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필(乾筆)
물기가 거의 없는 마른 붓을 말하며 이런 상태에서 먹을 찍어 발라 사용한다.
원대(元代)이후의 남송화가(南宋畵家)들이 많이 애용하였다.
경영하필(經營下筆)
붓을 대기 전에 먼저 그림 전체에 대한 구성을 철저히 하여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경직도(耕織圖)
권계도(勸戒圖)의 한 화제. 농민의 근면함과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천자(天子)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또는, 왕후(王后)나 왕자의 교육용으로 제작된 것이 경직도의 기원이다.
즉 남송의 누숙이 고종에게 진상했던 것이 처음이며, 경도(耕圖) 21, 직도(織圖) 24장면에 각각 오언시(五言詩)를 써넣은 것이 본래의 체재지만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계화(界畵)
자를 이용하여 정밀하게 그리는 그림으로 건물 및 성벽을 그릴 때 주로 사용된다.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전설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그림.
고원(高遠)
산수화의 원근법인 삼원(三遠)중의 하나로서 산의 밑에서 높은 봉우리를 올려다볼 때의 모습이다.
산의 높이를 강조할 때 사용되며 삼원중에서 가장 보편적이다.
이때의 산의 모습은 험준하고 가파르며 분명하다.
고화품록(古畵品錄)
육조시대(六朝時代) 사람인 사혁의 저서이며, 일종의 화론집이다.
여기서 사혁은 필법의 요체를 육품(六品) 혹은 육법(六法)으로 나누어 논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동양화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육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운생동(氣韻生動) : 정신성의 표현방법을 말한다.
2. 골법용필(骨法用筆) : 결구(結構) 혹은 운필 방법을 말한다.
3. 응물상형(應物象形) : 사실적인 표현 방법을 말한다.
4. 수류부채(隨類賦彩) : 색채 혹은 명암법을 말한다.
5. 경영위치(經營位置) : 구도 및 위치 설정법을 말한다.
6. 전리모사(傳移模寫) : 사물의 모방법을 말한다.
공필(工筆)
표현하려는 대상물을 어느 한구석이라도 소홀함이 없이 꼼꼼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기법으로 외형묘사에 치중하여 그리는 직업화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사의(寫意)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과석도
괴석도의 한 화제로 구멍이 뚫린 형상의 돌을 주제로 그리는 그림.
관(款) [ 관지(款識), 관서(款署), 관기(款記)]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작가의 이름과 함께 그린 장소나 게작일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그렸는가를 기록한 것이다.
이 기록의 필치나 위치는 그림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관방인(關防印)
서화의 우견측(右肩側)에 압인(押印)한 도장.
약하여 관방이라고도 한다.
광태사학파(狂態邪學派)
15세기 후반과 16세기에 활동했던 명대절파(浙派)후기의 오위(吳偉)와 장로(張路),장숭(莊嵩)과 같은 일군의 직업화가들의 화풍을 가르킨다.
이들이 몹시 거치고 강렬한 필묵법을 사용해서 그린 그림의 경향을 당시의 문인화가들이 미치광이 같은 사학(邪學)이라고 비난하여 부른데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구륵(鉤勒)
형태의 윤곽을 선으로 먼저 그리고 그 안을 먹이나 채색으로 메우는 기법이다.
몰골화(沒骨畵)에 대치되는 수법이다.
구인묘(?蚓描)
지렁이 같은 구불구불한 선으로 그리는 옷 주름의 한 묘법(描法).
국화점(菊花點)
나무 잎 묘법의 일종.
가늘고 자잘한 세선(細線)으로 국화가 활짝 핀 것 같이 8번 혹은 9번을 돌려찍는 수법이며 주로 근경의 나무를 그릴 때 이용한다.
궁정파(宮廷派)
일명 공필인물파라고도 한다.
궁정 인물들의 호화로운 취미 생활을 화려하고 치밀한 수법으로 표현하였다.
이 파는 당에서 오대를 거쳐 송까지는 융성하였으나, 원, 명, 청대에 와서는 쇠퇴하였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당의 주방, 오대의 주문거, 남송의 유송년 등이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근대 서가로서 유명한 오세창이 편술한 우리 나라 최초의 서화가 인명사전이다.
이 사전은 1928년에 출판되었는데 신라 시대에서 근대까지의 총 1,117명의 서화가를 수록하였으며, 수많은 고전적을 참고하여 개개인의 평문을 원문에서 뽑아 실었다.
특히, 말미에 원전을 밝히고 있어 우리 나라 회화사 연구에 기본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금릉팔가(金陵八家)
명조가 청에 망하자 명조 황실 출신의 많은 이들이, 이(異)민족의 통치에 반발하여 심산유곡에 숨어 들어가 살면서, 자신들의 꿋꿋한 지조를 회화로서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 화풍은 각기 개성과 독창성에 있어 시대를 초월한 감이 있으므로 금릉팔괴(金陵八怪)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대개 금릉 출신이거나 그 지방에 숨어 지낸, 팔대산인(八大山人), 석도(石濤), 석계, 매청, 공현, 사사표, 홍인, 전산을 말한다.
금벽산수화(金碧山水畵)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 혹은 북종산수화(北宗山水畵)라고도 한다.
작품은 장식성이 짙고, 고전적이며 채색법이 매우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당대의 이사훈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금은니(金銀泥)
금이나 은가루를 아교물에 개어 만든 안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흰바탕의 종이등에서는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없으며 감지(紺紙)와 같이 어두운 바탕에 사용되어 독특한 효과를 낸다.
주로 사경(寫經)과 같은 종교용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일반서화에도 간혹 쓰여졌다. 은니는 나중에 변질되는 결점이 있다. 이징의 산수도가 유명하다.
이징의 〈이금산수도〉는 검은 비단에 금물을 풀어 그림을 그린 것으로, 대단히 귀한 그림 중의 하나이다.
이런 귀한 재료를 써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궁중 화가로서의 이징의 위치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듯 펼쳐진 산봉우리의 모양이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안견의 화풍을 띠고 있다.
이는 이징이 활동하던 시대에 다른 화가들은 주로 절파 화풍의 산수화를 그렸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먹을 쓰듯 금물로 농담(濃淡)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그려내었는데, 이처럼 화려한 산수화가 걸렸을 벽은 어떠하였을까?」
기명절기(器皿絶技)
진귀한 기물과 꽃가지, 과일 등을 조화있게 배치하여 그리는 일종의 정물화.
기승전결(起承轉結)
구도법(構圖法)의 하나이며, 본래의 뜻은 시문의 작법에서 연유한다.
즉, 처음을 기라하고, 이 뜻을 이어 쓰는 것을 승, 중간에서 변화를 주어 뜻을 바꿈을 전이라 하며, 위의 모든 것을 거두어 끝맺음을 결이라 한다.
기졸(記拙)
오우가의 작자인 윤선도의 증손이며, 조선조 중기의 대표적 화가인 공재 윤두서의 저작으로 일종의 그림 평론집이다.
1982년에 발견되었으며, 그 내용은 안견, 이상좌, 김명국, 등을 비롯한 조선조 전기의 화가 20명에 대한 비평과 함께 중국의 소동파, 조자앙 등에도 평을 가하였다.
또한 공재 자신의 화론(畵論)을 피력하고도 있어 화론 부재의 우리 나라에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 윤두서
윤두서(1668-1715)는 우리 회화사상 조선 중기와 후기를 잇는 중요한 화가이다.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로,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외증조이다.
1693년 스물다섯 살에 진사가 되었으나 당쟁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일생을 보냈다.
1712년 45세 때에는 전라남도 해남의 연동(蓮洞)으로 낙향하여 그림과 글씨를 벗하며 보냈는데, 특히 인물화와 말 그림을 잘 그렸다.
그의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이 모두 그림을 잘 그렸고, 외증손인 다산 정약용에게도 은연중 영향을 미쳐 실학적인 측면에서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현재 해남 종가(宗家)의 녹우당(綠雨堂)에는 그의 대표작인 자화상 이외에도 다양한 학문적인 경향을 알려주는 지도며 그림첩 등이 보관되어 있다.
특히 그의 소장품 중에는 남종 문인화풍의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씨역대명인화보(顧氏歷代名人畵譜)》도 있어서 그가 남종화풍과 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유명한 윤두서의 〈자화상〉과 〈채애도〉 등 60여 점의 소품으로 꾸며진 《해남윤씨가전고화첩》과 다수의 그림이 전하며, 저서로는 《기졸(記拙)》이 있다.
※ 안견
현동자(玄洞子) 안견은 조선조 초기 화가 중 가장 뛰어난 화가이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본관은 지곡(芝谷), 자는 가도(可度)이고, 세종, 문종 연간에 도화서의 전신인 도화원(圖畵院)의
화원으로서 활동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후대의 화가나 화론가(畵論家) 들이 그를 찬탄하는 글을 남기고 있는데, 성현(成俔)은 《용재총화》에서 "안견은 천성이 총민한데다 고래의 명적(名籍)을 많이 보고 연구하여 그 요체를 터득하고 고금 명가들의 장점을 모두 규합 절충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으며, 그의 산수화는 특히 빼어났다"고 적고 있다.
안견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았고, 안평대군의 수장품 중에 많은 수를 차지한 북송대 곽희(郭熙)의 화풍을 토대로 여러 화풍을 소화하여 나름대로 독특한 양식을 형성하였다.
그는 산수화에 가장 특출하였으며, 그 밖에도 초상(肖像), 화훼(花卉), 매죽(梅竹), 노안(蘆雁), 누각(樓閣)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그러나 기록과는 달리 실제로 남아 있는 작품은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 한 점밖에 없다. 그 외에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와 〈적벽도(赤壁圖)〉 등이 그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들 작품을 통해서 그의 화풍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그의 그림인 〈몽유도원도〉 한 폭만 보더라도 그의 뛰어난 기량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 이상좌
이상좌는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 활약한 도화서 화원 출신의 화가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공우(公祐), 호는 학포(學圃)이다. 산수인물화(山水人物畵)를 잘 그렸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생애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숙권의 《패관잡기》에 의하면, 본래 그는 어느 양반의 노비였으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나 중종(中宗)의 특명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고 하며, 또한 1544년에 중종의 초상화를 그린 이른바 어용 화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화가인 이숭효(李崇孝)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숭효의 아버지는 이배련(李倍蓮)이라는 기록도 있어서 이배련과 이상좌가 동일 인물인지 혹은 기록상의 오류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들도 모두가 그가 그렸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지 진필로 확인되는 것은 없다. 이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이다.
※ 김명국
김명국(1600-?)은 조선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본관은 안산(安山)이며, 자는 천여(天汝), 호는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이다.
도화서의 화원으로서 교수(敎授)를 지냈으며,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그림을 청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밤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했으며 몹시 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어서 대부분의 그림들은 취중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기질은 그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즉 굳세면서도 매우 호방하고 거친 필법을 보인다.
그의 작품은 조선 전기의 안견파 화풍을 보이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이 절파 후기의 광태사학파적인 산수인물화이다.
화제는 산수화나 달마도와 같은 선종화가 주류를 이루는데, 대담한 붓질로 간략하게 표현하면서도 대상의 내면적 세계를 잘 표출하였다.
김정희파(金正喜派)
조선왕조말기의 문인화가인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였던 조희룡, 허유, 전기등이 그 대표적인물들이다.
이들의 화풍은 남종문인화를 숭상하였다.
나한도(羅漢圖)
나한은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 최상급의 수행자이자, 공덕을 구비한 학자인 아라한의 약칭.
그 상(像)은 이미 육조(六朝)때부터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였고, 당대에는 현장의 법주기(法住記) 역편(譯編)에 따른 십육나한(十六羅漢)의 신앙과 그림이 나타났다.
그 후 다시 십팔나한, 오백나한을 비롯한 중국적 해석에 의한 많은 변화와 형식이 생겼다.
낙관(落款)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로서 서화(書畵)에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인장(印章)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후한(後漢)의 서화가 채옹은 영제(靈帝)의 명에 의하여 "적가후오대장상도(赤家侯五代將相 圖)"를 그렸고,여기에 찬문(撰文)까지 쓰게 되었는데 이 찬문은 곧 현대 동양화에 있어서 화제(畵題) 또는 제시(題詩)의 시초가 된다.
또한, 서화 작품에 낙관(落款)이라는 일종의 풍류지사(風流之事)를 즐겨하게 되는 것은 중국 송시대(宋時代)부터 그 전통이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세하게 쓸 경우에는 시구(詩句), 연월, 간지(干支), 쓴 장소, 쓴 이유, 증여한 상대방의 성 호를 써넣은 다음 자기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는 수도 있다.
난마준(亂麻)
불규칙하게 결합되어 있는 산이나 바위가 침식된 모습을 나타낸다.
남송원체 화풍 (南宋院體畵風)
궁정 취향에 따라 화원을 중심으로 이룩된 직업화가들의 화풍을 말하며 궁정의 유행이 때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일정한 양식(樣式)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남송화
남송시대에 강남지방의 온화한 기후와 나지막한 산, 그리고 물이 많은 특이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이룩한 화원의 화풍을 말하며 그 중에서도 마하파화풍이 전형적인 것이다.
남종화(南宋畵)
중국 회화를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基昌)과 막시룡(莫是龍)등이 당대 선종의 남북분파에 따라 구분 지은데서 생긴 명칭이다.
남종화는 대체로 인격이 높고 학문이 깊은 선비가 여기(餘技)로 수묵(水墨)과 담채(淡彩)를 써서 내면세계의 표출에 치중하여 그린 간일하고 품격 높은 그림을 말한다. 원말(元末) 이후로는 남종화가 구도나 준법, 필법, 수지법 등에서 일정한 화법사의 형식화 이루어 졌으며 이것을 문인화가뿐만 아니라 직업화가들도 본받아 그렸었다.
다자도(多子圖)
길상도(吉祥圖)의 한 화제로 아들이 많고, 또한 이들이 건강하고 총명하게 자라 집안을 크게
빛낼 수 있도록 기원하는 그림을 말한다.
보통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1.씨가 많은 석류를 그린다.
2. 백명의 사내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광경을 그린 백자도(百子圖).
3. 아들, 손자가 많았던 고사인물(故事人物), 또는 이런 노인 옆에 여성과 많은 아이들이 있는 그림.
단선점준
2-3mm정도의 짧은 선이나 점의 형태를 띤 준법으로 가늘고 뾰족한 붓끝을 화면에 살짝 대어 약간 끌거나 터치를 가하듯하여 집합적으로 나타낸다.
산이나 언덕의 능선 주변, 또는 바위의 표면에 촘촘이 가해져 질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며, 우리 나라 15세기 후반의 산수 화에서 필획이 개별화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전반경에 특히 유행했었다
단필마피준법(短筆麻皮)
짧은 마(痲)를 풀어 놓은 듯한 약간 거친 느낌을 주는 준으로 부서지고 각진 바위나 산봉우리의 효과를 낼 때 주로 쓰인다. 남당(南唐)거연(巨然)의 작품에서 잘 볼 수 있다.
담묵(淡墨)
흐린 먹. 물을 많이 주어서 연하게 사용하는 필법
대도도(待渡圖)
강가의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는 인마의 모습을 주제로 한 풍속화의 한 화제.
대부벽준법(大斧劈)
큰 도끼로 찍었을 때 생기는 단면과 같은 모습의 준으로 붓을 기울인 자세로 쥐고 폭 넓게 끌어 당겨 만든다. 수직의 단층이 더욱 부서진 효과를 낼 때 사용하며 남송의 이당(李唐), 마원, 하규 등이 애용했다.
대칭구도 (對稱構圖)
좌우가 대체로 대칭을 이루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구도를 말한다.
대혼점(大混點)
타원형처럼 생긴 비교적 큰점으로, 붓을 옆으로 뉘어서 혼란하게 찍는다.
무성한 여름 나뭇잎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며 산의 묘사에도 가끔 쓰인다.
도말만폭(塗抹滿幅)
화면 전체를 빈틈없이 쳐 바르거나, 전체를 그림으로 채워서 여백의 미를 살리지 못한 그림을 일컬으며, 매우 답답하여 운치가 없는 죽은 그림이 된다.
도석화(道釋畵)
도교 및 불교 관계의 인물화를 말하며, 대개 종교상 숭배할 만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인 달마대사의 상은 도석화의 대명사와 같이 쓰인다.
도원도(桃源圖)
고사산수화(故事山水畵)의 한 화제. 도원은 호남성 도원현에 있는 무릉도원동의 약칭이다.
동진의 도연명이 [도화원기]를 지은 후로 도원이란 말은 별세계 또는 선경(仙境)을 뜻하게 되었다.
복사꽃이 어우러지는 산언덕이 그려지며 물가에는 평온한 정경으로 어부와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초기의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도화서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는 기관이다.
이 도화서는 처음에는 도화원(圖畵院)이라고 하다가 1469년(예종 1) 이후부터 도화서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관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는데 신라에서는 채전(彩典), 고려에서는 도화원, 그리고 조선에서는 도화서라고 하였다.
도화서는 예조(禮曹)에 속하는 종육품 아문(從六品衙門)으로서 제조(提調) 1명과 별제(別提) 2명, 그리고 화원(畵員) 2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화원은 종육품인 선화(善畵) 1명, 종칠품인 선회(善繪) 1명, 종팔품인 화사(畵史) 1명, 종구품인 회사(繪史) 2명 등 녹봉을 받는 5명의 직위가 있었고,
이외에 3명의 화원만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였고 나머지는 그것마저도 없는 미관 말직(微官末職)이었다.
별제는 화원으로서 진급할 수 있는 최고의 직위였으나, 도화서의 화원들은 신분적으로 천시되었기 때문에 화원에서 진급하여 올라가기보다는 그림을 이해하는 사대부(士大夫)가 임명되었다.
이렇게 낮은 신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고을의 현령(縣令)으로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화원을 뽑을 때는 대나무(竹), 산수(山水), 인물(人物)과 영모(翎毛), 화훼(花卉) 등을 4등급으로 나누어 이 중 2가지를 보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높은 등급인 대나무와 산수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는 유교(儒敎)를 숭상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화서는 조선시대 말 순종 때까지 존속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수요가 많아 인원과 규정이 달라졌다
.
독필(禿筆)
몽당 붓.
동경(同景)
여러 면 전체가 한 주제의 그림으로 이어진 병풍.
연결병풍.
두방(斗方)
작은 정사각형의 그림으로 보통 화첩으로 엮을 때 사용된다.
마아준(馬牙)
남송의 화가 조백구가 창안한 것으로 그 생김새가 말 이빨과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마피준법(麻皮)
마(馬)의 올이 얽힌 것 같은 준으로 다소 거친 느낌을 준다.
피마준법(披麻)과 비슷하며 남당(南唐)의 동원(董源)이 많이 사용했다.
마하파(馬夏派)
남송(南宋)의 화원에서 활약했던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해 형성된 화파로 주로 직업화가들 사이에서 추종되었다.
마하파의 화풍은 강남지방의 특유한 자연환경과 이를 향유하는 인물을 소재로 하여 근경에 역점을 두되 한쪽 구석에 치우치게 하는 일각구도(一角構圖: 그림의 아래부분 한쪽 구석에 중요한 경물(景物)을 근경으로 부각시켜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구도로 '변각구도'라 고도 함)에, 원경은 안개 속에 잠길 듯 시사적으로 나타내어서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산과 암벽의 표면을 부벽(斧劈)준법으로 처리하고 굴곡이 심한 나무를 근경에 그려넣는 것 등도 이 화풍의 특징이다.
말각조정(抹角藻井)
벽의 네 벽을 좁혀서 덮는 천정가구법(天井架構法)으로 흑해 연안에서부터 근동(近東)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고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고구려에서만 축조되었다.
네 벽 위에 각 중앙점에서 인접 격의 중앙점과 연결되는 삼각형공간을 돌로 덮어서 네 모서리를 줄이면 천정면적이 반으로 줄어들게 되는데 이 방법을 반복하여 마지막 공간을 판석으로 덮는 가구법이다.
완성된 천정을 실내에서 쳐다보면 정사각형속에 마름모꼴이 있고 그 속에 다시 정사각형이 있는 모양이 된다.
망천도(輞川圖)
중국 협서성 람전현에 있는 곡천(谷川)을 망천이라 부른다.
l 당대(唐代)의 왕유가 이곳에 망천장이란 별장을 짓고 풍류를 즐겼다.
이로부터 이 일대의 뛰어난 자연경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데서 이 화제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명황행촉도(明皇行蜀圖)
당의 현종 황제가 안록산의 난을 피해 756년에 촉으로 가게 된 고사를 주제 삼은 그림.
촉으로 가는 험한 산세와 황제 일행의 화려한 인마행렬의 모습이 그려진다.
모(摹)
진작(眞作)을 보고 사실 그대로를 정확하게 옮겨 그리는 것.
몰골화(沒骨畵)
윤곽선을 써서 형태를 정의(定義)하지 않고 바로 먹이나 채색만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을 말하며 구륵화와 대치되는 기법이다.
윤곽선이 없기 때문에 몰골, 즉 뼈없는 그림이라 부르는 것이다.
무진도(無盡圖)
보통은 강산무진도라고 한다.
길게 그린 산수화로 횡축에 그려진다.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44.1cm×856cm)가 유명하다.
묵화(墨畵)
수묵으로 그려지는 모든 종류의 그림을 총칭한다.
약간의 부분적 담채(淡彩)가 있어도 수묵 표현이 주조인 경우는 묵화의 범주에 든다.
문방사우(文房四友)
종이, 붓, 먹, 벼루벼
문인화(文人畵)
문인이나 사대부(士大夫)들이 여가(餘暇)로 그린 모든 그림을 말한다.
문인화는 종종 남종화와 같은 의미로 불리어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문인화가들 중에는 직업적인 화가들의 화풍을 따라 그리는 경우도 있어서 문인화가 곧 남종화라고 하는 정의는 내리기 어렵다.
강희안이나 신사임당이 그 예라 하겠다.
미법 산수(米法山水)
북송대(北宋代)의 문인화가 미불과 미우인(米友仁)에 의해 이룩된 산수화풍으로 이들의 성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미점(米點)을 구사하여 산이나 나무 등을 그리고 비온 뒤의 습윤한 자연이라든가 안개 낀 자연의 독특한 분위기 묘사에 특출한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원.명.청(元明淸)으로 이어지면서 남종화의 한 조류를 이루었다.
미점(米點)
붓을 옆으로 뉘어서 횡으로 찍는 점법으로 미불이 창안한데서 그의 성을 따 붙여졌다.
녹음이 무성한 여름산이나 수림(樹林)을 그릴 때 많이 사용된다.
민화(民畵)
정통화에 반대되는 개념이며 보통은 평민, 천민, 민중 등에서 따온 말이다.
민화의 특색은 다음과 같다.
1. 람(藍), 주(朱), 황(黃), 록(綠)을 주색(主色)으로 한 진채(眞彩)를 사용하므로 무척 화려하다.
2. 대개가 아마추어의 그림인 만큼 매우 자유스러우며, 유머가 있어 과장과 천진스러움이 강하게 나타난다
3. 의식용과 생활의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여 그렸기 때문에 화제(畵題)는 민속 종교적인 경향이 뚜렷하다.
4. 거의가 낙관이 없다.
반차도(班次圖)
정부 의식에 문무백관이 늘어서는 차례를 기록한 도표 혹은 그림.
방인(方印)
4각형 인장(印章) 을 말한다.
백묘인물화(白描人物畵)
색채나 음영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윤곽선만으로 이루어진 인물화를 말하며 북송의 이공린에 의해 전통이 확립되었다.
백묘화(白描畵)
색채나 명암이 없이 윤곽선만 그린 그림.
백화(白 )라고도 한다.
백문(白文)
음문(陰文)과 동일하다.
번두준
산봉우리를 그릴 때 평평하게 하여서, 여럿이 노닐 수 있게 한 공간을 말한다.
법첩(法帖)
체법(體法)이 될만한 명필의 서첩(書帖).
변장(邊章)
서명의 옆이나, 그림의 하단부 양쪽 구석을 제외한 부분에 찍힌 도장.
보상화문(寶相華文)
고대 오리엔트와 그리이스의 장식요소인 부채꼴 형식의 팔메트잎을 변화시켜 이룩된 화려하고 복잡한 양상을 띤 꽃모양의 문양으로 수(隋) 당(唐)시대에 불교 미술에서 자주 묘사되었다.
부벽준
바위의 표면 처리에 많이 쓰이는 법으로, 붓을 옆으로 비스듬히 뉘어 재빨리 들면서 끌어당겨 마치 도끼로 찍었을 때의 자국 같은 모습이다.
바위의 모난 모양을 표현하고자 할 때 많이 쓰며, 남송원체(南宋院體) 화가들이나 명대의 절파(浙派) 화가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다.
자국의 크기에 따라 대부벽준과 소부벽준이 있다.
북종화(北宗畵)
화원(畵員)이나 직업적인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진한 채색(彩色)과 꼼꼼한 묘사로 마치 사진처럼 외형 묘사에 주력하여 그린 장식적인 그림을 말한다.
선비 화가들이 주로 그렸던 남종화(南宗畵)와 대(對)가 되는 표현이다.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其昌)과 막시룡(莫是龍)은 산수화의 화풍을 남종화와 북종화의 둘로 나누었는데, 북종화를 당나라 때의 이사훈(李思訓)과 이소도(李昭道) 부자에서 시작되어 송대(宋代)의 이당(李唐), 유송년(劉松年), 조백구(趙伯駒), 마원(馬遠), 하규(夏奎), 명대의 대진(戴進), 오위(吳偉), 장로(張路) 등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 용어가 나오게 된 동기창의 분류 기준으로는 신분의 고하가 분류의 기준으로 작용하였던 듯하나, 우리 나라에 유입되어서는 신분상의 구분이기보다는 이들 화가들의 화풍을 본뜬 화풍상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분본(粉本)
초고(草稿), 화고(畵稿) 혹은 밑그림이라 말한다.
옛날의 화고가 호분(胡粉)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비백(飛白)
서, 화를 그릴 때 붓의 먹물이 건조해서 붓자국에 흰 공간이 들어간 모양.
사계화(四季花)
작약, 철쭉, 한국(寒菊), 동백.
사녀도(仕女圖)
궁중에서 생활하는 여인들을 주제로 한 그림.
이런 그림은 한 대(漢代)에서 시작되었으며, 수, 당대에 이르면 그 성행이 눈에 띈다.
그 대부분이 오대남당(五代南唐)의 주문구의 필법을 따른 예가 많았다.
명, 청대에 이르러서는 상류계급의 부녀를 그린 그림에도 '사녀도'란 이름이 붙는다.
사신 (四神)
청용(푸른용), 백호(흰호랑이), 주작(붉은공작), 현무(검은 거북이)를 말하며 각기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신으로 방위에 따라 정해진 색깔로 표시하였다.
특히 고구려 후기 고분벽화의 단실묘에 많이 그려졌다.
청용 - 동쪽(東), 푸른 빛 / 백호 - 서쪽(西), 흰색 / 주작 - 남쪽(南), 붉은 색 / 현무 - 북쪽(北), 검은 색
사의(寫意)
사물의 외형만을 중시해서 그리지 않고 작가의 내면세계의 뜻을 자유롭게 묘사하거나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하며 남종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산배화사(山背畵師: 야마시로 에시)
일본(日本) 고대 야스카(飛島)시대에 야마토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야마시로 고마노 무라지와 동계(同系)의 고구려 후예로 추정되는 씨족(氏族)화가 집단을 말한다.
삼원(三遠)
동양 산수화에 있어서 고원(高遠), 심원(深遠), 평원(平遠)으로 나누어지는 3종류의 원근법을 말한다.
삼절(三絶)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또는 한시대의 뛰어난 화가와 서예가 새사람을 묶어서 부를 때도 사용된다.
선염(渲染)
먹이나 색채로 각 단계의 점직적인 변화가 보이도록 축축이 번지듯 칠하는 기법으로 붓자국이 하나하나보이지 않게 칠한다.
선종화(禪宗畵)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이념이나 그와 관계되는 소재를 택하여 다룬 그림을 말하며 종교화로서보다 감사화로서의 의의가 더 크다.
전통적인 불교회화와는 달리 수묵(水墨)을 사용하여 간일(簡逸)한 화풍을 이루는 게 상례이다.
소부벽준법(小斧劈)
붓을 옆으로 비스듬히 뉘어 낚아채듯 끌어서 생긴 준으로 작은 도끼로 찍었을 때 생기는 단면과 같은 모습이다. 단층이 모난 바위의 효과를 내며 대부벽준과 더불어 남송원체 화가들이나 절파화가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우리의 전통회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소상팔경도 瀟湘八景圖]라는 제목의 원류는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의 이덕익이라는 화가가 즐겨 그린 것으로 알려지며, 중국의 호남성 동정호 남쪽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류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여덟가지 빼어난 절경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소혼점(少混點)
붓끝으로 찍는 파원형의 작은 점으로 흐리고 진한 것을 뒤섞어 혼란하게 그린다.
산이나 바위, 나뭇잎등의 묘사에 폭넓게 사용된다.
송설체(松雪體)
원대(元代)의 문인화가 조맹부의 서체(書體)를 말하며 그의 호(號)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서(楷書)의 균형잡힌 균정미(均整美)와 행서(行書)의 유려함을 조화시킨 서체로서 우리 나라에는 고려 말기에 유입되어 조선 초기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었다.
수지법(樹枝法)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줄기, 가지, 잎등의 표현기법과 포치 방법을 말하며, 시대와 화파에 따라 특징을 달리하기 때문에 작품의 연대 판정과 양식의 변천을 추구하는데 좋은 증거가 되어 준다.
수직준법(垂直)
정선이 이룩한 준법으로 예리한 필선을 죽죽 그어내려 나타낸다.
대개가 강하고 활달한 맛을 내며 특히 금강산(金剛山)의 내외경의 뾰족한 암산(岩山)을 묘사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실경산수(實景山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명승(名勝)이나 고적(古蹟) 등 실제의 경치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다. 조선시대에는 진경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진경산수라고 하기도 하였다. 동양의 수묵 산수화는 실제의 경치를 사생에 의해 그리기보다는 관념적 이상향의 산수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시기나 지역에 따라 다른 화풍의 산수화가 발달하게 된 것은 실재하는 산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인들의 그림을 방(倣)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당시에는 선인들의 그림이나 화보를 보고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시대에도 이녕(李寧)이 〈예성강도(禮城江圖)〉와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 〈금강산도(金剛山圖)〉 등을 그린 기록이 있어 실경산수화가 그려졌을 것이나 남아 있는 작품은 없다. 실경산수화가 새로운 장르로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정선(鄭敾)에 의해서이며, 그의 일파에 의해 더욱 융성하였으나, 조선 말기김정희 등에 의해 만연했던 남종 문인화에 의해 그 세가 꺾이고 만다.
심원(深遠)
삼원중의 하나로서 앞에 있는 산이나 봉우리로부터 뒤에 있는 산들을 들여다볼 때의 모습이며 산의 깊이를 강조할 때 사용된다.
안견파
15세기 중엽에 이르면 안견은 조선시대 최고의 산수화가로 곽희파화풍을 토대로 마하파 화풍 등 다양한 화풍을 종합하여 독자적인 [안견파화풍]을 이루었다.
이 화풍(양팽손, 정세광, 신사임당, 이정근, 이징 등)은 조선초기는 물론 조선 중기에까지 이어졌고 일본에 건너가 주문파(周文派)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안견은 산수화만이 아니라 초상화, 화훼, 매죽, 누각, 준마, 의장도 등 다양한 화제를 그렸던 것으로 밝혀지지만 현재는 오직 [몽유도원도]만이 진작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평대군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당대 제일의 송설체(松雪體)서예가였고 최대의 중국화(中國畵) 소장가였으며 시.서.화에도 능했다 .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로부터 원대(元 代 )의 조맹부(趙 孟 부) 등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중국의 명화, 명적(名跡)을 많이 소장하고 고전(古典) 에 밝았던 안평대군의 소장품에 관해서는 신숙주(申.叔舟)의 보한재집(保閑齋 集)에 실린 [화기(畵記)]에 그 내용이 알려져 있다.
안평대군은 1445년까지 도합 222 축(軸)이 달하는 서화를 수집하였는데, 그중에는 그가 아끼던 안견의 작품 30점과 일본의 화승 철관(鐵關)의 작품이 4점 외에 그 나머지는 모두 중국 역대(歷代)의 서화였다.
[화기]에 실린 소장품의 특징을 보면 첫째, 안평대군은 주로 연대가 올라가는 송.원대의 작품을 모았고, 둘째 안견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중국의 서화만을 모으려 하였으며, 셋째 산수화는 곽희, 이간, 유융, 나치천, 등 소위 이곽파의 작품을 모았다는 사실이다.
안평대군의 비호를 받았던 안견이 곽희파화풍을 토대로 자성일가(自 成 一家)를 이룬 것은 아마도 그의 타고난 재주 이외에 안평대군을 오랫동안 가까이 섬김으로써 안평대군 소장의 명품들을 깊이 연구하고 수용할 수 있었던 데에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양문(陽文)
주문(朱文)과 같다.
도장의 글자부분이 양각되어 인주에 묻혀 찍으면 흰 바탕에 자획이 붉은 색으로 나타나는 인장(印章)이다.
단독으로 이용할 때 주문방인(朱文方印)을 많이 쓴다.
양주팔괴(楊洲八怪)
청조의 건륭년간(乾隆年間, 1736~95)에 큰 운하의 수리(水利)와 소금판매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강소성 양주에 모였던 8명의 개성적인 화가.
보통은 김농, 황신, 이선, 왕사신, 고상, 정섭, 이방응, 나빙을 말하지만 고봉한, 민정을 보태기도 한다.
이들 전부에다 화암을 보태어 양주화파라고도 한다.
어락도(漁樂圖)
어민의 모습 또는 천렵의 정경을 주제 삼은 그림.
옆으로 길게 그려지는 두루마리의 연속화면에 강물과 늪이 주위의 자연경과 더불어 전개되
고, 그 속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 올리는 어민의 표정이 담겨진다.
대개는 끝머리쯤에 가서 술잔을 기울이며 천렵을 즐기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여사잠도(女史箴圖)
서진(西晋)의 장화(232~300)가 찬(撰)한 [여사잠]을 회화화(繪畵化) 것.
혜제의 왕비 고씨가 방종하는 것을 두려워 한 장화는 여사(女史, 후궁에서 왕비의 범절을
돕던 여인)의 직분을 훈계하고, 왕비 일족을 풍자할 의도로 그 문장을 찬술하였다고 한다.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당의 하동 출신인 장언원의 저서로서 총 10권으로 되어있다.
그 내용은 앞의 3권은 화론(畵論)이며, 나머지 7권은 중국역대화가의 소전(小傳)이다.
참고 문헌의 출전을 정확히 밝히고 있어, 고증의 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연주장(連珠章)
두 개처럼 되어 있는 하나의 도장.
영모화
새와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원래 영모는 새털의 의미로 그것이 새 종류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두 글자를 각각 떼어 새 깃과 동물 털이라는 의미로 확대 해석됨으로써 새와 동물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쓰여진다.
오대당풍식(吳帶當風式)
고대의 옷을 표현하는 묘사법의 한 스타일을 의미하는 말이다.
조선미술사연구(朝鮮美術史硏究)의 저자 윤희순이 상기의 저서에서, 진의 보비흥이 옷을 그릴 때, 마치 옷이 물에 젖어서 몸에 달라붙는 것과 같이 그리며, 당의 오도현은 옷이 바람에 날려 휘날리는 것과 같이 묘사하였다고 했다.
오채(五彩)
중국사상의 원천인 오행(五行)사상에서 비롯한 것으로 황(黃), 청(靑), 적(赤), 백(白), 묵(墨)의 5가지 색깔을 말한다.
요철법(凹凸法)
그림 속의 형태에 입체감을 부여하기 위해 채색을 써서 명암의 단계를 번지듯 점진적으로 나타내는 기법이다.
지중해 지역의 후기 고전 미술로부터 유래되어 인도와 서역을 거쳐 동아시아로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장승요가 전통을 확립시켰으며, 서쪽에서 전래되었다 하여 태서법(泰西法)이라고도 한다.
우점준법(雨點)
아주 작은 타원형으로 찍혀진 붓자국이 빗방울같이 생긴 준이다.
산의 밑부분에서는 크게 나타내며 위로 올라갈 수로 작게 한다.
북송의 범관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운두준법(雲頭)
풍화 작용을 받아 침식되어 마치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 같이 생긴 산을 표현하는 준법으로 이곽파화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체 화풍(院體畵風)
궁정 취향에 따라 화원을 중심으로 이룩된 직업호가들의 호풍을 말하며 궁정의 유행이 때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일정한 양식(樣式)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윤필(潤筆)
짙은 먹이 풍부하게 묻은 붓을 말하며 대담한 터치를 필요로 할 때 잘 사용된다.
음문(陰文)
백문(白文)과 같다.
도장의 글자 부분을 음각한 것으로 찍으면 붉은 바탕에 자획이 희게 나타나는 인장(印章)이다.
도장 두 개가 이용될 때에 백문방인(白文方印)을 위쪽에 주문방인(朱文方印)을 아래쪽에 찍는 것이 일반적이다
음영법(陰影法)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하여 그 물체가 빛을 받아 이루는 그림자를 나타내어 그림을 그리는 방법
이곽파(李郭派) 화풍
(곽희파화풍 이라고도 한다)
북송대의 이성(李成)과 곽희(郭熙)에 의해 이룩된 화풍으로 금(金)과 원대(元代)에도 이 화풍을 많이 따라 그렸다.
이성의 화풍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보다 화풍이 뚜렷한 곽희의 이름을 따서 '곽희파'라고도 불리어진다.
대체로 이곽파의 화풍은 뭉게구름처럼 보이는 침식된 황토산(黃土山)을 즐겨 그리되 그 표면 처리에 있어서 필선이 하나하나 구분되지 않도록 붓을 엇대어 쓰며, 곽희 때부터는 산의 밑동을 밝게 표현하는게 특색이다.
산수(山水)는 대개 근경. 중경. 원경이 점차 상승 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향을 띠고, 나뭇가지들은 게발톱처럼 보이는 해조묘(蟹爪描)로 그려지며 소나무 잎은 송충이털을 연상시키게 묘사된다.
산의 윤곽선 바깥쪽에 이빨모양으로 돋아나 붙어 있는 치형돌기(齒形突起)형태를 쓰는 것도 이곽파 화풍의 특징중에 하나이다.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
고대 그리이스의 식물문양에 기원을 두고 있는 어켄서스 계통의 덩굴무늬로서 S자형으로 연속되는 리드미컬한 문양 형식이다.
저묵산수
천강산수(淺絳山水)라고도 한다.
면저 수묵(水墨)으로 그림의 기초를 그리고, 여기에 엷게 색을 칠하여 주는 일종의 담채법
(淡彩法)을 말하며, 원대의 황공망 이 창안하였다.
전신(傳神)
전신사조(傳神寫照)가 줄어서 된 말로 초상화에 있어서 인물의 외형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고매한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초상화론(肖像畵論)이다.
절대준(折帶)
대(帶)가 갈라진 것 같은 준으로 여러 개의 단층이 모여 지층을 이룬 것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절파 화풍(浙派 畵風)
명초(明初) 절강성 출신의 대진(戴進)을 시조로 하며, 그와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절강 지방 양식의 영향을 받았던 화가들의 화풍을 집합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남송원체 화풍을 주로 하여 거기에 이곽파 화풍 등 여러 요소를 융합하여 이룩된 복합적 양식을 보여주며 15세기 후반부터 명대 화원의 주도 화풍이 되었다.
대체로 남송원체 화풍에 중경을 삽입시킨 복잡한 구성과 거친 필치를 구사하여 그림 전체가 다소 조잡한 느낌을 준다.
점경(點景)
그림에 곁들인다는 뜻.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곁들이는 것으로 산수화에 있어 돛단배, 산사, 탑 등을 가르킨다.
점태(點苔)
돌을 그릴 때 작은 점을 찍어서 이끼 혹은 풀 등으로 보이게 하여 오래된 돌임을 나타내기도 하며, 먼 산의 침엽수림이나 잡초 등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현미를 느끼게 한다.
정선파(停船派)
조선 후기의 정선이 이룩한 진경산수 화풍을 따랐던 일편의 화가들을 함께 지칭한다.
강희언, 김득신, 최북 등을 위시한 많은 화가들이 따라 그렸다.
이 화파의 영향은 민화(民話)에 까지 미쳤다.
제발(題跋)
그림이나 표구(表具)의 대지(臺紙)위에 쓰여진 그 그림과 관계되는 산문(散文)의 글로서 화가 자신이 쓰거나 다른 사람이 쓰기도 한다.
이 글을 통하여 그림이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제시(題詩)
그림이나 표구의 대지 위에 그림이나 받은 감흥 등을 그 그림과 같은 기분으로 적은 시다.
제시와 그것을 쓴 서체(書體), 그리고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을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이끄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주문(朱文)
양문(陽文)과 같다.
준법
형태의 외형을 끝낸 다음에 산이나 바위, 토파(土坡)등의 입체감과 명암, 질감을 나타내기 이해 표면을 처리하는 유형적(類型的)수법을 말하여 약 25가지의 준법이 있다
지어본(紙魚本)
지어(紙魚)가 갉아먹어 구멍을 낸 서화나 책을 말하며, 충입본(蟲入本)이라고도 한다.
지화(指畵, 指頭畵)
붓대신 또는 붓과 함께 손톱이나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
직찰준(直擦 )
붓을 똑바로 세워주고 비비면서 그려 나가는 것으로, 오대(五代)의 관공, 북송의 이성이 상용하였다.
직필(直筆)
서예의 필법 중의 하나이며, 붓을 종이에 수직이 되게 잡고 쓰는 방식이다.
그 느낌은 엄정(嚴正)하며 장중(壯重)하다.
따라서 강인한 표현법에 적당하다.
진경산수(眞景山水)
조선 후기 정선(鄭敾)에 의해 형성된 화풍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 실재하는 경관(景觀)을 남종화에 바탕을 두고 발전된, 정선 특유의 화풍을 가미하여 그린 산수이다.
이 화풍은 조선 후기의 화원들 사이에서 한때 널리 추종되었다.
찰염(擦染)
먹이나 색채를 축축히 문지르듯 칠하는 것으로 서서히 물이 스며들 듯 변하는 효과를 낸다.
철선묘(鐵線描)
굵고 가는 데가 없이 두께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꼿꼿하고 곧은 필선으로, 매우 딱딱하고 예리하여 철사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붓을 세워 강하게 베풀고 선이 길며 인물화에 사용된다.
철선준법(鐵線)
철사와 같은 곧은 필선의 준으로 수직으로 연결된 바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청록산수화
여러 색깔의 안료로 채색된 산수화를 말한다.
산을 군청색 계열과 녹청색 계열로 채색하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생긴 것이다.
주로 먼 산은 군청색 계열로, 앞쪽의 산은 녹청색 계열로 채색된다.
산꼭대기나 산 주름의 능선은 녹청색 위에 군청을 덧칠하는 일이 많으며, 금물을 함께 사용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금벽산수(金碧山水)라고 하기도 한다.
치형돌기(齒形突起)
산의 윤곽선 바깥쪽에 이빨 모양을 돋아나 붙어 있는 작은 형태로 이곽파 화풍,
특히 금대(金臺) 및 원말(元末) 명초(命招)이 매너리즘이 심한 산수도에 자주 나타난다.
타지(拖枝)
마치 밑에.서 끌어당긴 것 같이 거의 90도로 꺾여 굴곡이 매우 심한 나뭇가지를 말하며 마하파화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