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를 배우려면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 하나는 고법을 익히는 일이요, 또 하나는 현장을 찾아가서 사생하는 일이다. 고법을 통하여서는 자연합일(自然合一)의 예술 정신과 표현의 지혜를 배울 수 있고, 사생을 통해서는 대상 세계에 몰입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서 현장감 넘치는 필묵법(筆墨法)을 역동적으로 펼칠 수 있게 된다.16)
1) 임천을 그리워함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 지자락(知者樂), 인자수(仁者壽).”라 했다. 말씀인 즉,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 지혜로운 자는 인생을 즐기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혜로운 사람의 심성은 밝고 깨끗하기 때문에 이해심이 깊고 마음이 넓다. 그래서 흐르는 물처럼 움직이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항상 새롭고 즐겁게 산다. 또한 어진 사람은 산처럼 쉬이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물질적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고요하여 장수한다. 근래에 줄여서 쓰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사자성어는 중∙고등학생들도 잘 아는 유명한 말이다. 이렇듯 산수 자연, 곧 임천을 그리워함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짙게 녹아있는 근본적인 지향성이다.
옛 선비들은 글과 그림과 함께 산천을 유람했다. 인간의 심성을 길러주는 자연 산천을 모르고서는 학문이 깊어질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인들의 등산과는 다른 목적의식이다. 근래는 특히 주말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산을 많이 찾는다. 운동 차원에서, 또는 산이 좋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산을 찾아온 사람들을 산은 넓은 아량으로 다 품어준다. 산은 고향 같은 편안한 휴식을 준다. 산수를 마주하면 우리네 마음이 절로 너그러워지고 행동이 착해진다. 이렇듯 우리 산천은 현대인의 피로해진 마음을 치료해 주는 곳이다. 넉넉하고 부드러운 자연 산천은 우리의 품성을 너그럽게 길러준다.
현대인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한 성격이 극대화된 디지털 시대, 인터넷 사회일수록 마음의 휴식과 위안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은 더러 일상에서 벗어나 국내외로 여행을 떠난다. 이러한 여행에서도 명승지나 도시 명소를 찾기보다는 그 지역의 색다른 자연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마음으로 누리는 더 큰 휴식이 될지 모른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 강, 나무, 풀 등 자연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가 없다. 인위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산수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소중한 안식처이다.
연구자는 자연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구체적 방법론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산천의 기색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아 그 기세를 취하고 가까이에서 보아 그 형세를 취한다. 봄이면 화창하고 온화한 봄의 기운을 담고 여름이면 싱싱한 여름의 기운을 담는다. 가을이면 가을의 맑고 깨끗하고 쓸쓸한 기운을, 겨울이면 고요하고 처량한 기운을 화면에 담아내도록 한다. 이런 자연의 기세와 형질을 본뜬 새로운 준법으로 자연의 표정을 실감나게 그려내고자 한다.
산천의 기운을 잘 표현하려면 산수를 마음속에 담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근원을 꿰뚫어야 한다. 산수를 즐기는 방법으로는 경치, 흥취, 이치의 세 단계가 있다. 산과 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경치를 보는 것이고, 산이 있고 물이 있어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이 흥취이며, 산과 물은 나누어질 수 없음을 깨우치는 것이 이치를 캐는 것이다. 산수를 바라봄에 있어 그 본질과 감상자의 정신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자연과 교감이 이루어져야만 깊은 통찰력으로 산수를 환히 꿰뚫어 볼 수가 있다.
흥취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얻은 감격이고, 높고 밝은 경지에서 마음을 같이할 때 느끼는 감동이다. 이 감동과 감격을 시로 읊으면 시흥(詩興)이 되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화의(畫意)가 된다.17) 이를테면 술을 그냥 마셔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와 더불어 마시면 흥취는 더욱 깊어지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흥취는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잠시 일어났다가 금세 사라지기도 하고 언제 어느새 왔다 가기도 하는 순간적인 감정이다.
이치는 보이는 것 뒤에 숨어 있는 원리이다.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산수는 단순한 산과 물이 아니라 총체적인 자연을 상징했다. 특히 옛 문인이나 선비들은 산수를 자연의 이치와 도(道)의 본질이 내재한 것으로 보았다. 도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도를 청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적막하다고 할 수밖에 없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현(玄)하고 공(空)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18)
16)권기윤, 「산수화, 실경과 의경」, 『인문과학연구 제15집』, 안동대학교 인문과학 연구소, 2016. p.55
17)허균, 『옛 그림을 보는 법』, 돌베개, 2013. p.19
18)허균, 앞의 책,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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