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색채와 먹
현대에서 먹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수묵화가 오랜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먹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다. 또한 수묵화를 감상할 때에도 먹의 특성과 그 용법보다는 형이상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 일쑤다. 이러한 경향은 수묵화에 대한 이해와 수묵화의 발전을 가로 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통의 것을 살리는 가운데 새로운 창작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전통적 표현 재료인 먹의 물성 및 용구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먹은 농담, 건습, 흑백으로 물상의 색과 빛을 표현해내는 무채색의 안료(顔料)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로부터 ‘묵유오채(墨有五彩)’라는 말이 전하니, 먹에는 온갖 색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채색이 모든 색의 소멸로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모든 유채색이 이로부터 새로 시작되는 근원이기도 하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곧 먹의 빛깔은 우주의 본색을 상징하는 현색(玄色)으로 인식된다. 33)
수묵화에서는 이러한 무채색의 먹물을 통해 선을 긋고, 바림질을 한다. 푸른 하늘과 물빛을 화폭 속에서 여백으로 남겨 두는 것은 고유색에 대한 집착, 선입견을 벗어던진 것이다. 물빛은 일반적으로 하늘빛을 반영하지만 눈이 오거나 흐린 날은 검은 빛, 푸른 숲 아래에서는 녹색 빛, 계절이 달라질 때마다 시시각각 다른 빛을 낸다. 이렇듯 하나의 대상에게도 수많은 빛깔이 담겨 있기에 그 대상의 고유색이라는 것은 실상 자의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의 다양한 색채 속에서도 물빛이 본래 무색인 점에 있어서 그 본질을 상정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본질은 어떠한 색채에 얽매이지 않으니 추상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색채추상’이라는 말이 있은 즉, 이것은 사물의 고유색에 얽매이지 않고 그 대상에 있어서 음양의 관계와 그 대상을 관찰하는 주관적 감각을 살려 상징적으로 빛깔을 나타내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그 본질을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먹이 곧 색채의 상징이요 추상이다.
33)정종미, 『우리 그림의 색과 칠』, 학고재, 2001.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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