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의의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 산수 경치의 자연미를 조선의 독자적 시각과 화법으로 표현해 내었다는 것이 그 자랑거리이다. 진경산수 화법은 18세기 겸재 정선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 다음에는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을 비롯한 여러 문인화가들이 그 전통을 새롭게 이어나간다. 이것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가 더욱 세련된 화풍으로 다듬어내게 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조선후기 실경산수화의 전통 및 예술적 성과를 살펴보아 연구자 스스로의 표현법을 찾아내기 위한 디딤돌로 삼고자 한다.
1) 창시자 겸재 정선
그림 . <금강전도>, 겸재 정선, 종이에 수묵담채,
국보 제217호, 130.7×59㎝, 호암미술관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조선 후기에 겸재 정선에 의해 민족문화사상 개벽에 다름 아닌 새 경지를 맞이하게 되니, “진경산수(眞景山水)”라고 하는 조선 독자의 화풍이 바로 이것이다. 이때는 조선 성리학의 완성과 더불어 조선왕조의 후기 문화가 세계의 문화 속에서 그 고유색을 한껏 발현하던 문화절정기였다. 이른바 진경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의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적 자긍심이었던 조선 중화주의에 힘입어, 이제 조선의 진경산수화는 산수의 이상향적인 여건을 중국의 화론이나 풍경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산천에서 직접 찾게 되었다.1)
당시의 회화적 수준은 이미 중국의 남종문인화풍인 오파양식(吳派樣式)을 소화 흡수하여 활력을 높인 터여서 조선 독자의 화풍을 이룩할 만한 충분한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선비들의 은일와유(隱逸臥遊)사상이 진경시(眞景詩)와 기행문을 낳고, 나아가 현장감이 살아있는 진경산수의 발달을 가져왔다.
정선은 내금강 및 외금강을 드나들고 영남지방의 승경을 유람하는 등 산수의 형세를 파악하면서, 사용한 붓이 무덤을 이룰 만큼이 된 끝에 먹 사용의 누습(陋習)을 벗어던진 새로운 화격(畫格)을 창출한다. 2)
주역(周易)의 음양 상생의 이치에 따라 흙산은 남종 산수화법인 미가준법(米家皴法)을 쓰고 바위산은 북종 산수화법을 써서 한 화면에 남북 양종의 화법을 동시에 아우르는 새로운 화법으로 독창적인 화경(畫境)을 일구어낸 것이다. 그런 즉, 송강 정철(松江 鄭澈,1536~1593)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이나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의 금강산 진경시의 의경(意境)을 화폭 속에 마음 내키는 대로 담을 수 있게 된다.3)
한국의 자연을 재해석하는 것은 물론, 자연의 절묘한 특색을 추출하는 안목이나 계절과 일기에 따라 변화하는 형상의 인상적인 순간포착 감각도 뛰어난다.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은 당시 화단에 유행하기 시작한 피마준(披麻皴)이나 미점(米點) 등 남종화법을 바탕으로 하였고, 조선 중기에 유행하던 절파화풍(浙派畵風)의 잔영으로서의 괴량감 넘치는 대부벽준(大斧劈皴) 형태의 적묵암준법(積墨岩皴法)도 수용한다. 거침없이 힘차게 내려 그은 수직준법(垂直皴法)과 한손에 붓 두 자루를 쥐고 그리는 양필법(兩筆法)은 전대미문의 겸재 독자의 화법이다.4)
그의 화법을 추종하여 ‘겸재 일파’ 또는 ‘정선 일파’로 불리는 화가로는 담졸(淡拙) 강희언(姜希彦, 1738-1792),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 1711~1775), 손암(巽庵) 정황(鄭榥, 1735-1800), 그리고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86)과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 1742~1789) 등이 있다.
정선은 36세 때와 72세 때에 금강산을 사생하여 각기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과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내놓는다. 금강산을 다시 찾아가 감격과 박진감이 넘치는 완숙한 기량으로 사생한 초본을 가져오는데, 여기에서 그의 화법은 대상의 본질을 완벽하게 터득하여 그 정수만을 추출해내고, 그것을 종합하여 일필휘지(一筆揮之)하는 입신(入神)의 경지를 드러내 보인다. 필법이 웅혼장쾌(雄渾壯快)하고 묵법이 활달쇄락(豁達灑落)하며 구도가 간결해지니,
그림 . <인왕재색도> 겸재 정선, 1751년작, 국보 제216호, 종이에
수묵담채, 79.2㎝,×138.2㎝, 호암미술관
이러한 구극(究極)의 경지가 바로 동양화에서 말하는 추상화(抽象畫)의 세계이다. 5)
한편으로, 그의 화법 가운데 소나무들의 집체(集體)를 묘사할 때에 짧은 선을 연속하여 빠르게 구사하는 소위 ‘송간묘선(松幹描線)’은 우리나라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음보(音步)와 음수율(音數律)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도 한다.6)
작품으로는 금강산을 그린 것, 동해승경을 그린 것, 배타고 다니면서 한강 주변을 그린 것, 한양성도를 그린 것, 영남일대를 그린 것 등 국토의 전역을 돌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명작을 남겼다.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박연폭도朴淵瀑圖>, <금강전도金剛全圖>, <금강대도金剛臺圖>, <만폭동도萬瀑洞圖>, <청풍계도淸風溪圖>, <도산서원도陶山書院圖>, <쌍계입암도雙溪立嵓圖> 등은 누구나가 다 아는 대표적 걸작이요 명작이다.
정선은 진경산수화의 창시자로서 오늘날 화성(畵聖)으로까지 칭송된다. 정통의 화법을 이어받아 성리학의 기본 정전인 주역(周易)의 음양조화 원리에 맞추어, 진경산수라고 하는 민족적 예술을 한 차원 높게 사실(寫實)에서 사의(寫意)로 대전환을 이루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실경을 한국적인 정서로 이해한 회화 세계를 구축하였을 뿐더러, 추상의 표현에 있어 우리 산천의 특성에 주목한 직선적 엄격성과 대상에 대한 해석의 변형을 심도 있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7)
1) 최완수 외, 『진경시대 2』, 돌베개, 1998. pp.60~63
2)유홍준, 『화인열전 1』, 역사비평사, 2001. p.192
3)최완수, 『謙齋 鄭敾 眞景山水畫』, 汎友社, 1993. pp.40~47 참조
4)이태호,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학고재, 1996. pp.44,45
5)최완수, 앞의 책, p.32
6)유준영, “겸재 정선의 예술과 사상”, 『겸재 정선』, 국립중앙박물관, 1992. p.111
7)이동주, 『우리나라 옛 그림』, 학고재, 1995. pp.24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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