로 남화 계통에서 많이 사용한다.
건필(乾筆)이라고도 한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윤필(潤筆)이다. 중국 남종화(南宗畵)는 갈필을 존중하여 노고(老枯)의 취향을 즐겼고, 이에 대하여 북종화(北宗畵)는 윤필을 위주로 하여 먹에 윤택이 있는 것을 존중하였다. 묘법에 알맞게 만들어진 빳빳한 털로 만든 붓도 갈필이라 한다.


감필묘(減筆描)
붓을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적게 사용한 최소한의 선(線)으로써 그리는 기법이며, 자유분방하고도 재빠른 속도로 다루어진다.
주로 선승화가(禪僧畵家)들에 의해 애용되었고 남송(南宋)의 양해가 전통을 확립시킨 것으로서 인물화를 사의적(寫意的)으로 표현할 때 많이 사용된다


강남화(江南畵)
북송(北宋)의 미불에 의하면 강남 지방의 툭유한 화법을 지칭하며, 그 기원은 고개지로부터
라고 한다.
따라서 동원(董源)계통의 산수화뿐만 아니라 강남의 기상을 나타내는 피마준 또는 비백(飛白)이나 초서의 법을 활용한 특징적 묘사 형식을 의미한다고 본다.
원(元), 명대(明代)에서는 미법산수(米法山水)나 강남을 주제로 한 작품을 의미한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 동양 회화(東洋繪畵)를 공부하는 데 필요한 이론(理論)과 실기(實技)를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다.
1675년 청나라 강희(康熙) 18년에 1집이 출간되었고, 그로부터 22년만인 1701년에 3집까지 완성되었다.
개자원은 명나라 말기 중국의 강소성(江蘇省) 금릉현(金陵縣) 남경(南京)에서 살던 부호이자 예술 애호가인 이어(李漁, 1611-1680)의 별장이다.
그의 후원하에 그의 별장에서 작업이 이루어져 개자원화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명나라 말기의 산수화가 이유방(李流芳, 호는 檀園, 1575-1629)이 그린 화본(畵本)을 이어(李漁)가 그의 후손으로부터 입수하여 사위인 심심우(沈心友)가 이유방의 화본을 바탕으로 더하고 편집하고 목판으로 인쇄하여 펴낸 것이다.
역대 화가의 그림을 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유방이 구해 볼 수 있었던 여러 화가들의 필흔을 읽을 수 있다.
《개자원화전》은 크게 3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집은 산수화, 2집은 화훼(花卉)와 초충(草蟲), 영모(翎毛) 등이, 그리고 3집에는 각종 채색 사용법과 역대 명인의 화과(花果), 영모의 모사본(模寫本)이 실려 있다.
우리 나라에 《개자원화전》이 전래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세기 초반에는 널리 알려져 당대의 화가들에게 교과서로서 그 끼친 영향이 많았으나, 지나치게 화보에만 의존한 나머지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지 못한 폐단도 많았다.


건필(乾筆)

물기가 거의 없는 마른 붓을 말하며 이런 상태에서 먹을 찍어 발라 사용한다.
원대(元代)이후의 남송화가(南宋畵家)들이 많이 애용하였다.


경영하필(經營下筆)
붓을 대기 전에 먼저 그림 전체에 대한 구성을 철저히 하여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경직도(耕織圖)
권계도(勸戒圖)의 한 화제. 농민의 근면함과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천자(天子)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또는, 왕후(王后)나 왕자의 교육용으로 제작된 것이 경직도의 기원이다.
즉 남송의 누숙이 고종에게 진상했던 것이 처음이며, 경도(耕圖) 21, 직도(織圖) 24장면에 각각 오언시(五言詩)를 써넣은 것이 본래의 체재지만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계화(界畵)
자를 이용하여 정밀하게 그리는 그림으로 건물 및 성벽을 그릴 때 주로 사용된다.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전설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그림.


고원(高遠)
산수화의 원근법인 삼원(三遠)중의 하나로서 산의 밑에서 높은 봉우리를 올려다볼 때의 모습이다.
산의 높이를 강조할 때 사용되며 삼원중에서 가장 보편적이다.
이때의 산의 모습은 험준하고 가파르며 분명하다.
고화품록(古畵品錄)
육조시대(六朝時代) 사람인 사혁의 저서이며, 일종의 화론집이다.
여기서 사혁은 필법의 요체를 육품(六品) 혹은 육법(六法)으로 나누어 논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동양화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육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운생동(氣韻生動) : 정신성의 표현방법을 말한다.
2. 골법용필(骨法用筆) : 결구(結構) 혹은 운필 방법을 말한다.
3. 응물상형(應物象形) : 사실적인 표현 방법을 말한다.
4. 수류부채(隨類賦彩) : 색채 혹은 명암법을 말한다.
5. 경영위치(經營位置) : 구도 및 위치 설정법을 말한다.
6. 전리모사(傳移模寫) : 사물의 모방법을 말한다.


공필(工筆)
표현하려는 대상물을 어느 한구석이라도 소홀함이 없이 꼼꼼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기법으로 외형묘사에 치중하여 그리는 직업화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사의(寫意)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과석도
괴석도의 한 화제로 구멍이 뚫린 형상의 돌을 주제로 그리는 그림.


관(款) [ 관지(款識), 관서(款署), 관기(款記)]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작가의 이름과 함께 그린 장소나 게작일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그렸는가를 기록한 것이다.
이 기록의 필치나 위치는 그림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관방인(關防印)
서화의 우견측(右肩側)에 압인(押印)한 도장.
약하여 관방이라고도 한다.
광태사학파(狂態邪學派)
15세기 후반과 16세기에 활동했던 명대절파(浙派)후기의 오위(吳偉)와 장로(張路),장숭(莊嵩)과 같은 일군의 직업화가들의 화풍을 가르킨다.
이들이 몹시 거치고 강렬한 필묵법을 사용해서 그린 그림의 경향을 당시의 문인화가들이 미치광이 같은 사학(邪學)이라고 비난하여 부른데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구륵(鉤勒)
형태의 윤곽을 선으로 먼저 그리고 그 안을 먹이나 채색으로 메우는 기법이다.
몰골화(沒骨畵)에 대치되는 수법이다.


구인묘(?蚓描)
지렁이 같은 구불구불한 선으로 그리는 옷 주름의 한 묘법(描法).


국화점(菊花點)
나무 잎 묘법의 일종.
가늘고 자잘한 세선(細線)으로 국화가 활짝 핀 것 같이 8번 혹은 9번을 돌려찍는 수법이며 주로 근경의 나무를 그릴 때 이용한다.


궁정파(宮廷派)
일명 공필인물파라고도 한다.
궁정 인물들의 호화로운 취미 생활을 화려하고 치밀한 수법으로 표현하였다.
이 파는 당에서 오대를 거쳐 송까지는 융성하였으나, 원, 명, 청대에 와서는 쇠퇴하였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당의 주방, 오대의 주문거, 남송의 유송년 등이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근대 서가로서 유명한 오세창이 편술한 우리 나라 최초의 서화가 인명사전이다.
이 사전은 1928년에 출판되었는데 신라 시대에서 근대까지의 총 1,117명의 서화가를 수록하였으며, 수많은 고전적을 참고하여 개개인의 평문을 원문에서 뽑아 실었다.
특히, 말미에 원전을 밝히고 있어 우리 나라 회화사 연구에 기본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금릉팔가(金陵八家)
명조가 청에 망하자 명조 황실 출신의 많은 이들이, 이(異)민족의 통치에 반발하여 심산유곡에 숨어 들어가 살면서, 자신들의 꿋꿋한 지조를 회화로서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 화풍은 각기 개성과 독창성에 있어 시대를 초월한 감이 있으므로 금릉팔괴(金陵八怪)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대개 금릉 출신이거나 그 지방에 숨어 지낸, 팔대산인(八大山人), 석도(石濤), 석계, 매청, 공현, 사사표, 홍인, 전산을 말한다.


금벽산수화(金碧山水畵)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 혹은 북종산수화(北宗山水畵)라고도 한다.
작품은 장식성이 짙고, 고전적이며 채색법이 매우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당대의 이사훈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금은니(金銀泥)

금이나 은가루를 아교물에 개어 만든 안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흰바탕의 종이등에서는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없으며 감지(紺紙)와 같이 어두운 바탕에 사용되어 독특한 효과를 낸다.
주로 사경(寫經)과 같은 종교용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일반서화에도 간혹 쓰여졌다. 은니는 나중에 변질되는 결점이 있다. 이징의 산수도가 유명하다.
이징의 〈이금산수도〉는 검은 비단에 금물을 풀어 그림을 그린 것으로, 대단히 귀한 그림 중의 하나이다.
이런 귀한 재료를 써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궁중 화가로서의 이징의 위치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듯 펼쳐진 산봉우리의 모양이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안견의 화풍을 띠고 있다.
이는 이징이 활동하던 시대에 다른 화가들은 주로 절파 화풍의 산수화를 그렸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먹을 쓰듯 금물로 농담(濃淡)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그려내었는데, 이처럼 화려한 산수화가 걸렸을 벽은 어떠하였을까?」

기명절기(器皿絶技)
진귀한 기물과 꽃가지, 과일 등을 조화있게 배치하여 그리는 일종의 정물화.


기승전결(起承轉結)
구도법(構圖法)의 하나이며, 본래의 뜻은 시문의 작법에서 연유한다.
즉, 처음을 기라하고, 이 뜻을 이어 쓰는 것을 승, 중간에서 변화를 주어 뜻을 바꿈을 전이라 하며, 위의 모든 것을 거두어 끝맺음을 결이라 한다.


기졸(記拙)
오우가의 작자인 윤선도의 증손이며, 조선조 중기의 대표적 화가인 공재 윤두서의 저작으로 일종의 그림 평론집이다.
1982년에 발견되었으며, 그 내용은 안견, 이상좌, 김명국, 등을 비롯한 조선조 전기의 화가 20명에 대한 비평과 함께 중국의 소동파, 조자앙 등에도 평을 가하였다.
또한 공재 자신의 화론(畵論)을 피력하고도 있어 화론 부재의 우리 나라에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 윤두서
윤두서(1668-1715)는 우리 회화사상 조선 중기와 후기를 잇는 중요한 화가이다.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로,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외증조이다.
1693년 스물다섯 살에 진사가 되었으나 당쟁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일생을 보냈다.
1712년 45세 때에는 전라남도 해남의 연동(蓮洞)으로 낙향하여 그림과 글씨를 벗하며 보냈는데, 특히 인물화와 말 그림을 잘 그렸다.
그의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이 모두 그림을 잘 그렸고, 외증손인 다산 정약용에게도 은연중 영향을 미쳐 실학적인 측면에서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현재 해남 종가(宗家)의 녹우당(綠雨堂)에는 그의 대표작인 자화상 이외에도 다양한 학문적인 경향을 알려주는 지도며 그림첩 등이 보관되어 있다.
특히 그의 소장품 중에는 남종 문인화풍의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씨역대명인화보(顧氏歷代名人畵譜)》도 있어서 그가 남종화풍과 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유명한 윤두서의 〈자화상〉과 〈채애도〉 등 60여 점의 소품으로 꾸며진 《해남윤씨가전고화첩》과 다수의 그림이 전하며, 저서로는 《기졸(記拙)》이 있다.

※ 안견
현동자(玄洞子) 안견은 조선조 초기 화가 중 가장 뛰어난 화가이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본관은 지곡(芝谷), 자는 가도(可度)이고, 세종, 문종 연간에 도화서의 전신인 도화원(圖畵院)의
화원으로서 활동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후대의 화가나 화론가(畵論家) 들이 그를 찬탄하는 글을 남기고 있는데, 성현(成俔)은 《용재총화》에서 "안견은 천성이 총민한데다 고래의 명적(名籍)을 많이 보고 연구하여 그 요체를 터득하고 고금 명가들의 장점을 모두 규합 절충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으며, 그의 산수화는 특히 빼어났다"고 적고 있다.
안견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았고, 안평대군의 수장품 중에 많은 수를 차지한 북송대 곽희(郭熙)의 화풍을 토대로 여러 화풍을 소화하여 나름대로 독특한 양식을 형성하였다.
그는 산수화에 가장 특출하였으며, 그 밖에도 초상(肖像), 화훼(花卉), 매죽(梅竹), 노안(蘆雁), 누각(樓閣)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그러나 기록과는 달리 실제로 남아 있는 작품은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 한 점밖에 없다. 그 외에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와 〈적벽도(赤壁圖)〉 등이 그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들 작품을 통해서 그의 화풍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그의 그림인 〈몽유도원도〉 한 폭만 보더라도 그의 뛰어난 기량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 이상좌
이상좌는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 활약한 도화서 화원 출신의 화가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공우(公祐), 호는 학포(學圃)이다. 산수인물화(山水人物畵)를 잘 그렸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생애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숙권의 《패관잡기》에 의하면, 본래 그는 어느 양반의 노비였으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나 중종(中宗)의 특명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고 하며, 또한 1544년에 중종의 초상화를 그린 이른바 어용 화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화가인 이숭효(李崇孝)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숭효의 아버지는 이배련(李倍蓮)이라는 기록도 있어서 이배련과 이상좌가 동일 인물인지 혹은 기록상의 오류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들도 모두가 그가 그렸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지 진필로 확인되는 것은 없다. 이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이다.

※ 김명국
김명국(1600-?)은 조선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본관은 안산(安山)이며, 자는 천여(天汝), 호는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이다.
도화서의 화원으로서 교수(敎授)를 지냈으며,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그림을 청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밤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했으며 몹시 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어서 대부분의 그림들은 취중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기질은 그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즉 굳세면서도 매우 호방하고 거친 필법을 보인다.
그의 작품은 조선 전기의 안견파 화풍을 보이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이 절파 후기의 광태사학파적인 산수인물화이다.
화제는 산수화나 달마도와 같은 선종화가 주류를 이루는데, 대담한 붓질로 간략하게 표현하면서도 대상의 내면적 세계를 잘 표출하였다.


김정희파(金正喜派)
조선왕조말기의 문인화가인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였던 조희룡, 허유, 전기등이 그 대표적인물들이다.
이들의 화풍은 남종문인화를 숭상하였다.


나한도(羅漢圖)

나한은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 최상급의 수행자이자, 공덕을 구비한 학자인 아라한의 약칭.
그 상(像)은 이미 육조(六朝)때부터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였고, 당대에는 현장의 법주기(法住記) 역편(譯編)에 따른 십육나한(十六羅漢)의 신앙과 그림이 나타났다.
그 후 다시 십팔나한, 오백나한을 비롯한 중국적 해석에 의한 많은 변화와 형식이 생겼다.


낙관(落款)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로서 서화(書畵)에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인장(印章)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후한(後漢)의 서화가 채옹은 영제(靈帝)의 명에 의하여 "적가후오대장상도(赤家侯五代將相 圖)"를 그렸고,여기에 찬문(撰文)까지 쓰게 되었는데 이 찬문은 곧 현대 동양화에 있어서 화제(畵題) 또는 제시(題詩)의 시초가 된다.
또한, 서화 작품에 낙관(落款)이라는 일종의 풍류지사(風流之事)를 즐겨하게 되는 것은 중국 송시대(宋時代)부터 그 전통이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세하게 쓸 경우에는 시구(詩句), 연월, 간지(干支), 쓴 장소, 쓴 이유, 증여한 상대방의 성 호를 써넣은 다음 자기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는 수도 있다.


난마준(亂麻)
불규칙하게 결합되어 있는 산이나 바위가 침식된 모습을 나타낸다.
남송원체 화풍 (南宋院體畵風)
궁정 취향에 따라 화원을 중심으로 이룩된 직업화가들의 화풍을 말하며 궁정의 유행이 때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일정한 양식(樣式)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남송화
남송시대에 강남지방의 온화한 기후와 나지막한 산, 그리고 물이 많은 특이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이룩한 화원의 화풍을 말하며 그 중에서도 마하파화풍이 전형적인 것이다.


남종화(南宋畵)
중국 회화를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基昌)과 막시룡(莫是龍)등이 당대 선종의 남북분파에 따라 구분 지은데서 생긴 명칭이다.
남종화는 대체로 인격이 높고 학문이 깊은 선비가 여기(餘技)로 수묵(水墨)과 담채(淡彩)를 써서 내면세계의 표출에 치중하여 그린 간일하고 품격 높은 그림을 말한다. 원말(元末) 이후로는 남종화가 구도나 준법, 필법, 수지법 등에서 일정한 화법사의 형식화 이루어 졌으며 이것을 문인화가뿐만 아니라 직업화가들도 본받아 그렸었다.


다자도(多子圖)
길상도(吉祥圖)의 한 화제로 아들이 많고, 또한 이들이 건강하고 총명하게 자라 집안을 크게
빛낼 수 있도록 기원하는 그림을 말한다.
보통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1.씨가 많은 석류를 그린다.
2. 백명의 사내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광경을 그린 백자도(百子圖).
3. 아들, 손자가 많았던 고사인물(故事人物), 또는 이런 노인 옆에 여성과 많은 아이들이 있는 그림.


단선점준

2-3mm정도의 짧은 선이나 점의 형태를 띤 준법으로 가늘고 뾰족한 붓끝을 화면에 살짝 대어 약간 끌거나 터치를 가하듯하여 집합적으로 나타낸다.
산이나 언덕의 능선 주변, 또는 바위의 표면에 촘촘이 가해져 질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며, 우리 나라 15세기 후반의 산수 화에서 필획이 개별화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전반경에 특히 유행했었다


단필마피준법(短筆麻皮)
짧은 마(痲)를 풀어 놓은 듯한 약간 거친 느낌을 주는 준으로 부서지고 각진 바위나 산봉우리의 효과를 낼 때 주로 쓰인다. 남당(南唐)거연(巨然)의 작품에서 잘 볼 수 있다.


담묵(淡墨)
흐린 먹. 물을 많이 주어서 연하게 사용하는 필법


대도도(待渡圖)
강가의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는 인마의 모습을 주제로 한 풍속화의 한 화제.


대부벽준법(大斧劈)
큰 도끼로 찍었을 때 생기는 단면과 같은 모습의 준으로 붓을 기울인 자세로 쥐고 폭 넓게 끌어 당겨 만든다. 수직의 단층이 더욱 부서진 효과를 낼 때 사용하며 남송의 이당(李唐), 마원, 하규 등이 애용했다.


대칭구도 (對稱構圖)
좌우가 대체로 대칭을 이루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구도를 말한다.


대혼점(大混點)
타원형처럼 생긴 비교적 큰점으로, 붓을 옆으로 뉘어서 혼란하게 찍는다.
무성한 여름 나뭇잎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며 산의 묘사에도 가끔 쓰인다.


도말만폭(塗抹滿幅)

화면 전체를 빈틈없이 쳐 바르거나, 전체를 그림으로 채워서 여백의 미를 살리지 못한 그림을 일컬으며, 매우 답답하여 운치가 없는 죽은 그림이 된다.


도석화(道釋畵)

도교 및 불교 관계의 인물화를 말하며, 대개 종교상 숭배할 만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인 달마대사의 상은 도석화의 대명사와 같이 쓰인다.


도원도(桃源圖)

고사산수화(故事山水畵)의 한 화제. 도원은 호남성 도원현에 있는 무릉도원동의 약칭이다.
동진의 도연명이 [도화원기]를 지은 후로 도원이란 말은 별세계 또는 선경(仙境)을 뜻하게 되었다.
복사꽃이 어우러지는 산언덕이 그려지며 물가에는 평온한 정경으로 어부와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초기의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도화서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는 기관이다.
이 도화서는 처음에는 도화원(圖畵院)이라고 하다가 1469년(예종 1) 이후부터 도화서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관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는데 신라에서는 채전(彩典), 고려에서는 도화원, 그리고 조선에서는 도화서라고 하였다.
도화서는 예조(禮曹)에 속하는 종육품 아문(從六品衙門)으로서 제조(提調) 1명과 별제(別提) 2명, 그리고 화원(畵員) 2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화원은 종육품인 선화(善畵) 1명, 종칠품인 선회(善繪) 1명, 종팔품인 화사(畵史) 1명, 종구품인 회사(繪史) 2명 등 녹봉을 받는 5명의 직위가 있었고,
이외에 3명의 화원만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였고 나머지는 그것마저도 없는 미관 말직(微官末職)이었다.
별제는 화원으로서 진급할 수 있는 최고의 직위였으나, 도화서의 화원들은 신분적으로 천시되었기 때문에 화원에서 진급하여 올라가기보다는 그림을 이해하는 사대부(士大夫)가 임명되었다.
이렇게 낮은 신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고을의 현령(縣令)으로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화원을 뽑을 때는 대나무(竹), 산수(山水), 인물(人物)과 영모(翎毛), 화훼(花卉) 등을 4등급으로 나누어 이 중 2가지를 보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높은 등급인 대나무와 산수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는 유교(儒敎)를 숭상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화서는 조선시대 말 순종 때까지 존속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수요가 많아 인원과 규정이 달라졌다
.

독필(禿筆)
몽당 붓.


동경(同景)

여러 면 전체가 한 주제의 그림으로 이어진 병풍.
연결병풍.


두방(斗方)
작은 정사각형의 그림으로 보통 화첩으로 엮을 때 사용된다.


마아준(馬牙)
남송의 화가 조백구가 창안한 것으로 그 생김새가 말 이빨과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마피준법(麻皮)
마(馬)의 올이 얽힌 것 같은 준으로 다소 거친 느낌을 준다.
피마준법(披麻)과 비슷하며 남당(南唐)의 동원(董源)이 많이 사용했다.


마하파(馬夏派)
남송(南宋)의 화원에서 활약했던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해 형성된 화파로 주로 직업화가들 사이에서 추종되었다.
마하파의 화풍은 강남지방의 특유한 자연환경과 이를 향유하는 인물을 소재로 하여 근경에 역점을 두되 한쪽 구석에 치우치게 하는 일각구도(一角構圖: 그림의 아래부분 한쪽 구석에 중요한 경물(景物)을 근경으로 부각시켜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구도로 '변각구도'라 고도 함)에, 원경은 안개 속에 잠길 듯 시사적으로 나타내어서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산과 암벽의 표면을 부벽(斧劈)준법으로 처리하고 굴곡이 심한 나무를 근경에 그려넣는 것 등도 이 화풍의 특징이다.


말각조정(抹角藻井)
벽의 네 벽을 좁혀서 덮는 천정가구법(天井架構法)으로 흑해 연안에서부터 근동(近東)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고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고구려에서만 축조되었다.
네 벽 위에 각 중앙점에서 인접 격의 중앙점과 연결되는 삼각형공간을 돌로 덮어서 네 모서리를 줄이면 천정면적이 반으로 줄어들게 되는데 이 방법을 반복하여 마지막 공간을 판석으로 덮는 가구법이다.
완성된 천정을 실내에서 쳐다보면 정사각형속에 마름모꼴이 있고 그 속에 다시 정사각형이 있는 모양이 된다.


망천도(輞川圖)

중국 협서성 람전현에 있는 곡천(谷川)을 망천이라 부른다.
l 당대(唐代)의 왕유가 이곳에 망천장이란 별장을 짓고 풍류를 즐겼다.
이로부터 이 일대의 뛰어난 자연경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데서 이 화제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명황행촉도(明皇行蜀圖)
당의 현종 황제가 안록산의 난을 피해 756년에 촉으로 가게 된 고사를 주제 삼은 그림.
촉으로 가는 험한 산세와 황제 일행의 화려한 인마행렬의 모습이 그려진다.


모(摹)
진작(眞作)을 보고 사실 그대로를 정확하게 옮겨 그리는 것.


몰골화(沒骨畵)

윤곽선을 써서 형태를 정의(定義)하지 않고 바로 먹이나 채색만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을 말하며 구륵화와 대치되는 기법이다.
윤곽선이 없기 때문에 몰골, 즉 뼈없는 그림이라 부르는 것이다.


무진도(無盡圖)
보통은 강산무진도라고 한다.
길게 그린 산수화로 횡축에 그려진다.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44.1cm×856cm)가 유명하다.

묵화(墨畵)
수묵으로 그려지는 모든 종류의 그림을 총칭한다.
약간의 부분적 담채(淡彩)가 있어도 수묵 표현이 주조인 경우는 묵화의 범주에 든다.


문방사우(文房四友)

종이, 붓, 먹, 벼루벼


문인화(文人畵)

문인이나 사대부(士大夫)들이 여가(餘暇)로 그린 모든 그림을 말한다.
문인화는 종종 남종화와 같은 의미로 불리어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문인화가들 중에는 직업적인 화가들의 화풍을 따라 그리는 경우도 있어서 문인화가 곧 남종화라고 하는 정의는 내리기 어렵다.
강희안이나 신사임당이 그 예라 하겠다.


미법 산수(米法山水)
북송대(北宋代)의 문인화가 미불과 미우인(米友仁)에 의해 이룩된 산수화풍으로 이들의 성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미점(米點)을 구사하여 산이나 나무 등을 그리고 비온 뒤의 습윤한 자연이라든가 안개 낀 자연의 독특한 분위기 묘사에 특출한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원.명.청(元明淸)으로 이어지면서 남종화의 한 조류를 이루었다.


미점(米點)
붓을 옆으로 뉘어서 횡으로 찍는 점법으로 미불이 창안한데서 그의 성을 따 붙여졌다.
녹음이 무성한 여름산이나 수림(樹林)을 그릴 때 많이 사용된다.


민화(民畵)
정통화에 반대되는 개념이며 보통은 평민, 천민, 민중 등에서 따온 말이다.
민화의 특색은 다음과 같다.
1. 람(藍), 주(朱), 황(黃), 록(綠)을 주색(主色)으로 한 진채(眞彩)를 사용하므로 무척 화려하다.
2. 대개가 아마추어의 그림인 만큼 매우 자유스러우며, 유머가 있어 과장과 천진스러움이 강하게 나타난다
3. 의식용과 생활의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여 그렸기 때문에 화제(畵題)는 민속 종교적인 경향이 뚜렷하다.
4. 거의가 낙관이 없다.


반차도(班次圖)
정부 의식에 문무백관이 늘어서는 차례를 기록한 도표 혹은 그림.


방인(方印)
4각형 인장(印章) 을 말한다.


백묘인물화(白描人物畵)
색채나 음영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윤곽선만으로 이루어진 인물화를 말하며 북송의 이공린에 의해 전통이 확립되었다.


백묘화(白描畵)
색채나 명암이 없이 윤곽선만 그린 그림.
백화(白 )라고도 한다.
백문(白文)
음문(陰文)과 동일하다.


번두준

산봉우리를 그릴 때 평평하게 하여서, 여럿이 노닐 수 있게 한 공간을 말한다.


법첩(法帖)

체법(體法)이 될만한 명필의 서첩(書帖).


변장(邊章)

서명의 옆이나, 그림의 하단부 양쪽 구석을 제외한 부분에 찍힌 도장.


보상화문(寶相華文)
고대 오리엔트와 그리이스의 장식요소인 부채꼴 형식의 팔메트잎을 변화시켜 이룩된 화려하고 복잡한 양상을 띤 꽃모양의 문양으로 수(隋) 당(唐)시대에 불교 미술에서 자주 묘사되었다.


부벽준
바위의 표면 처리에 많이 쓰이는 법으로, 붓을 옆으로 비스듬히 뉘어 재빨리 들면서 끌어당겨 마치 도끼로 찍었을 때의 자국 같은 모습이다.
바위의 모난 모양을 표현하고자 할 때 많이 쓰며, 남송원체(南宋院體) 화가들이나 명대의 절파(浙派) 화가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다.
자국의 크기에 따라 대부벽준과 소부벽준이 있다.


북종화(北宗畵)
화원(畵員)이나 직업적인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진한 채색(彩色)과 꼼꼼한 묘사로 마치 사진처럼 외형 묘사에 주력하여 그린 장식적인 그림을 말한다.
선비 화가들이 주로 그렸던 남종화(南宗畵)와 대(對)가 되는 표현이다.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其昌)과 막시룡(莫是龍)은 산수화의 화풍을 남종화와 북종화의 둘로 나누었는데, 북종화를 당나라 때의 이사훈(李思訓)과 이소도(李昭道) 부자에서 시작되어 송대(宋代)의 이당(李唐), 유송년(劉松年), 조백구(趙伯駒), 마원(馬遠), 하규(夏奎), 명대의 대진(戴進), 오위(吳偉), 장로(張路) 등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 용어가 나오게 된 동기창의 분류 기준으로는 신분의 고하가 분류의 기준으로 작용하였던 듯하나, 우리 나라에 유입되어서는 신분상의 구분이기보다는 이들 화가들의 화풍을 본뜬 화풍상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분본(粉本)
초고(草稿), 화고(畵稿) 혹은 밑그림이라 말한다.
옛날의 화고가 호분(胡粉)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비백(飛白)
서, 화를 그릴 때 붓의 먹물이 건조해서 붓자국에 흰 공간이 들어간 모양.


사계화(四季花)

작약, 철쭉, 한국(寒菊), 동백.


사녀도(仕女圖)
궁중에서 생활하는 여인들을 주제로 한 그림.
이런 그림은 한 대(漢代)에서 시작되었으며, 수, 당대에 이르면 그 성행이 눈에 띈다.
그 대부분이 오대남당(五代南唐)의 주문구의 필법을 따른 예가 많았다.
명, 청대에 이르러서는 상류계급의 부녀를 그린 그림에도 '사녀도'란 이름이 붙는다.


사신 (四神)

청용(푸른용), 백호(흰호랑이), 주작(붉은공작), 현무(검은 거북이)를 말하며 각기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신으로 방위에 따라 정해진 색깔로 표시하였다.
특히 고구려 후기 고분벽화의 단실묘에 많이 그려졌다.
청용 - 동쪽(東), 푸른 빛 / 백호 - 서쪽(西), 흰색 / 주작 - 남쪽(南), 붉은 색 / 현무 - 북쪽(北), 검은 색


사의(寫意)
사물의 외형만을 중시해서 그리지 않고 작가의 내면세계의 뜻을 자유롭게 묘사하거나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하며 남종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산배화사(山背畵師: 야마시로 에시)
일본(日本) 고대 야스카(飛島)시대에 야마토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야마시로 고마노 무라지와 동계(同系)의 고구려 후예로 추정되는 씨족(氏族)화가 집단을 말한다.


삼원(三遠)
동양 산수화에 있어서 고원(高遠), 심원(深遠), 평원(平遠)으로 나누어지는 3종류의 원근법을 말한다.


삼절(三絶)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또는 한시대의 뛰어난 화가와 서예가 새사람을 묶어서 부를 때도 사용된다.


선염(渲染)
먹이나 색채로 각 단계의 점직적인 변화가 보이도록 축축이 번지듯 칠하는 기법으로 붓자국이 하나하나보이지 않게 칠한다.


선종화(禪宗畵)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이념이나 그와 관계되는 소재를 택하여 다룬 그림을 말하며 종교화로서보다 감사화로서의 의의가 더 크다.
전통적인 불교회화와는 달리 수묵(水墨)을 사용하여 간일(簡逸)한 화풍을 이루는 게 상례이다.


소부벽준법(小斧劈)

붓을 옆으로 비스듬히 뉘어 낚아채듯 끌어서 생긴 준으로 작은 도끼로 찍었을 때 생기는 단면과 같은 모습이다. 단층이 모난 바위의 효과를 내며 대부벽준과 더불어 남송원체 화가들이나 절파화가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우리의 전통회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소상팔경도 瀟湘八景圖]라는 제목의 원류는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의 이덕익이라는 화가가 즐겨 그린 것으로 알려지며, 중국의 호남성 동정호 남쪽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류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여덟가지 빼어난 절경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소혼점(少混點)
붓끝으로 찍는 파원형의 작은 점으로 흐리고 진한 것을 뒤섞어 혼란하게 그린다.
산이나 바위, 나뭇잎등의 묘사에 폭넓게 사용된다.


송설체(松雪體)
원대(元代)의 문인화가 조맹부의 서체(書體)를 말하며 그의 호(號)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서(楷書)의 균형잡힌 균정미(均整美)와 행서(行書)의 유려함을 조화시킨 서체로서 우리 나라에는 고려 말기에 유입되어 조선 초기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었다.


수지법(樹枝法)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줄기, 가지, 잎등의 표현기법과 포치 방법을 말하며, 시대와 화파에 따라 특징을 달리하기 때문에 작품의 연대 판정과 양식의 변천을 추구하는데 좋은 증거가 되어 준다.


수직준법(垂直)
정선이 이룩한 준법으로 예리한 필선을 죽죽 그어내려 나타낸다.
대개가 강하고 활달한 맛을 내며 특히 금강산(金剛山)의 내외경의 뾰족한 암산(岩山)을 묘사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실경산수(實景山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명승(名勝)이나 고적(古蹟) 등 실제의 경치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다. 조선시대에는 진경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진경산수라고 하기도 하였다. 동양의 수묵 산수화는 실제의 경치를 사생에 의해 그리기보다는 관념적 이상향의 산수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시기나 지역에 따라 다른 화풍의 산수화가 발달하게 된 것은 실재하는 산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인들의 그림을 방(倣)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당시에는 선인들의 그림이나 화보를 보고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시대에도 이녕(李寧)이 〈예성강도(禮城江圖)〉와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 〈금강산도(金剛山圖)〉 등을 그린 기록이 있어 실경산수화가 그려졌을 것이나 남아 있는 작품은 없다. 실경산수화가 새로운 장르로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정선(鄭敾)에 의해서이며, 그의 일파에 의해 더욱 융성하였으나, 조선 말기김정희 등에 의해 만연했던 남종 문인화에 의해 그 세가 꺾이고 만다.


심원(深遠)
삼원중의 하나로서 앞에 있는 산이나 봉우리로부터 뒤에 있는 산들을 들여다볼 때의 모습이며 산의 깊이를 강조할 때 사용된다.


안견파

15세기 중엽에 이르면 안견은 조선시대 최고의 산수화가로 곽희파화풍을 토대로 마하파 화풍 등 다양한 화풍을 종합하여 독자적인 [안견파화풍]을 이루었다.
이 화풍(양팽손, 정세광, 신사임당, 이정근, 이징 등)은 조선초기는 물론 조선 중기에까지 이어졌고 일본에 건너가 주문파(周文派)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안견은 산수화만이 아니라 초상화, 화훼, 매죽, 누각, 준마, 의장도 등 다양한 화제를 그렸던 것으로 밝혀지지만 현재는 오직 [몽유도원도]만이 진작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평대군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당대 제일의 송설체(松雪體)서예가였고 최대의 중국화(中國畵) 소장가였으며 시.서.화에도 능했다 .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로부터 원대(元 代 )의 조맹부(趙 孟 부) 등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중국의 명화, 명적(名跡)을 많이 소장하고 고전(古典) 에 밝았던 안평대군의 소장품에 관해서는 신숙주(申.叔舟)의 보한재집(保閑齋 集)에 실린 [화기(畵記)]에 그 내용이 알려져 있다.
안평대군은 1445년까지 도합 222 축(軸)이 달하는 서화를 수집하였는데, 그중에는 그가 아끼던 안견의 작품 30점과 일본의 화승 철관(鐵關)의 작품이 4점 외에 그 나머지는 모두 중국 역대(歷代)의 서화였다.
[화기]에 실린 소장품의 특징을 보면 첫째, 안평대군은 주로 연대가 올라가는 송.원대의 작품을 모았고, 둘째 안견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중국의 서화만을 모으려 하였으며, 셋째 산수화는 곽희, 이간, 유융, 나치천, 등 소위 이곽파의 작품을 모았다는 사실이다.
안평대군의 비호를 받았던 안견이 곽희파화풍을 토대로 자성일가(自 成 一家)를 이룬 것은 아마도 그의 타고난 재주 이외에 안평대군을 오랫동안 가까이 섬김으로써 안평대군 소장의 명품들을 깊이 연구하고 수용할 수 있었던 데에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양문(陽文)
주문(朱文)과 같다.
도장의 글자부분이 양각되어 인주에 묻혀 찍으면 흰 바탕에 자획이 붉은 색으로 나타나는 인장(印章)이다.
단독으로 이용할 때 주문방인(朱文方印)을 많이 쓴다.


양주팔괴(楊洲八怪)
청조의 건륭년간(乾隆年間, 1736~95)에 큰 운하의 수리(水利)와 소금판매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강소성 양주에 모였던 8명의 개성적인 화가.
보통은 김농, 황신, 이선, 왕사신, 고상, 정섭, 이방응, 나빙을 말하지만 고봉한, 민정을 보태기도 한다.
이들 전부에다 화암을 보태어 양주화파라고도 한다.


어락도(漁樂圖)
어민의 모습 또는 천렵의 정경을 주제 삼은 그림.
옆으로 길게 그려지는 두루마리의 연속화면에 강물과 늪이 주위의 자연경과 더불어 전개되
고, 그 속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 올리는 어민의 표정이 담겨진다.
대개는 끝머리쯤에 가서 술잔을 기울이며 천렵을 즐기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여사잠도(女史箴圖)
서진(西晋)의 장화(232~300)가 찬(撰)한 [여사잠]을 회화화(繪畵化) 것.
혜제의 왕비 고씨가 방종하는 것을 두려워 한 장화는 여사(女史, 후궁에서 왕비의 범절을
돕던 여인)의 직분을 훈계하고, 왕비 일족을 풍자할 의도로 그 문장을 찬술하였다고 한다.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당의 하동 출신인 장언원의 저서로서 총 10권으로 되어있다.
그 내용은 앞의 3권은 화론(畵論)이며, 나머지 7권은 중국역대화가의 소전(小傳)이다.
참고 문헌의 출전을 정확히 밝히고 있어, 고증의 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연주장(連珠章)
두 개처럼 되어 있는 하나의 도장.


영모화
새와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원래 영모는 새털의 의미로 그것이 새 종류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두 글자를 각각 떼어 새 깃과 동물 털이라는 의미로 확대 해석됨으로써 새와 동물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쓰여진다.


오대당풍식(吳帶當風式)
고대의 옷을 표현하는 묘사법의 한 스타일을 의미하는 말이다.
조선미술사연구(朝鮮美術史硏究)의 저자 윤희순이 상기의 저서에서, 진의 보비흥이 옷을 그릴 때, 마치 옷이 물에 젖어서 몸에 달라붙는 것과 같이 그리며, 당의 오도현은 옷이 바람에 날려 휘날리는 것과 같이 묘사하였다고 했다.
오채(五彩)
중국사상의 원천인 오행(五行)사상에서 비롯한 것으로 황(黃), 청(靑), 적(赤), 백(白), 묵(墨)의 5가지 색깔을 말한다.


요철법(凹凸法)
그림 속의 형태에 입체감을 부여하기 위해 채색을 써서 명암의 단계를 번지듯 점진적으로 나타내는 기법이다.
지중해 지역의 후기 고전 미술로부터 유래되어 인도와 서역을 거쳐 동아시아로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장승요가 전통을 확립시켰으며, 서쪽에서 전래되었다 하여 태서법(泰西法)이라고도 한다.


우점준법(雨點)
아주 작은 타원형으로 찍혀진 붓자국이 빗방울같이 생긴 준이다.
산의 밑부분에서는 크게 나타내며 위로 올라갈 수로 작게 한다.
북송의 범관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운두준법(雲頭)
풍화 작용을 받아 침식되어 마치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 같이 생긴 산을 표현하는 준법으로 이곽파화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체 화풍(院體畵風)
궁정 취향에 따라 화원을 중심으로 이룩된 직업호가들의 호풍을 말하며 궁정의 유행이 때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일정한 양식(樣式)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윤필(潤筆)
짙은 먹이 풍부하게 묻은 붓을 말하며 대담한 터치를 필요로 할 때 잘 사용된다.


음문(陰文)
백문(白文)과 같다.
도장의 글자 부분을 음각한 것으로 찍으면 붉은 바탕에 자획이 희게 나타나는 인장(印章)이다.
도장 두 개가 이용될 때에 백문방인(白文方印)을 위쪽에 주문방인(朱文方印)을 아래쪽에 찍는 것이 일반적이다


음영법(陰影法)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하여 그 물체가 빛을 받아 이루는 그림자를 나타내어 그림을 그리는 방법


이곽파(李郭派) 화풍
(곽희파화풍 이라고도 한다)
북송대의 이성(李成)과 곽희(郭熙)에 의해 이룩된 화풍으로 금(金)과 원대(元代)에도 이 화풍을 많이 따라 그렸다.
이성의 화풍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보다 화풍이 뚜렷한 곽희의 이름을 따서 '곽희파'라고도 불리어진다.
대체로 이곽파의 화풍은 뭉게구름처럼 보이는 침식된 황토산(黃土山)을 즐겨 그리되 그 표면 처리에 있어서 필선이 하나하나 구분되지 않도록 붓을 엇대어 쓰며, 곽희 때부터는 산의 밑동을 밝게 표현하는게 특색이다.
산수(山水)는 대개 근경. 중경. 원경이 점차 상승 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향을 띠고, 나뭇가지들은 게발톱처럼 보이는 해조묘(蟹爪描)로 그려지며 소나무 잎은 송충이털을 연상시키게 묘사된다.
산의 윤곽선 바깥쪽에 이빨모양으로 돋아나 붙어 있는 치형돌기(齒形突起)형태를 쓰는 것도 이곽파 화풍의 특징중에 하나이다.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
고대 그리이스의 식물문양에 기원을 두고 있는 어켄서스 계통의 덩굴무늬로서 S자형으로 연속되는 리드미컬한 문양 형식이다.


저묵산수

천강산수(淺絳山水)라고도 한다.
면저 수묵(水墨)으로 그림의 기초를 그리고, 여기에 엷게 색을 칠하여 주는 일종의 담채법
(淡彩法)을 말하며, 원대의 황공망 이 창안하였다.


전신(傳神)
전신사조(傳神寫照)가 줄어서 된 말로 초상화에 있어서 인물의 외형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고매한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초상화론(肖像畵論)이다.
절대준(折帶)
대(帶)가 갈라진 것 같은 준으로 여러 개의 단층이 모여 지층을 이룬 것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절파 화풍(浙派 畵風)
명초(明初) 절강성 출신의 대진(戴進)을 시조로 하며, 그와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절강 지방 양식의 영향을 받았던 화가들의 화풍을 집합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남송원체 화풍을 주로 하여 거기에 이곽파 화풍 등 여러 요소를 융합하여 이룩된 복합적 양식을 보여주며 15세기 후반부터 명대 화원의 주도 화풍이 되었다.
대체로 남송원체 화풍에 중경을 삽입시킨 복잡한 구성과 거친 필치를 구사하여 그림 전체가 다소 조잡한 느낌을 준다.


점경(點景)
그림에 곁들인다는 뜻.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곁들이는 것으로 산수화에 있어 돛단배, 산사, 탑 등을 가르킨다.


점태(點苔)

돌을 그릴 때 작은 점을 찍어서 이끼 혹은 풀 등으로 보이게 하여 오래된 돌임을 나타내기도 하며, 먼 산의 침엽수림이나 잡초 등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현미를 느끼게 한다.


정선파(停船派)

조선 후기의 정선이 이룩한 진경산수 화풍을 따랐던 일편의 화가들을 함께 지칭한다.
강희언, 김득신, 최북 등을 위시한 많은 화가들이 따라 그렸다.
이 화파의 영향은 민화(民話)에 까지 미쳤다.


제발(題跋)

그림이나 표구(表具)의 대지(臺紙)위에 쓰여진 그 그림과 관계되는 산문(散文)의 글로서 화가 자신이 쓰거나 다른 사람이 쓰기도 한다.
이 글을 통하여 그림이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제시(題詩)

그림이나 표구의 대지 위에 그림이나 받은 감흥 등을 그 그림과 같은 기분으로 적은 시다.
제시와 그것을 쓴 서체(書體), 그리고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을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이끄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주문(朱文)
양문(陽文)과 같다.


준법

형태의 외형을 끝낸 다음에 산이나 바위, 토파(土坡)등의 입체감과 명암, 질감을 나타내기 이해 표면을 처리하는 유형적(類型的)수법을 말하여 약 25가지의 준법이 있다


지어본(紙魚本)

지어(紙魚)가 갉아먹어 구멍을 낸 서화나 책을 말하며, 충입본(蟲入本)이라고도 한다.


지화(指畵, 指頭畵)

붓대신 또는 붓과 함께 손톱이나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


직찰준(直擦 )

붓을 똑바로 세워주고 비비면서 그려 나가는 것으로, 오대(五代)의 관공, 북송의 이성이 상용하였다.


직필(直筆)

서예의 필법 중의 하나이며, 붓을 종이에 수직이 되게 잡고 쓰는 방식이다.
그 느낌은 엄정(嚴正)하며 장중(壯重)하다.
따라서 강인한 표현법에 적당하다.


진경산수(眞景山水)

조선 후기 정선(鄭敾)에 의해 형성된 화풍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 실재하는 경관(景觀)을 남종화에 바탕을 두고 발전된, 정선 특유의 화풍을 가미하여 그린 산수이다.
이 화풍은 조선 후기의 화원들 사이에서 한때 널리 추종되었다.


찰염(擦染)

먹이나 색채를 축축히 문지르듯 칠하는 것으로 서서히 물이 스며들 듯 변하는 효과를 낸다.


철선묘(鐵線描)
굵고 가는 데가 없이 두께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꼿꼿하고 곧은 필선으로, 매우 딱딱하고 예리하여 철사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붓을 세워 강하게 베풀고 선이 길며 인물화에 사용된다.


철선준법(鐵線)
철사와 같은 곧은 필선의 준으로 수직으로 연결된 바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청록산수화
여러 색깔의 안료로 채색된 산수화를 말한다.
산을 군청색 계열과 녹청색 계열로 채색하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생긴 것이다.
주로 먼 산은 군청색 계열로, 앞쪽의 산은 녹청색 계열로 채색된다.
산꼭대기나 산 주름의 능선은 녹청색 위에 군청을 덧칠하는 일이 많으며, 금물을 함께 사용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금벽산수(金碧山水)라고 하기도 한다.


치형돌기(齒形突起)
산의 윤곽선 바깥쪽에 이빨 모양을 돋아나 붙어 있는 작은 형태로 이곽파 화풍,
특히 금대(金臺) 및 원말(元末) 명초(命招)이 매너리즘이 심한 산수도에 자주 나타난다.
타지(拖枝)
마치 밑에.서 끌어당긴 것 같이 거의 90도로 꺾여 굴곡이 매우 심한 나뭇가지를 말하며 마하파화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태서법(泰西法)
요철법과 같다.


편파구도(偏頗構圖)

그림을 종(縱)으로 2분할 때 한쪽 반이 다른 쪽 반보다 더 강조되고 더 큰 무게가 주어진,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구도를 말한다.
조선 초기 안견파(眼見派) 작품에서 흔히 발견된다.


평원(平遠)
삼원중의 하나로서 근산(近山)들로부터 원산(遠山)들을 보았을 때 거의 평면적으로 전개되어 있는 모습으로 고요한 분위기를 준다.


피마준법(披麻)
마(麻)의 올을 풀어서 늘어놓은 듯 실같은 모습의 준을 말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준 가운데 하나로 특히 남종화와 관계가 깊다.
원말(元末) 4대가(大家)의 한 사람인 황공망이 즐겨 사용하였다.


하엽준법(荷葉)
연잎 줄기와 같이 생긴 준으로 산봉우리에 주로 사용된다.
물이 흘러내려 고랑이 생긴 산비탈 같은 효과를 내며 조맹부가 창안한 후 남종화가들이 종종 사용하였다.


한림(寒林)
잎이 떨어져 버린 앙상하게 헐벗은 가지만 있는 차갑고 삭막한 나무숲을 말하며 이를 소재로 택하여 다룬 그림도 가리킨다.


해조묘(蟹爪描)
나뭇가지를 게발톱처럼 날카롭게 묘사한 수지법(樹枝法)으로 이곽파 화풍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원(畵員)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도화원(圖畵院)(후에 도화서(圖畵署)로 개칭)이 설치되 많은 화원들이 배출되었다.
화원들은 초상화제작이나 궁중의 각종 행사 모사(模寫)나 사대부의 요청에 따라 계회도(契會圖)나 사대부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궁정.사대부 취미에 맞춘 것이 많다.
화원은 본시 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던 것인데 후기에 이르면 사대부의 추천에 의해 발탁되기도 하였던 모양이다.
조선 초기 화원 출신으로는 안견과 이상좌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황문화사(黃文畵師: 기부미노 에시)
일본 야스카시대에 야마토지방에서 거주했던 고구려 후예인 기부미노 무라지와 동계(同系)의 씨족(氏族) 화사집단(畵師集團)을 말한다.
이들은 604년부터 세금을 면제받는 등 화업(畵業)의 세습을 국가로부터 보호받았다.

수묵화의 이론과 실기

-사군자의 산수화에 대하여

--김은집 편저

 

.일품의 특징(송나라-황제복)

-작자가 창작에 임할때 사물의 진실한 형태타 정신적 인상도 필요없이 오직 임리적 취미만을 찿는다는 것인데, 이는 곳 물질보다 정신 세계를 중요시 하는 것으로써 다만 휘려필묵 즉 먹과 붓의 흥취만으로 그리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것은 그 근원이 자연을 얻는데 있고 의사를 표시하는데 있음으로 사실적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한후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불확실한 모양으로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회화를 구상과 비구상으로 나눌때 일품화는 구상에 가까운 화풍이라 하겠다.

.신품

-기예가 뛰어나 의취가 잘 표현되고 모든것이 알맞게 배치된것.

.능품

-원형과 흡사하면서도 볍도에 어긋나지 않는것

*산수화의 사생과 표현

.사생

-자연속의 사물을 그림속에서 표현하기 위해 그 사물의 외적 형태와 내면적 특성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하나의 방법을 말한다.  풍경을 사생할 때에는...

첫째...너무 광범위한 장면을 취하지 말고

둘째...그 곳의 사물을 개체로 보지말며

셋째...그중에서 무엇이 제일 강하게 와닿는가를 생각해서 거기에 마주어 사생을 진행하여야 한다.

자연은 하나의 힌트만되고 인간의 공상이 가해진 영상을 사생에 활용할수있는것이 최상의 방법.

그러므로 자연은 보는 사람의 감동이나 상상을 끌어내기위한 매체일뿐 작품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말이기도 한다.

그림에서는 자가가의 꿈이 담겨져서 실제의 자연보다도 아름다워야한다.

그러므로 자신 찍는것같이 그려서는 안되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공상하여 자연 실체와는 상당히 다른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고 심안으로 본 풍경을 그려야 한다.

이는 어떠한 예수에도 통하는 일이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연의 겉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며, 외형을 넘어서 내부까지 침투한 투시안이 얻어낸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의 근원이 되는것은 작가의 상상력과 시정신이며 이를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될수록 간결하고 단순한 구성이 필요한것이다.

.수묵화의 구성요소

선-직필...강하게 그은선

   -측필...부드럽게 그은선

중심점-포인드, 감동의 주심,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바

여백-3차원적 공간, 의식적이고 치밀한 계획하에 남겨놓는 공백

단순화와 변형-그림의 아름다움의 극치는 단순화에 있고 단순화를 위해서 변형이 불가피

구조-화면전체가 충실하고 밀도가 짜여 산만하거나 군더더기 없이 가감없이 가감없는 요지부동의 느낌

주제와 무제-작가가 관람자에게 전하고 싶은말,주와객과 종

산수화의 구도법-부감적 구도법:공중에 나는 새가 비스듬히 지상을 굽어본상태

                      -시점이동법:시선을 위아래 좌우로 움직이며 관망

                      -삼원법:고원법,심원법,평원법

화제-한글이나 한자로 그림의 필법과 조화를 이루며 써야한다

작가의 심중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화제(글)로써 전해주는것.

낙관-한글이나 한자로 그리므이 필법과 조화를 이루며 써야한다.

산수화 의 원근법-운무원근법:심원법,고원법,평원법

*수묵화의 기본상식

.붓잡는 방법-단구법

                 -쌍구법

.운필방법-직필, 측필,반측필, 역필, 현판운필

.묵색의 종류-담묵,중묵,농묵,담중묵,중농묵

.수묵화의 묘화방법

기법의 종류-삼묵법-농묵.중묵.담묵의 농담 조화가 뛰어남. 측필이나 반측필 효과큼

-발묵법...풋에 측면에 농묵과 중묵을 찍어 그림.격정.생동감

-삼투법...번짐

-구륵법-선으로 강약, 억양,굵기의 선의 성질만으로 그림. 설채화(채색).백화,소화(백묘법)

-몰골법-윤곽선을 그리지않고 붓에 함유된 농담혹은 채색의 강약으로 사물표현

-구화점엽법...꽃그리는 화법(연꽃.연잎)(국확꽃.잎)\

-운선법...바림

-백발법...사물의 윤곽만으로 형태표현

-파묵법...산수화에서 수목이나 암석을 그릴때

-역필법

-갈필법

-선염법

-중선법

-혼합법

.산수화의 준법-피마준,난마준,지마준,나시준,하엽준,해삭준, 절대준,대부벽준,소부벽준,반두준,우점준,우모준,마아준,운두준,탄와준,귀파준...

*사군자화의 실기

.난화기법

난-유미인, 군자가패, 왕자지향, 향초 청초한 기상과 그윽한 향기로 문인묵객들의 환심이되어왔다

난화-문인화파,즉 청긱파-사대부작품.수묵난화

속파-직업화가작품 -채색난화

.추사 김정희...난초 그리기가 가장어렵다. 산수나 매화, 대나무나 꽃, 그리고 짐승가 물고기는 옛부터 잘그리는 사람이 많았으나 난초를 잘그려서 특히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없다.

난은 그리는 법식에 얽매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만약 화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 법대로 따르지 않는것이 좋다...마음속에 먼저 난을 키운후 형식과 법식에 구애됨이 없이 느낀대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돌그리는법

-자연에 사물에는 비록 그것이 광물질 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영혼이나 생며이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여 왔으므로 돌을 그리는데 있어서도 신기가 깃드는것을 중요시 했다.. 즉 신기가 없는 돌은 죽은돌, 무기력한돌로 여겼기 때문에 낭화에 곁들여 지는 돌에는 반드시 신기와 기품이 있어야 한다.

.죽화기법

-곧고 꿋꿋함이 동양인의 감성에 호소하여 옛부터 청빈한 선비의 표상이되고, 덕망있는 문인의 높은지조와 아름다운 여인의 굽힐줄 모르는 절개를 상징

.죽화의 기원과 변천

-사실적(물질의 형태)>사의적(영적형태)>사취적(작가의 주관과 개성)표현방식

.죽화의 생명은 힘있는 직선을 통하여 패기가 넘치는 대나무의 기상을 표현하는 것

.순서...줄기-작은 가지와 잎-마디(의취)를위해 줄기-잎을 엮고 잔가지 -마디

댓잎은 그 성질이 날렵하면서도 힘차고 맑은 기상이 있으므로 이러한 특성을 살려서 그려야한다

.매화의 기법

-매화,화기-가장 먼저 피는꽃, 빙자옥골-청초한 자태

기법-구륵전체법,색체몰골화법,수묵법,권법

요령-체고-몸은 늙고 굽어야 오랜풍상을 이겨낸것같고

-간괴-줄기는 괴이하여 굵고 가는 부분이 뒤섞인것이 좋으며

-지청-가지는 말쑥하게 빼어나야 좋고

-소건-가지끈을 무디게 그려 건강하게 보여야하며

-화기-꽃의 모양은 너무 단정하지 않아야 한다

.국화기법

-오상,만향,절화,여화,금예,야적,갱생,음성,전연년,가우,제여화,중양화,상가걸,선선상중화

-기법-구륵선염법-윤곽을 선으로 그린뒤 색칠

-묵필전염법-수묵만으로 그림,청아함

.수묵화의 특징

-동양적 정신성(직감.정신성을 중히여겨 감성으로 사물의 내부에서 본질을 파악)을 가장잘 나타낸 대표적이 예술로 직감이라던가 감각으로 자연을 포착한 다음 선과 면을 활용하여 마음의 발상을 단숨에 정착 시켜야 함으로 생략과 단순화는 수묵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수있다.

구상이 이루어져 단숨에 그려나가는 웅대하고 거침없는 필력에서 얻어지는 상쾌한 속도감을 지닌 선의 아름다움과 묵의 농담변화의 묘, 그리고 번짐이 주는 깊은 맛등..

사물의 표면적인 묘사에 그치지 않고 내면적 특성을 그린다는 것이 본래의 모습.

따라서 수묵화는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리고 단숨에 그린다.따라서 수묵화는 형태의 묘사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지만 그 반면에 아무래도 우연성이 뒤따르는것은 피할수가없다...따라서 형태가 다소 어색해 보일때에도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암시적이여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연상의 세계로 유도하는 효과도 있는것이다.

수묵화는 태양광선에 의한 명암을 그리지 않는다. 사물의 양감을 나타내는 수단으로서 묵색의 농담의 변화를 주는 일은 있지만 의식적으로 태양광선에 의한 음영은 그리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의 변치않는 모습을 그리려고 그림자를 하나의 색면으로 취급하는 것과는 상통하는데, 동양 에서는 옛부터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을 관조하고 또 표현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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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동양화)의 기법

 

1) 먹의 사용법 

   ① 발묵법 : 번져 가는 먹색, 먹물을 퍼지게 해서 한 붓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방법

   ② 퇴묵법 : 붓을 사용한 후 마지막으로 나오는 먹색을 이용하는 방법
   ③ 적묵법 : 옅은 색의 먹으로 먼저 그리고 나서 완전히 마르고 난 다음 좀더 짙은 먹으

                        로 덧칠한 방법

   ④ 운염법 : 먹의 농담이 나타나도록 표현하는 기법

   ※ 삼묵법(三墨法) - 농ㆍ중ㆍ담의 세 가지 먹색이 갖추어진 붓으로 그리는 방법

        선염법(渲染法) - 서서히 퍼지게 하는 방법 

        찰염법(擦染法) - 문질러 퍼지게 하는 방법

 

2) 준법(산수화 기법) - 바위나 산의 표현 기법

  ① 유엽준 : 버들잎처럼 허리가 굵은 선(인물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묘법)
  ② 피마준 : 삼을 펼쳐서 훑은 것과 같은 준으로 돌이나 산, 요철을 표현할 때 사용
  ③ 우점준 : 빗방울 모양의 점묘
  ④ 부벽준 : 도끼로 찍은 흔적 모양의 점묘
  ⑤ 하엽준 : 연잎 줄기 같은 긴 선으로 차분하고 유연한 느낌을 줌
  ⑥ 절대준 : 가로 긋는 쇠털 모양으로 'ㄱ'자와 비슷
  ⑦ 마아준 : 말의 이빨 모양


 

3) 필법(선의 기법)

  ① 갈필법 : 붓에 물을 적게 해서 거칠게 그어진 선
  ② 파필법 : 붓끝이 여러 갈래로 벌어진 붓으로 그린 선
  ③ 편필법 : 넓적한 붓으로 그린 선(붓끝을 앞으로 해서 사용)
  ④ 독필법 : 붓끝은 잘라 모가나게 한 붓으로 그린 선
  ⑤ 백묘법 : 선으로만 표현하는 기법

  ⑥ 구륵법 : 윤곽선으로 그린 다음 그 안에 채색하는 기법

  ⑦ 몰골법 : 윤곽선이 없이 한 붓에 표현하는 기법

 

준법통틀어서...
산이나 흙더미 등의 입체감·양감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동양적 음영법(陰影法)이다. 중국에서는 진(秦)·한(漢)시대의 산악도(山岳圖)에서 그 원시적 형태를 볼 수 있으나 거의가 비사실적·관념적이다. 그 후 산수화의 발전과 함께 각종 준법이 나타나 형식화되어 특정한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부벽준
산수화에서 도끼로 찍은 듯한 자국을 남겨 표현하는 동양화 준법.



피마준(披麻)은 삼[麻]의 껍질을 벗긴 것 같은 주름이라는 뜻으로 동원(董源)이 시작하였으며, 주로 남종화(南宗畵)에서 사용된 선적(線的)인 주름이다. 해색준(解索) ·난마준(亂麻) ·지마준(芝麻) ·우모준(牛毛) ·하엽준(荷葉) 등은 이 계통에 속한다. 이에 비하여 부벽준(斧劈)은 도끼로 쪼갠 면과 같은 주름으로 면적(面的)인 성격이 강하며, 북종화(北宗畵)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여기에는 대소(大小)의 2종이 있으며, 대부벽준은 이사훈(李思訓), 소부벽준은 이당(李塘)이 시작하였다. 이 밖에도 우점준(雨點)은 왕유(王維)가 시작하였고, 동원·거연(巨然) 등이 사용한 뒤, 미불(米)이 완성한 것이다. 미불의 것은미점(米點)으로 불리며 가로찍은 점[橫點]이지만, 이리발정준(泥裏拔釘)이라고 일컫는 것은 세로찍은 점[竪點]이다

 

우점준은수묵 산수화에서 사용되는 준법의 하나. 지마준(芝麻峻 ) 혹은 호마준(胡麻 峻)이라고도 한다. 세로로 가는 붓자국을 밀집시켜 바위나 산을 묘사한 것이 비오는 모습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아주 작은 타원형으로 찍혀진 붓자국이 빗방울같이 생긴 준이다. 산의 밑부분에서는 크게 나타내며 위로 올라갈 수로 작게 한다. 이 준법으로 황토 절벽을 즐겨 그렸던 북송 초기 산수화가 범관(范寬)이 창시하였다. 미후, 미우인(米友仁)의 소위 미점준법과는 약간 다르다.

하엽준
연잎 줄기와 같이 생긴 준으로 산봉우리에 주로 사용된다. 물이 흘러내려 고랑이 생긴 산비탈 같은 효과를 내며 조맹부가 창안한 후 남종화가들이 종종 사용하였다.
연잎의 잎맥처럼 선을 상하로 사용하여,솟아오른 바위의 형세를 나타내는 준법이다.
'준'이라는 것은 수묵화의 '필법'이며 김홍도는 근경의 산과 원경의 산을 특유의 '하엽준법'을 사용하여 잘 묘사하였다고 한다.




동양화의 원급법
중국 북송의 산수 화가이던 곽희의 임천고지 라는 책에 산수화에 있어서 대상의
원근감과 공간감을 나타내는 구도법으로 고원법, 평원법, 심원법의 삼원법을 말하
고 있다.

고원법 ; 눈높이를 화면의 아래에 두고 산 밑에서 산의 정상을 올려다 본 것처럼
그리는 것으로 자연의 웅대함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인다.

심원법 : 눈높이를 화면의 중앙에 두고 자연스럽게 앞을 바라다 보았을 때의 모
습으로 자연이나 산의 무한한 깊이를 표현하는 그림에 적합하다.

평원법 : 눈높이를 화면 위쪽에 두어 아래를 굽어보는 시점으로 자연의 광활함
이나 아득한 수평의 산수화를 그리기에 적합하다.

투시도법
투사도법(透射圖法)이라고도 한다. 1정점(定點)을 시점으로 하여, 지구의 경위선(經緯線)을 평면 또는 가전면(可展面)을 화면(畵面)으로 하여 투영한 것이다. 즉 지구의 중심, 지구상의 1점, 또는 지구 외의 1점을 시점으로 하여, 지구상의 경위선을 외접원추면(外接圓錐面) ·외접원통면(外接圓筒面), 또는 지구상의 1점에서 이에 접하는 평면상에 투영하는 도법의 총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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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
 본문
음양오행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문화권에서 우주인식과 사상체계의 중심이 되어온 원리로서 우주의 본원에는 음(陰), 양(陽)의 두 기(氣)가 있음으로 천지 만물은 이 두개의 기로 이루어졌다는 역학적인 이론과 천문학적 철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음양의 두 기운이 다섯 가지 원소를 생산하였는데,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오행이다. 오행이 운행(運行)함에 있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일과 서로 충돌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것이 상생상극(常生相剋)이다. 이 오행에 상응하는 오색은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이고,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가 따른다. 중앙과 사방을 기본으로 삼아 오방이 설정되며, 색상 또한 오방이 주된 골격을 이루고 있는 양색(陽色)으로써 오색을 기본색(正色)으로 배정하고 그 다섯 방위사이에 놓이는 사이색(間色)을 음색(陰色)이라고 한다. 음색은 녹색, 벽색(짙은 푸른색), 홍색, 유황색, 자색이다. 황(黃)은 오행 가운데 토(土)로 우주중심에 해당하고 오방색의 중심으로 가장 고귀한 색으로 인식되어 임금만이 황색 옷을 입을 수가 있었다. 청(靑)은 오행 가운데 목(木)으로써 동쪽에 해당하고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으로 창조, 생명, 신생을 상징하며,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사용되었다. 백(白)은 오행 가운데 금(金)으로 서쪽에 해당하고 결백과 진실, 삶, 순결 등을 뜻하며 우리민족이 흰 옷을 즐겨입는 원인이기도 하다. 적(赤)은 오행 가운데 화(火)에 상응하며 만물이 무성한 남쪽이며 태양, 불, 피 등과 같이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뜻하며 가장 강력한 벽사의 빛깔로 쓰여졌다. 흑(黑)은 오행 가운데 수(수)에 상응하며 북쪽이고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 동쪽은 청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가운데는 황색이다.

 

다음사이트 국어사전에서

(출처 : '오방색이란 무엇이죠??' - 네이버 지식iN)

하늘의 빛 땅의 색...

색채를 음양 오행사상에 의한 방위와 상징으로 대비시켜보면,
동방은 태양이 솟는 곳으로 나무가 많아 항상 푸르기 때문에 청을 의미함과 동시에 봄을 의미하여 창조와 신생을 상징하였으며 양기가 가장 강한 곳이다.
서방은 쇠가 많다고 생각하였으며, 쇠의 빛을 희게 보아 백색으로 표시하였고 가을을 의미하며 태양이 지는 곳으로 음기가 강하다.
남방은 항시 태양의 빛을 받기 때문에 붉게 보았으며 만물이 무성하여 양기가 왕성한 곳으로 여름을 의미한다.
북방은 깊은 골이 있어 물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를 검게 보아 흑색으로 표현했고, 겨울을 의미한다.
중앙은 지구의 중심처로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이며, 광명을 상징하는 양기의 정화로 황색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오행을 상징적인 동물로 나타낼 때는 동쪽은 청룡, 서쪽은 백호, 남쪽은 주작, 북쪽은 현무이다. 오방색 사이사이에 위치한 녹색, 벽색(옅은 하늘색), 홍색, 유황색, 자색을 오간색(혹은 오방 잡색)이라 한다. 이러한 색채 개념은 무지개색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광학에 의거한 현대 색채학에서는 프리즘의 일곱가지 무지개색을 기조로 하나 음양오행설에서는 무지개를 다섯가지 색으로 보았다. 이 무지개색은 우리 민족과 중국 소수 민족 사이들만 인식하는 색이다. 우리나라에 음양오행사상이 전래된 이래 일상생활에서의 색채 활용도 오방색 사용이 지배적이었다. 화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오는 방법의 하나로서 청,홍,황색을 이용한 사례를 민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부모의 혼사에 사용했던 청홍실을 둘러 주면 아이에게 병이 없다고 믿었고, 이불은 잇색과 쪽색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며, 혼례복의 기본 색도 청홍이다. 청과 홍은 음과 양의 상징인 동시에 남과 여의 상징이 된다. 주술적으로 악귀를 쫓거나 예방하는 데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흰색과 검정색은 흉례 때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오행에 따르면 붉은색과 푸른색은 양에 해당하는 생명의 생기와 같은 의미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음에 해당하는 악귀를 쫓는 데 음양을 중화시켜 몰아내거나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의 색동은 오방색을 중심으로 배열하여 색동옷,까치두루마리(오방장두루마기),오방낭자 등을 낳았다. 특히 오방색과 오간색의 합인 색동옷은 무병장수와 제액을 기원하는 뜻이 들어 까치설날인 섣달 그믐날에 어린이에게 입혔다. 오방색 천이나 실은 불상의 복장에 간수되기도 하였다. 태극기도 음양오행사사에 의해 만들어졌고, 음식의 맛과 색상에서도 음양오행의 원리가 자리잡고 있다. 맛에서는 맵고,달고,시고,짜고,쓴,오미를 색상에서는 오색을 조화시키려 한 예가 많다. 궁중음식으로 대표되는 우리 전통음식의 색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오방색의 조화를 중시하였는데, 특히 신선로에서 전형적인 오방색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것이 그 예이다.


청색계열:예로부터 청색은 초목의 빛깔로서 자람과 풍성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하늘 색(파란색이 아닌 새벽의 빛깔)으로도 쓰여, 이를 일러 '청천(靑天)"이라 하였다. 또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동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동이족이라 불렸으에 비추어보거나 우리나라를 가리켜 청구(靑丘)라 이르기도 한 것을 볼 때 민족적으로 오랜 기간 청색을 선호하고 애용한 것이 잘 드러난다. 아울러 청색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복색제도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색채로 음양오행의 상징성외에도 우리 고유의 민속적인 상징성을 지니며 사용되기도 한다. 혼례때 청,홍 색실을 늘어놓는 것이나 신부복을 청홍색으로 만들어 입힌다, 사주보를 청홍색으로 만든다 하는 데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청색은 주로 쪽(여귀과 식물)에서 색을 얻었다.

적색계열:적색은 양기가 왕성하고 만물이 무성하여 생명을 낳고 지키는 힘으로 상징되어 민속에 많이 쓰여진 색이다. 또한 토속신앙의 주술적 의미로 가장많이 쓰인 색인데 귀신을 쫓는 데 주로 이용하였다. 예를 들면,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 팥의 붉은색이 액막이가 된다고 여겼으며, 간장을 담글 때 빨간 고추를 띄웠고, 아들을 낳았을때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해 문 밖에 붉은 고추를 단다든지, 부적은 반드시 주서(朱書)한다는 등 민속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적색 계열을 낼 수 있는 천연염료로서는 홍화와 소목, 꼭두서니 등이 있다. 이 염료들 중 홍화아 꼭두서니는 생산되기는 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고, 소목은 남방지에서 생산되는 나무의 심재를 이용한 것으로 수입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역시 비용이 많이 들었다.

황색계열:금색으로 오행으로는 중앙을 상징한다. 모든 색의 근원으로 숭상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천자(天子)의 색으로 여길 정도로 가장 존귀한 색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사용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황색계열의 다양한 이용은 치자를 비롯하여 황련,황백나무,울금,금잔화 등 풍부한 황색 염료와 둥시에 황색이 지닌 상징성에서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미속에서는 황색이 적색과 같은 계열로 분류되는 듯 적색 계열의 색채와 같은 용도, 즉 주로 귀신을 쫓거나 병을 방지하는데 많이 쓰였음을 볼수 있다. 예를 들면, 신성 공간인 제의 장소에 금줄을 친다. 해산 후에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 금줄을 친다. 돌림병이 있는 장소의 접근을 막기 위해 금줄을 친다. 가축의 생산이 있을 때 황토를 놓는다. 묘전에 황토를 놓는다 등이 있다. 이러한 황색의 사용에는 오행상으로 신성한 색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시각적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하였다.

백색계열:복색에 있어서는 주로 백색과 소색(素色)이 많이 보이는데, 백색은 완전히 순수한 흰색을 말하며 소색은 자연 그대로의 약간 누런 기가 도는 흰색으로 세탁을 하면 할수록 순백색에 가까워지는 색을 말한다. 백색은 우리 옷에 가장 많이 사용된 색채로서 고대부터 우리 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 원인에 관해서는 많은 주장이 엇갈리고 있으나 종합해서 보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당시의 음양오행적인 색채관과 함께 그 상징성을 더해갔음을 여러 차례의 금령과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다. 우선 백색은 음양상으로 흑색과 함께 음에 해당하는 것으로 길례보다는 흉례에 사용되었다. 이것은 복색금제를 통하여 백색이 원래 길하지 않는 색이며, 상복의 색이 소색이었다는 점 등의 상징성이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백색은 청정과 순결, 광명과 도의의 표상으로 태양의 색이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가 태어나서 돌이 되기 전까지는 부정을 쫓는 의미에서 유채색의 옷을 입히지 않고 백색의 옷만을 입히는 풍속이 있었으며 동양에서는 재생을 의미하는 색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도 백색은 '순수'를 상징하였는데 우리 민족의 관념적 이미지와 부합되는 점이 있다.

흑색계열: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흑색 계열의 색채로는 흑색 이외에 치(검정),현(밤하늘색),담흑 등이 있다. 흑색은 음의 색으로 쓰여서 일찍부터 백색과 함께 금지되기도 하였으며 계절로는 겨울을 나타낸다. 이것은 흑색이 다음(봄)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소생을 상징함과 동시에 만물의 흐름과 변화를 뜻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상복이나 예복의 색채로 쓰였던 점을 보면 완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음의 색으로 사용을 꺼렸으나 민간에서는 전복 벙거지, 복건, 신부의 도투락 댕기, 제복에 흑색이 사용되었던 것을 볼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은 오방색을 근간으로 다채로운 색상을 사용해왔다. 동색을 잘 조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보색을 아주 잘 대비시킬 줄 알았다. 삼국시대에는 염직이 발달되어 고구려에서는 왕은 오채라 하여 색깔 옷을 착용했으며, 신하는 푸른색,붉은색,비단모자에 누런색의 가죽신을 착용했고 서민은 갈의을 입었다. 백제는 고이와 때 품계에 따른 복색제도를 정했고, 신라에서도 법흥와 때 백관들의 공복을 옷색깔로 구분 짓고 군관들의 신분도 옷깃의 색깔로 지정했다. 특히 신라에서는 염색기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관영공장을 둘 정도로 염색문화가 찬란히 발달했다. 삼국의 우수한 염색기술을 바탕으로 고려와 조선조에 와서는 더욱 다양한 염직물을 생산했다. 뿐만 아니라 민화나 단청 등에서는 화려한 색채 구성을 볼 수 있다. 민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적색과 청색,녹색과 같은 강한 보색 대비 효과를 내며, 특히 그림의 한 부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전체적인 조화와는 상관 없이 각 대상에 해당하는 색깔은 최고 채도를 갖게끔 칠한것을 볼 수 있다. 단청도 민화와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색조의 대비로 화려한 색깔을 사용했고, 흰색과 검정색을 잘 수용하여 격조있는 색채 감각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요에서도 청색,초록색 색채어가 가장 빈번하며 다음으로 적색 계통으로 나타난다. 노랫가락에 온갖 색채어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 만큼 서민 생활에서 색채감이 뛰어났고 표현이 활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식을 살펴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색들이 사용되는데, 여기에는 미적 측면과 함께 당시의 색채 관념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생활 속에 활용된 색채문화와 궁중문화 속의 복색을 통해 다양한 색채 감각의 표현을 볼수 있으나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색채 사용은 자유롭지 못한 점도 이었다. 조선시대의 염직물 생산은 중앙집권에 의한 엄격한 사회구조 속에서 통제를 받으며 양반계층에 의해 주로 발전되었고, 색의 가치성을 이용하여 지배계급의 권위를 내세우고 지배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쓰이기까지 하였다. 이에 대하여 천연염색가인 김정화씨는 "이는 음양오행설에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염재의 희소성과 고가성, 염색기술의 숙련성으로 그러한 색을 소유하려면 많은 경제적 시간적 비용이 들었음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출처 : '오방색이란 무엇이죠??'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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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 우리나라 사람이 독특한 화법으로 그린 동양화를 중국, 일본의 그것과 구별하여 이르는말

*동양화 - 동양재래의 그림. 주로 먹이나 안료를 쓰며, 산수화 등을 흔히 제재로 함 (반:서양화)

출처 : 국어대사전 : 이희승 편저

 

"어떤 시대 어떤 민족의 미술이든지 우수한 기술로써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만든 미술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것이니,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은 이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다만 국경이 없는 미술이라 할지라도, 그 민족의 미술이 아름답다는 것은 그 민족다운 특이한 민족성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것이다.  한국미술이 아름답다는 것도 한국 미술이 중국이나 일본의 미술과 흡사하다면 벌써 한국미술로서의 가치를 잃어 버리는 모방의 미술이 되고 마는 것이다."

출처 : 조선미술대요..을유문화사..1949.. 한국근대미술의 한국성...재인용

 

일본이 조선을 강제지배하에두고 그 문화마져 자신들의 것을 따라가도록 하기위하여, 외국과의 문화 교류를 차단한채로 모방과 답습위주의 주입식 미술교육을 실시했으며, 또 다른 방편으로 기존의 화단세력을 쇠퇴시키기위해 조선의 민간화단(서화협회)을 총독부지휘하의 미술단체(조선미술전람회)로 흡수시키고자 회유하고, 강제 탄압하였다.

이는 일본이 한 나라의 고유한 미의식과 정신성을 무시하고, 그로인해 한나라를 문화적으로 붕괘시키고자했던 문화적 만행이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가장 한국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처럼, 경쟁력의 뿌리라고 할수있는 성질, 본질적인것의 중요성과 가치를 이 말에서 찾아볼수있다.

가장 한국적인것.. 곧 그 나라의 특징인것.. 미술에서도 우리만의 특징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대표하는 이름을 조선화 또는 (대한제국을 줄여)한화 등으로 하지 않고, 동양화 라고 부른것은 의도적으로 한국성을 인정하지않음. 곧 없애겠다는 의지였다고 보여진다.

 

"-연년히 총독부 미술전람회에서 가장 그것을 느끼게 한다. '조선적' '향토적' '반도적'이라는 수수께끼를 가지고서 미술의 본질을 말살하는 모혐을 되풀이 하고 있는 연고이다.  이것의 예로서 동 전람회에 출진한 수 많은 공예품에서 제저(題著)히 보이는 것이니 이것은 지나가는 외방인사의 촉각에 부딪치는 '신기' '괴기'에 그칠 따름이고 결코 '조선적'이나 '반도적' 인 것은 아닐 것이다.

본래 향토적 의미는 미술 소재의 지방적 상이와 종족의 풍속적 상이와 각개 사회의 철학의 상이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의연 미술의 본질은 그 구성 요건은 별립(別立)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 미술전람회의 수다한 공예품과 또는 조선적 미감을 가졌다는 우수한 회화는 통틀어서 외방인사의 향토 산물적 내지 '수출품적' 가치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나는 늘 생각되어지고 있다."

출처 : '정축 조선미술계 대관'[김복진 전집]. 청년사. 135쪽.. 한국근대미술의 한국성...재인용

 

여기서 외방 인사의 '괴기'(취미)일 따름이며 끝내는 외방인사의 향토 산물적 혹은 수출품적 가치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통렬한 비판을 통해 '조선적'이니 '향토적'이니 하는 개념의 위험성을 간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김복진의 비판은 주목할 만 하다.  게다가 이 지적은 오늘날에도 일정부분 유효하다.  따라서 '한국성'이란 개념 역시 일찌기 김복진이 비판하면서 우려했던 측면을 세심하게 헤아려야 할 것이다.

출처 : 한국근대미술의 한국성...가나아트..윤범무편저

 

한나라의 그림을 반드시 그나라의 이름을 따서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나 사물에게나 태어남..시작의 상징이며, 죽을때까지 불리워지고,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그것만의 특유한 의미가 있는 명칭이다.

한국화가 동양화에 포함되는것은 자연스럽고도 옳은일이나, 동양화를 한국화 (조선화나)로 부르는데있어 역사적으로 오류를 범했다면 마땅히 그 뜻을 밝히고, 개명하는것역시 필요한 절차라고 본다.

한사람의 이름도 그 뜻이 나쁘거나, 살아가는데 불편함을 느낀다면 개명하도록 하고있다.

불리워지기위해 붙여진 이름의 뜻이 동양화라는 두리뭉실한 모습으로 있다고 해서 무디게 생각할것이 아니라, 그 의도를 간파하고 그에따른 변화를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화 라는 이름또한 좀더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알려져야 마땅할듯하다.

 

 

 

 

** 김진우 - (호 : 금강산인) 일본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르고..묵죽을 많이그렸다

                일제에 굽히지않는 곧은절개를 담았다.

** 이쾌대 - 일본유학.. 1941년 조선신미술가 협회를 만들어 이중섭과 함께 활동.

                인물화를 주로그림..'부인도' '군상'등(60년대 월북)

** 김관호 - 일본유학.. 서양화가..'해질녘'..

                 평양에 소성회라는 미술단체를 만들어 김찬영과 함께 서양화 보급에 힘씀

                 서울의 고희동과 평양의 김관호가 쌍벽을 이룸

** 나혜석 - 일본유학.. 서양화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작가.. 여성사회운동가..문장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근대에 이르러 일제의 강점과 6.25사변은 미술계에 커다란 혼선과 함께 역사의 흐름을 차단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월북화가 중에는 당시 사상과 이념이 다르기때문에 공공연하게 논의되지 못한 화가들도 있는것으로 알고있다.

한국화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되찾는 것과함께,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과 후진양성에 힘썼던 사람들의 그림이나 화론이 더이상 배제되지 않고 함께 논의되고 연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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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대로 전지, 반지 등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점차 서양화의 호당 기준을 따라가는 추세입니다.

 

캔버스의 규격을 가리키는 호(號)라는 단위는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도입되어 국제적인 관례로 자리잡은 일종의 도량형이구요.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와 일본, 우리나라는 약간씩 수치가 다릅니다.

 

또 인물, 풍경, 해경(海景) 등 무엇을 그렸느냐에 따라 치수가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인물화 1호 기준(22.7x15.8cm, 엽서의 2배정도)을 따르는데 실제로 호의 치수계산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1호의 2배가 2호(25.8x17.9cm)가 아니며 10호의 1/10이 1호도 아닙니다.

 

10호(53x45.5cm)는 1호의 3배정도에 불과하죠.

 

아래 표는 호수 규격표입니다.

 

F(Figure, 인물화 기준), P(Paysage, 풍경화 기준), M(Marine, 해경(바다) 기준)

 

호 수

규 격(cm)

규 격(자)

호 수

규 격(cm)

규 격(자)

S M

22.7 X 15.8

7.5 X 5.2

F 30

91.0 X 72.8

30.0 X 24.0

F 1

22.1 X 16.6

7.3 X 5.5

P 30

91.0 X 65.2

30.0 X 21.5

F 2

24.0 X 19.0

7.9 X 6.25

M 30

91.0 X 60.6

30.0 X 20.0

F 3

27.3 X 22.0

9.0 X 7.25

F 40

100 X 80.3

33.0 X 26.5

F 4

33.4 X 24.3

11.0 X 8.0

P 40

100 X 72.7

33.0 X 24.0

F 5

35.0 X 27.0

11.5 X 8.9

M 40

100 X 65.2

33.0 X 21.5

F 6

41.0 X 31.8

13.5 X 10.5

F 50

116.7 X 90.9

38.5 X 30.0

P 6

41.0 X 27.3

13.5 X 10.5

P 50

116.7 X 80.9

38.5 X 30.0

M 6

41.0 X 24.3

13.5 X 8.0

M 50

116.7 X 72.8

38.5 X 24.0

F 8

45.5 X 38.0

15.0 X 12.5

F 60

130.3 X 97

43.0 X 32.0

P 8

45.5 X 33.3

15.0 X 11.0

P 60

130.3 X 89.4

43.0 X 29.5

M 8

45.5 X 27.3

15.0 X 9.0

M 60

130.3 X 80.3

43.0 X 26.5

F 10

53.0 X 45.5

17.5 X 15.0

F 80

145.5 X 112.1

48.0 X 37.0

P 10

53.0 X 40.9

17.5 X 13.5

P 80

145.5 X 97.0

30.0 X 20.0

M 10

53.0 X 33.3

17.5 X 11.0

M 80

145.5 X 89.4

48.0 X 29.5

F 12

60.6 X 50.0

20.0 X 16.5

F 100

162.1 X 130.3

53.5 X 43.0

P 12

60.6 X 45.5

20.0 X 15.0

P 100

162.1 X 112.1

53.5 X 37.0

M 12

60.6 X 40.9

20.0 X 13.5

M 100

162.1 X 97.0

53.5 X 32.0

F 15

65.2 X 53.0

21.5 X 17.5

F120

193.9 X 130.0

64.3 X 43.0

P 15

65.2 X 50.0

21.5 X 16.5

P120

193.9 X 112.1

64.3 X 37.0

M 15

65.2 X 45.5

21.5 X 15.0

M 120

193.9 X 97.0

64.3 X 32.0

F 20

72.8 X 60.6

24.0 X 20.0

F 150

227.3 X 181.8

75.0 X 60.0

P 20

72.8 X 53.0

24.0 X 17.5

P 150

227.3 X 162.0

75.0 X 53.4

M 20

72.8 X 50.0

24.0 X 16.5

M 150

227.3 X 145.5

75.0 X 48.0

F 25

80.3 X 65.2

26.5 X 21.5

F 200

259.1 X 193.9

85.5 X 64.3

P 25

80.3 X 60.0

26.5 X 20.0

P 200

259.1 X 181.8

85.5 X 60.0

M 25

80.3 X 53.0

26.5 X 17.5

M 200

259.1 X 162.1

85.5 X 53.4

 

(단위 : cm)
 
F 300 : 290.9 x 218.2
P 300 : 290.9 x 197.0
M 300 : 290.9 x 181.8


F 500 : 333.3 x 248.5
P 500 : 333.3 x 218.2
M 500 : 333.3 x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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