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점. 선. 면
  회화 예술에 있어서 점, 선, 면은 그 기본적 표현 요소이자 매체이다. 그럼에도 이것 자체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존재자일 따름이다. 점은 이웃하는 점들과의 관계 등에 따라 공간감, 형태나 움직임을 나타낸다. 점들의 간격이 좁고 넓음에 따라 수축된 느낌과 느리고 이완된 느낌을 주고, 점의 크기를 점차 줄이거나 늘임으로써 운동감이나 공간감을 주기도 한다. 이 외에도 점은 산수화에서 의미와 감정을 표현하는 데 다양하게 활용되는 요소이다.
  선은 어떠한 추상 관념을 시각화한 ‘획(畫)’으로 나타난다. 선은 동양화의 주된 재료인 먹의 특성 때문에 그 비중은 가히 동양화를 ‘선의 예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산수화 준법에 있어 선은 형태, 질감, 양감, 원근감, 운동감, 생명력, 정신성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 수단이다. 면은 선이 합쳐져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림 . <필운대>, 겸재 정선, 1753경, 종이에 수묵담채, 29.5 x 33.7 cm. 간송미술관
 부벽준과 같이 폭이 있는 획에서 단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이 드러나는 예는 무수히 많다. 가까운 예를 하나 들어서, 겸재 정선이 1753년 무렵에 그린 <필운대(弼雲臺)> 그림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겸재 정선이 1753년 무렵에 그린 것으로, 이곳 인왕산 필운대 아래에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종로구 필운동 88번지 일대로 현재 배화여고가 들어서 있는 자리다. 겸재는 이 경치를 어느 시원한 여름날 화폭에 올린 듯한데, 뒤편 인왕산 봉우리를 거의 생략해 버리고 낮은 구릉만 태점(苔點)과 흐린 윤곽선으로 간결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2단으로 된 필운대의 석대상(石臺狀)을 분명하게 표시하고 상단 뒤 석벽 아래는 노송림(老松林)으로 병풍을 둘러 석벽을 가려 놓았다. 대담한 청묵선염법(靑墨渲染法)과 거친 파묵(破墨)으로 일관한 호방한 필법인데 필운대의 삽상(颯爽)하고 청랭(淸冷)한 정취가 고스란히 살아나는 느낌이다.34)
  음양 조화의 감각을 잘 드러낸 그림이다. 점 형태로 표시한 구릉의 숲과, 절대준으로 처리한 돌의 표면 및 입체감, 그리고 죽죽 그어 내린 선 형태의 송간(松幹) 표현 등에서 점, 선, 면의 추상적 표현 요소를 또한 가려낼 수 있다. 이렇듯 진경산수는 사실화법과 추상화법을 동시에 아우른다.


34) 최완수, 『겸재 정선3』, 현암사, 2009.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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