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를 배우려면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 하나는 고법을 익히는 일이요, 또 하나는 현장을 찾아가서 사생하는 일이다. 고법을 통하여서는 자연합일(自然合一)의 예술 정신과 표현의 지혜를 배울 수 있고, 사생을 통해서는 대상 세계에 몰입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서 현장감 넘치는 필묵법(筆墨法)을 역동적으로 펼칠 수 있게 된다.16)

1) 임천을 그리워함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 지자락(知者樂), 인자수(仁者壽).”라 했다. 말씀인 즉,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 지혜로운 자는 인생을 즐기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혜로운 사람의 심성은 밝고 깨끗하기 때문에 이해심이 깊고 마음이 넓다. 그래서 흐르는 물처럼 움직이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항상 새롭고 즐겁게 산다. 또한 어진 사람은 산처럼 쉬이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물질적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고요하여 장수한다. 근래에 줄여서 쓰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사자성어는 중고등학생들도 잘 아는 유명한 말이다. 이렇듯 산수 자연, 곧 임천을 그리워함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짙게 녹아있는 근본적인 지향성이다.

옛 선비들은 글과 그림과 함께 산천을 유람했다. 인간의 심성을 길러주는 자연 산천을 모르고서는 학문이 깊어질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인들의 등산과는 다른 목적의식이다. 근래는 특히 주말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산을 많이 찾는다. 운동 차원에서, 또는 산이 좋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산을 찾아온 사람들을 산은 넓은 아량으로 다 품어준다. 산은 고향 같은 편안한 휴식을 준다. 산수를 마주하면 우리네 마음이 절로 너그러워지고 행동이 착해진다. 이렇듯 우리 산천은 현대인의 피로해진 마음을 치료해 주는 곳이다. 넉넉하고 부드러운 자연 산천은 우리의 품성을 너그럽게 길러준다.


현대인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한 성격이 극대화된 디지털 시대, 인터넷 사회일수록 마음의 휴식과 위안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은 더러 일상에서 벗어나 국내외로 여행을 떠난다. 이러한 여행에서도 명승지나 도시 명소를 찾기보다는 그 지역의 색다른 자연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마음으로 누리는 더 큰 휴식이 될지 모른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 , 나무, 풀 등 자연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가 없다. 인위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산수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소중한 안식처이다.

연구자는 자연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구체적 방법론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산천의 기색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아 그 기세를 취하고 가까이에서 보아 그 형세를 취한다. 봄이면 화창하고 온화한 봄의 기운을 담고 여름이면 싱싱한 여름의 기운을 담는다. 가을이면 가을의 맑고 깨끗하고 쓸쓸한 기운을, 겨울이면 고요하고 처량한 기운을 화면에 담아내도록 한다. 이런 자연의 기세와 형질을 본뜬 새로운 준법으로 자연의 표정을 실감나게 그려내고자 한다.

산천의 기운을 잘 표현하려면 산수를 마음속에 담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근원을 꿰뚫어야 한다. 산수를 즐기는 방법으로는 경치, 흥취, 이치의 세 단계가 있다. 산과 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경치를 보는 것이고, 산이 있고 물이 있어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이 흥취이며, 산과 물은 나누어질 수 없음을 깨우치는 것이 이치를 캐는 것이다. 산수를 바라봄에 있어 그 본질과 감상자의 정신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자연과 교감이 이루어져야만 깊은 통찰력으로 산수를 환히 꿰뚫어 볼 수가 있다.

흥취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얻은 감격이고, 높고 밝은 경지에서 마음을 같이할 때 느끼는 감동이다. 이 감동과 감격을 시로 읊으면 시흥(詩興)이 되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화의(畫意)가 된다.17) 이를테면 술을 그냥 마셔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와 더불어 마시면 흥취는 더욱 깊어지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흥취는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잠시 일어났다가 금세 사라지기도 하고 언제 어느새 왔다 가기도 하는 순간적인 감정이다.

이치는 보이는 것 뒤에 숨어 있는 원리이다.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산수는 단순한 산과 물이 아니라 총체적인 자연을 상징했다. 특히 옛 문인이나 선비들은 산수를 자연의 이치와 도()의 본질이 내재한 것으로 보았다. 도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도를 청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적막하다고 할 수밖에 없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현()하고 공()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18)


16)권기윤, 산수화, 실경과 의경, 인문과학연구 제15, 안동대학교 인문과학 연구소, 2016. p.55

17)허균, 옛 그림을 보는 법, 돌베개, 2013. p.19

18)허균, 앞의 책, p.23


 



3) 단원 김홍도
  단원 김홍도는 정조시기에 활동한 불세출의 화가이다. 당대의 감식가요 평론가인 스승 강세황의 지도를 바탕으로 모든 회화 영역에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이루어낸 화원이다.
  김홍도는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당대 문인들까지의 취미에, 아래로는 일반 백성의 취향에 맞춘 그림으로 화단에 영향을 미쳤다. 화원의 신분으로 찰방의 현감을 지내는 출세를 하였고 때로는 명사들과 교류하면서 우아하고 정취 있는 삶을 영위하기도 하였다. 김홍도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상을 정확하고 생동감 있고 실감나게 그려내는 솜씨뿐만 아니라 사물을 형상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그것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창조하는 구성력 또한 뛰어났다.14) 
 삼십대의 작품들이 주로 풍속화 위주인데 비하여 중년 이후에는 진경산수화가 주를 이룬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그는 풍속화의 업적만큼이나 진경산수화를 비롯한 산수화에서도 독특하고 세련된 화풍을 이룩했다.
  김홍도의 산수화풍은 부벽준이나 하엽(荷葉)준법을 변형시킨 가운데 먹과 붓이 흩어지고 뭉치는 농담과 강약의 조절, 산뜻한 담묵기법과 매끄러운 필치의 수파묘법(水波描法), 바위와 산의 주름, 토파묘사 등이 눈길을 끈다. 변화감 있는 농담으로 표현하는 생명력과 공기감, 투명하고 시원한 수묵의 구사와 약간 비스듬한 묵선의 흐름과, 그에 따른 경물의 포치(布置)로 운동감을 주는 삼각형이나 대각선 구도, 그리고 은은한 배경이 화풍의 특징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선배 화가들인 심사정, 강세황, 이인상의 영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홍도의 개성 있고 격조 높은 산수화풍은 수목 표현이나 암준, 토파 등 남종화 화보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이며, 진경 표현에서는 역시 겸재 정선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즉 김홍도는 진경산수에서 정선의 화풍을 계승하였고 남종 화보와 선비화가들의 남종화적 감성을 습득하면서 독창적인 자기 양식을 세운 것이다.15)
  김홍도는 유명한 《병진년화첩》을 남기고 있다. 화첩은 <소림명월도>, <조어도>와 더불어 산수를 배경으로 한 산수풍속, 쌍치도, 화조도 등 20점으로 꾸며져 있다. 그 가운데 단양지방의 산수도인 <옥순봉도>는 김홍도 진경산수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다. 이 그림은 ‘병진춘사’라고 적혀있듯이 화사한 봄 풍경을 그린 것으로, 은은한 담묵과 담채를 옅게 칠하여 화면에 공간감을 주었고, 그 위에 색조가


그림 6. <옥순봉>, 단원 김홍도, 1796년, 종이에 수묵담채, 26.7×31.6cm, 호암미술관
 다른 담묵과 태점을 쌓아올려서 경물을 표현하였다. 먹선이 집중해서 모이고 흩어지는, 강하고 약한 윤필(潤筆)의 효과를 자연스럽게 구사하였고, 우측 하단 강가에 유람선을 타고 탐승 사경하는 표현은 한층 현장감을 살려주고 있다. 배를 타고 올려다본 바위기둥은 고원법을 사용하여 우뚝 높게 솟아오른 모습을 과장되게 그려내고, 사람들이 탄 배는 심원법을 써서 낮은 수면 위에 떠있게 그려넣었다. 또한 바위기둥 너머의 산은 평원법으로 멀리 밀어내어 깊은 공간감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주∙객관의 시각을 통합한 뛰어난 구도 감각으로 실제 경치를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김홍도의 그림은 온화하고 서정적이며 조용한 기운이 흐른다. 힘차고 박진감 넘치는 남성적인 겸재의 진경산수화에 비하면 단원은 여성적인 느낌이 든다. 이러한 화법에서 김홍도는 정선의 진경산수화 못지않게 자연이 지닌 서정과 분위기를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단원이 시도한 진경표현법은 동료와 후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눈앞에 펼쳐진 실경에 맞는 필선과 구도의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한 그의 자세는 오늘날에도 세련되고 현대적인 진경산수 작품들을 그리는 데에 이정표가 되고 있다.



14)유홍준, 앞의 책, pp.314,316

15)이태호,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학고재, 1996. p.85




①현재 심사정

그림 3. <명경대>, 현재 심사정, 종이에                 

           수묵담채, 27.7×18.8㎝, 간송미술관
  현재 심사정은 정통 남종화법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에 들어온 북종의 화법도 수용함으로써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한 화가이다. 그로 인해 그의 산수화는 당대의 다른 화가들에 비해 중국적이고, 또 복고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심사정의 대표 저작으로는 금강산 그림 몇 점과 《경구팔경도첩》을 손꼽을 수 있다.8)
 심사정의 작품 속 금강산들은 그 필치의 대담함에서 정선의 색채를, 대부벽준의 암면과 미동이 있는 묵선과 태점에서 남종화풍의 색채를 엿볼 수 있다. 《경구팔경도첩》은 서울의 풍광을 담은 그의 만년 작품으로 <명경대>는 큰 바위와 주변의 봉우리를 절대준을 사용하여 단순화 시켰으며 암석을 태점으로 조화롭게 구사한 남종화법의 기량이 보인다. <망도성도>에서 구사된 부벽준법과 소나무 묘법, <강암파도도>의 수파표현, 그 밖의 다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갈필의 피마준과 태점 등에서 남∙북종화풍을 섭렵한 그의 개성적인 필치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실경에 큰 의의를 두거나 진경사생에 중점을 두지는 않았고, 한국의 실경에 적합한 화풍의 개발에는 소홀한 점이 있다. 심사정의 진경산수화는 실경 해석이나 표현대상의 선정, 전통적 필법과 밀착된 화풍 등 18, 19세기 진경사생의 확대를 말해 주고 있다.9)
 
  
  ②능호관 이인상

그림 . <은선대도>, 능호관 이인상, 종이에 수묵담채, 34.0×55.0cm, 간송미술관


  능호관 이인상은 당시 선비 사회에서 시문과 학식으로 존경을 받았고 강직하고 고아한 성품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화풍에서는 그 성품과 같이 고아하고 문기가 넘치는 기상을 느낄 수 있다. 그의 회화는 속기 없는 깔끔한 필치가 드러남과 동시에 명대 오파계의 화풍을 소화한 그만의 특색이 드러난다. 건필과 습윤한 묵선, 연하게 번진 담묵 효과, 깔끔한 화면 처리는 그의 작품상의 특징들인데, 그의 고아한 인품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대표 저작으로는 <은선대도>, <구룡폭포>, <옥류동도>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구도나 필치에서 실경을 사생했다기보다 사의를 강조한 남종화법으로 소화한 흔적이 강하다. 그래서 심사정과 마찬가지로 사경에 대한 현장감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심사정의 경우보다 좀더 조선 산천의 경치에 부합하는 화풍으로 문기(文氣)와 화격(畫格)을 강조하였다.10)

  이인상은 일찍이 자신의 산천 유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고래로 산수를 보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그 즐거움을 아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품격(品格)을 아는 것이다.”11) 
 곧, 실경을 그리기에 앞서 그 품격을 고담(古淡)한 묵법으로 담아낸다는 것이다.


  ③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그림 5. <백석담도>, 표암 강세황, 종이에 수묵담채, 53.4×32.8cm 국림중앙박물관


  표암 강세황(1713~1791)은 당대 예원의 총수로서 서화의 제작뿐만 아니라 회화 이론과 비평을 선도하였다. 조선풍의 진경산수화의 모범을 보이는 한편 역대 명가들의 서화를 임모하는 성실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유년 시절의 단원 김홍도를 직접 지도하였으며, 단원이 도화서 화원으로 지낼 때에도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처음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시종일관 “속기(俗氣) 없는 문인화”의 경지를 추구하였고, 그가 이룩한 문인화의 경지는 ‘와유(臥遊)’와 ‘사의(寫意)’라는 남종화의 본질적 정신을 견지하면서 새로운 시대성과 독자적 개성을 드러내었다. 말하자면 “한국적 남종문인화” 내지 “남종문인화의 토착화”가 그것이었다.
  ⪡송도기행첩⪢에 들어있는 <백석담도>같은 그림에서 그러한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평소 어떻게 하면 실제 산수를 보듯이 현실감 나는 산수를 그려낼까 궁리하던 끝에 당시로서는 새롭기만 한 서양화법의 이점(利點)을 채택하였다. 개성 부근의 경승을 여행하면서 받은 감동적인 인상들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로 현장 중심의 현실적 공간 구도와 음영효과에 의한 입체감 등을 적절하게 구사하였다. 윤곽을 잡아준 건강하고 개성적인 필선과 새로운 서양화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조화되어 생기를 더함으로써 ‘품위 있는 수채화’라 불러도 좋을 만큼 참신한 감각을 풍겨낸다.12) 
  표암이 개척한 한국적 문인화의 새로운 지평은 일차적으로 공간 구성, 필묵, 채색의 성질 등 그가 구사한 개성적 양식에서, 다음으로는 보편가치로서의 산수 정신에 근거한 그의 조용하고 담담하며 고상한 미감에 있어서 중국의 문인화의 그것과는 차별성을 가진다.13) 
 
8)이태호, 앞의 책, p.115

9) 이태호,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학고재, 1996. p.117

10) 이태호, 앞의 책, p.120

11) 유홍준, 『화인열전 1』, 역사비평사, 2001. p.85

12) 변영섭, 「문인화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이동국 외 편,『豹菴 姜世晃, 예술의 전당,  2003. p.377

13) 변영섭, 위의 책, p.376


2.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의의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 산수 경치의 자연미를 조선의 독자적 시각과 화법으로 표현해 내었다는 것이 그 자랑거리이다. 진경산수 화법은 18세기 겸재 정선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 다음에는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을 비롯한 여러 문인화가들이 그 전통을 새롭게 이어나간다. 이것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가 더욱 세련된 화풍으로 다듬어내게 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조선후기 실경산수화의 전통 및 예술적 성과를 살펴보아 연구자 스스로의 표현법을 찾아내기 위한 디딤돌로 삼고자 한다. 


  1) 창시자 겸재 정선


 

그림 . <금강전도>, 겸재 정선, 종이에 수묵담채,         

 국보 제217호, 130.7×59㎝, 호암미술관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조선 후기에 겸재 정선에 의해 민족문화사상 개벽에 다름 아닌 새 경지를 맞이하게 되니, “진경산수(眞景山水)”라고 하는 조선 독자의 화풍이 바로 이것이다. 이때는 조선 성리학의 완성과 더불어 조선왕조의 후기 문화가 세계의 문화 속에서 그 고유색을 한껏 발현하던 문화절정기였다. 이른바 진경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의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적 자긍심이었던 조선 중화주의에 힘입어, 이제 조선의 진경산수화는 산수의 이상향적인 여건을 중국의 화론이나 풍경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산천에서 직접 찾게 되었다.1)
 당시의 회화적 수준은 이미 중국의 남종문인화풍인 오파양식(吳派樣式)을 소화 흡수하여 활력을 높인 터여서 조선 독자의 화풍을 이룩할 만한 충분한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선비들의 은일와유(隱逸臥遊)사상이 진경시(眞景詩)와 기행문을 낳고, 나아가 현장감이 살아있는 진경산수의 발달을 가져왔다.
  정선은 내금강 및 외금강을 드나들고 영남지방의 승경을 유람하는 등 산수의 형세를 파악하면서, 사용한 붓이 무덤을 이룰 만큼이 된 끝에 먹 사용의 누습(陋習)을 벗어던진 새로운 화격(畫格)을 창출한다. 2)
 주역(周易)의 음양 상생의 이치에 따라 흙산은 남종 산수화법인 미가준법(米家皴法)을 쓰고 바위산은 북종 산수화법을 써서 한 화면에 남북 양종의 화법을 동시에 아우르는 새로운 화법으로 독창적인 화경(畫境)을 일구어낸 것이다. 그런 즉, 송강 정철(松江 鄭澈,1536~1593)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이나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의 금강산 진경시의 의경(意境)을 화폭 속에 마음 내키는 대로 담을 수 있게 된다.3)
 한국의 자연을 재해석하는 것은 물론, 자연의 절묘한 특색을 추출하는 안목이나 계절과 일기에 따라 변화하는 형상의 인상적인 순간포착 감각도 뛰어난다.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은 당시 화단에 유행하기 시작한 피마준(披麻皴)이나 미점(米點) 등 남종화법을 바탕으로 하였고, 조선 중기에 유행하던 절파화풍(浙派畵風)의 잔영으로서의 괴량감 넘치는 대부벽준(大斧劈皴) 형태의 적묵암준법(積墨岩皴法)도 수용한다. 거침없이 힘차게 내려 그은 수직준법(垂直皴法)과 한손에 붓 두 자루를 쥐고 그리는 양필법(兩筆法)은 전대미문의 겸재 독자의 화법이다.4)
 그의 화법을 추종하여 ‘겸재 일파’ 또는 ‘정선 일파’로 불리는 화가로는 담졸(淡拙) 강희언(姜希彦, 1738-1792),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 1711~1775), 손암(巽庵) 정황(鄭榥, 1735-1800), 그리고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86)과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 1742~1789) 등이 있다.
  정선은 36세 때와 72세 때에 금강산을 사생하여 각기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과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내놓는다. 금강산을 다시 찾아가 감격과 박진감이 넘치는 완숙한 기량으로 사생한 초본을 가져오는데, 여기에서 그의 화법은 대상의 본질을 완벽하게 터득하여 그 정수만을 추출해내고, 그것을 종합하여 일필휘지(一筆揮之)하는 입신(入神)의 경지를 드러내 보인다. 필법이 웅혼장쾌(雄渾壯快)하고 묵법이 활달쇄락(豁達灑落)하며 구도가 간결해지니,


그림 . <인왕재색도> 겸재 정선, 1751년작, 국보 제216호, 종이에             

 수묵담채, 79.2㎝,×138.2㎝, 호암미술관


 이러한 구극(究極)의 경지가 바로 동양화에서 말하는 추상화(抽象畫)의 세계이다. 5)
 한편으로, 그의 화법 가운데 소나무들의 집체(集體)를 묘사할 때에 짧은 선을 연속하여 빠르게 구사하는 소위 ‘송간묘선(松幹描線)’은 우리나라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음보(音步)와 음수율(音數律)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도 한다.6)
 작품으로는 금강산을 그린 것, 동해승경을 그린 것, 배타고 다니면서 한강 주변을 그린 것, 한양성도를 그린 것, 영남일대를 그린 것 등 국토의 전역을 돌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명작을 남겼다.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박연폭도朴淵瀑圖>, <금강전도金剛全圖>, <금강대도金剛臺圖>, <만폭동도萬瀑洞圖>, <청풍계도淸風溪圖>, <도산서원도陶山書院圖>, <쌍계입암도雙溪立嵓圖> 등은 누구나가 다 아는 대표적 걸작이요 명작이다.
  정선은 진경산수화의 창시자로서 오늘날 화성(畵聖)으로까지 칭송된다. 정통의 화법을 이어받아 성리학의 기본 정전인 주역(周易)의 음양조화 원리에 맞추어, 진경산수라고 하는 민족적 예술을 한 차원 높게 사실(寫實)에서 사의(寫意)로 대전환을 이루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실경을 한국적인 정서로 이해한 회화 세계를 구축하였을 뿐더러, 추상의 표현에 있어 우리 산천의 특성에 주목한 직선적 엄격성과 대상에 대한 해석의 변형을 심도 있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7)

 

1) 최완수 외, 『진경시대 2』, 돌베개, 1998. pp.60~63

2)유홍준, 『화인열전 1』, 역사비평사, 2001. p.192

3)최완수, 『謙齋 鄭敾 眞景山水畫』, 汎友社, 1993. pp.40~47 참조

4)이태호,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학고재, 1996. pp.44,45

5)최완수, 앞의 책, p.32

6)유준영, “겸재 정선의 예술과 사상”, 『겸재 정선』, 국립중앙박물관, 1992. p.111

7)이동주, 우리나라 옛 그림, 학고재, 1995. pp.24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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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산수 자연이 건네주는 아름다움이 무엇이기에, 현대인은 그것을 그토록 잊지 못해 그리워하고 즐기려 하는가? 오늘날은 안방에 앉아서도 세계의 자연을 다큐멘터리로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실재하는 산천을 찾아가 꼭 그 현장에서 보고 느끼면서 그려 보려고 하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직접적인 체험에서 누리는 즐거움은 무엇보다도 자연과의 교감 그 자체이다. 결코 간접 경험으로는 얻어낼 수 없는 통찰을 거기에서 이끌어낼 수 있다. 이것이 곧 예술 창조력의 밑거름인 동시에 아름다움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 비밀의 문을 열었다 해서 아름다운 그림이 그냥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니다. 화법의 수련이 있어야 한다. 화법은 화가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것은 마치 일상의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말과 글이 필요하고, 또 올바른 습득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과도 같다.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은 산수를 감상할 때에 그 즐거움과 함께 품격을 본다고 하였다. 이것은 경관의 빼어남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화법의 수련이 또한 필요함을 말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화법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다르고, 중심 지역과 변방에 따라 다르고, 개인의 성품이나 재능에 따라서도 다르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표현법을 일구어낼 수 있을까?

실경산수화는 관념 산수화의 대개념으로, 우리나라 산수 경치의 자연미를 우리의 화법으로 표현해 내는 데 그 의의를 두고 있다. 조선후기의 진경산수 화법이 18세기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에 의해 창시된 이래, 명나라 오파의 산수화풍을 소화 흡수하여 조선의 화풍으로 이끌어내게 되는 즉,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을 비롯한 여러 문인화가들이 이러한 진경화법의 새로운 전통을 일으켜 세운다. 이러한 전통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가 더욱 세련된 화풍으로 다듬어 낸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조선후기 실경산수화의 전통 및 예술적 성과를 그리워하여 그 맥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실경산수화에는 수묵화의 원리 및 실경의 아름다움이 안팎으로 잘 깃들어 있다. 수십억 년 유구한 지구의 형성 과정에서 인간의 손때를 멀리하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자연은 지질시대의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숭고하리만치 아름답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산천은 날이 갈수록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 물론 산천의 아름다움이란 표면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내부를 움직이는 힘과 이치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인문적, 심미적 관점으로도 눈여겨볼 만하고 역사적 인식이나 지질학적 이해도 필요한데, 산수화의 표현법으로 대표되는 준법(皴法)의 탄생이 바로 그러한 관심과 이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예를 들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에서 엿보이는 피마준(披麻皴)이나 미점(米點), 그리고 괴량감 넘치는 대부벽준(大斧劈皴) 형태의 적묵암준법(積墨岩皴法)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준법에 대한 탐구를 본 연구의 기본 과제로 삼는다.

돌이켜보면, 실경산수화의 전통은 겸재 정선 이래로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사실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사실정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현될 수 있다. 시대상이나 화가의 개성에 따라 해석의 문제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은 서양화의 풍경화법이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되어, 사실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실경산수화에도 카메라 시각의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사실정신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퇴행적 수법이 알게 모르게 새로운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이것을 반성하는 입장에서 선택한 방법론이 현장사생이다. 현장사생은 사실정신을 직접적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실험정신이다. 곧 산수의 본질과 화가의 정신이 실질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또 하나의 창조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현장사생을 통해 조선후기 실경산수 화법의 사실정신을 요즘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데에 연구의 중점을 둔다. 열망하는 바, 이름난 명승지뿐 아니라 생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즐겁게 바라볼 것이다. 이즈음 널리 퍼진 카메라 시각에 대한 맹신을 물리치고, 그것의 왜곡과 편협성을 바로잡아 나가도록 하겠다. 나아가서 사실과 추상이 둘이 아니니 만치, 이른바 점, , 면을 표현 요소로 삼는 추상화법을 활용하여 사실과 추상을 하나로 녹여내어 보겠다. 이리하여 실경산수화에서 현대성과 예술성이 함께 갖추어지도록 하겠다. 이때 겸재와 단원 같은 분들이 추구했던 사실화풍을 직·간접으로 참고하도록 한다. 이리하여 한국 산수화의 정통을 이어받고 스스로의 진실한 미감을 살려서 연구자 나름대로의 개성을 펼쳐나가도록 노력하겠다.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연구자의 눈에 비추어지는 섬세한 감정을 꾸밈없이 잘 드러내도록 하겠다. 물론 짧은 연구 기간에 한국의 산천을 두루 다 찾아다닐 수가 없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일지라도 실경을 마주한 감동을 펼쳐서 현대적인 표현법을 이끌어내도록 애쓰겠다. 그러한 회화적 성과를 묶어서 전시회를 열고, 이것을 바탕으로 실경산수화 이론의 틀을 다져나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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