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융통성 있는 경영위치

구도는 화면 위에 미적 효과를 얻기 위하여 대상을 조직하고 배치하는 것이다. 구도를 위한 구도는 필연적으로 형식주의에 빠지므로, 구도는 주제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고 그 요구에 따라야 한다. 남제(南齊)의 사혁(謝赫, 479~502)이 제시한 화6(畵六法) 중 다섯 번째, 곧 경영위치가 구도를 뜻한다. 37)

이즈음의 산수화는 카메라의 사진 이미지가 실제의 이미지와는 알게 모르게 다른 모습으로 왜곡된다는 사실을 지나쳐 버리고, 카메라 시각의 일점투시법을 사용하여 화면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근법을 사용하여 카메라 시각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구도는 전통적인 사실정신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실경산수화의 공간구도는 예로부터 다시점이 적용되었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의경(意境)이라는 추상적인 힘이 내부에서 작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화면의 공간구성은 그러한 내적 필연성을 따라 이행되는 것일 뿐, 미리부터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실상 아무 것도 없다.

구도를 잡는 방법에는 우선 취함[]과 버림[]이 있다. 취함과 버림은 구도를 잡을 때 불필요한 것은 없애고 필요한 내용만을 잘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에 있어 객관적 존재의 말살이나 왜곡이 아닌 실제에 근거하여 중요한 부분은 취하고 군더더기는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자연과 마주 앉으며 종종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 번잡하여 무엇을 버려야 하고 어디까지 취해야 하는지 어려움에 부딪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시금 대상에 대해 먼저 주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동반자격인 객()을 살펴본다. 여기서 파악된 주와 객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음으로, 구도에서 객은 있으나 주가 그 중심을 잡지 않으면 그림이 산만해 지고, 주는 있으나 옆에서 받쳐 주는 객이 없다면 단조롭고 변화가 없다. 그 밖에 주와 객이 대신할 수 없는 부차적인 볼거리 또한 하나의 요소이다. 연구자의 그림에서 예를 들면, 가송리의 전경을 그린 작품에서 농촌의 전경으로 제시된 경운기, 트랙터, 시골집, 비닐하우스 등이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주와 객 사이에는 대소 관계가 성립한다. 대체적으로 가까이 있는 산이 주로서 형태가 크고, 멀리 있는 산은 작아 객으로 작용한다. 다만 구도에서 큰 것이 주이기는 하지만 객이 될 수도 있는데, 이러한 변화를 줌에 있어서는 주제와 내용, 그리고 실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구도를 처리하여야 한다.

한편으로, 구도를 달리 말해 치진포세(置陳布勢)’라 하였는데 이는 구도에서는 ()’가 중요함을 뜻한다. 이것은 곧 구도를 잡을 때 세가 형상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우쳐주는 말이다. 산을 그리되 그 기세가 부족하면 무미건조하게 될 것이다. 무릇 형상의 기세를 잘 표현하여야 실재성 있는 작품이 되고 그림은 생동감을 얻게 된다. 산의 기세는 서로 호응관계가 있어야 한다. 화면 속의 경치가 서로 고립되어서는 아니 되고 형상 간에 전후좌우의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연관성에 있어서는 또한 그림 안에서의 호응 관계뿐만 아니라, 여백을 통해 무한한 밖의 공간까지 연장시키는 그림 밖의 호응도 고려해야 한다.

여백은 화면에 연속성을 주어 그 답답함을 없애고 생동감을 준다. 여백과 실()은 상대적 개념으로, 여백이 있으므로 인해 실이 더욱 잘 표현되기도 하고, 반대로 실은 여백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는 수도 있다. 산수에서 강물의 표현은 일필을 보태지 않아도 물로 인식된다는 특성으로 인해 그 빈 공간은 실이다. 여백을 남기는 것은 그러한 공간을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적 표현에 있어서 특수한 표현방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여백을 남김으로 인해 더욱 의경(意境)을 확대시켜 줄 수 있다. 38)

모름지기 산수화의 구도에 있어서는 성김과 빽빽함, 긴장과 이완, 마름과 젖음, 강한 곳과 부드러운 곳 등의 적절한 배치와 구성이 화면을 조화롭게 만든다. 따라서 음악을 들을 때도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 빠른 소리와 느린 소리, 긴장되는 곳과 느슨한 곳이 있듯이, 그림의 화면 속에서도 이런 것들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37)왕백민, 동양화 구도론, 강관식 역, 미진사, 1991. pp.6,7

38)왕백민, 동양화구도론, 강관식 옮김, 미진사, 1991. 참고


 

 

 


'실경산수화 표현법 > 논문 발표내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품 2   (0) 2018.08.23
6. 본인 작품의 성격과 의미 작품 1  (0) 2018.08.23
2) 운필의 자유로움  (0) 2018.08.23
5. 현장 사생 1) 감동과 몰입  (0) 2018.08.23
3) 점. 선. 면  (0) 2018.08.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