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표현법의 현대성
전통의 현대적 계승은 실경산수화가 안고 있는 하나의 과제이다. 흔히들 전통과 현대는 양립하기 어려운 관계로 보고 있다. 왜 그런 것인지 따져 볼 일이다. 먼저 현대성이란 말이 새로운 것을 뜻하는지, 아니면 본질적인 것을 뜻하는지 질문해 보자. 물론 그 둘 다가 해당될 것이다.
가령, 맷돌의 기능은 거친 곡물 따위를 곱게 갈아내는 것이다. 요즘은 믹서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믹서는 과실, 곡물, 야채 등을 갈거나 이겨 가루 또는 즙을 내는 맷돌 역할을 대신하는 현대의 물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맷돌의 덕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지금도 현무암을 쪼아서 작게 만든 재래식 맷돌의 인기가 높다. 그 까닭은 직접 손으로 돌려서 갈아내는 느림의 미학을 통해서 곡물이 갈릴 때 나오는 향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천천히 흘러나오는 즙액의 향기와 빛깔, 이것을 순식간에 갈아내는 믹서의 성능이 대신 가져다줄 수 없다. 맷돌을 만드는 마조장(磨造匠)의 이마에 흐르는 땀과 그의 마음속 희열을 상상해 본다.
커다란 맷돌이 사실상 쓸모가 없어졌을 때 맷돌 장인은 고민에 빠졌다. 가족의 수는 줄고 새로운 기계가 나왔다. 맷돌의 장점을 어떻게 하면 살려낼까 궁리하였다. 자그맣게 만들고 더 정교하고 예쁘게 만들었다. 곡물 영양소 파괴가 없고 투박하면서도 앙증맞은 작은 맷돌은 보기에도 좋다. 가히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현대성이란 결코 새롭기만 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오래되어 익숙하고 자연 소재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 정서적으로 가까운 동시에 아직도 그 본래적인 기능을 잘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즈음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때, 그것이 오히려 참다운 의미의 현대성이 아닐까 한다.
1) 사실정신과 추상
실경산수화는 전통회화의 한 갈래이다. 이 그림의 덕성은 사실성과 추상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산수 그리는 마음을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사실정신”이라고 한다. 형상을 빌어서 산수의 정신적 본질을 그린다는 것인 즉, 일찍이 발달한 인물화의 “전신(傳神)”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실재하는 산수 자연을 마주하여 그 경치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동시에, 화가의 마음속 감동과 대상의 본질을 아울러서 추상적으로 표현해 온 것이 실경산수화의 전통이다. 사물의 형상은 주로 점, 선, 면을 전이(轉移)해서 발달시킨 여러 가지의 준법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빛깔은 각각의 고유색을 낱낱이 고르기보다는 색의 근원인 먹색, 또는 몇 가지 기본 색으로 환원해서 나타낸다. 이때 원근법에 따른 공간의 깊이감마저도 추상화하여 화면 본래의 평면성을 회복시킨다면 더욱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수묵화의 추상화법이다. 먹과 붓과 종이라는 전통적 재료 용구를 사용하지만, 이처럼 산수 자연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표현한다면 여전히 현대성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구석기 시대의 그림에서도 현대성을 읽을 수 있고, 아프리카 조각에서도 현대성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본질 그것이 바로 현대성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림 7. <금강대>, 겸재 정선, 종이에 수묵담채, 22.0×28.8cm, 간송미술관
위와 관련하여 겸재 정선의 <금강대(金剛臺)>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것은 겸재 진경화법의 마무리 시기인 1755년 무렵에 그린 것으로, 그의 화법의 최종 경지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부벽수직준(斧劈垂直皴)과 절대준(折帶皴)을 찰법(攃法)에 가까운 굵은 붓질로 변용(變用)하여 섞어 쓰고 있다. 겸재 만년 특유의 대담한 필법인 것인데, 금강대를 층지고 모나게 그려놓고 그 주변을 마치 푸른 안개가 감싸듯이 담청(淡靑)의 쪽빛으로 훈염(暈染)해 놓고 있다. 모지고 층진 경골(硬骨)의 금강대를 몇 번 아닌 붓질로 실감나게 그려 낸 다음, 우리듯 피워 낸 발묵법(潑墨法)의 부드러운 묵점(墨點)들이 미가운림식米家雲林式으로 하단을 감싸게 하니 음양조화(陰陽調和)가 이토록 완벽할 수가 없다. 대상의 본질을 완벽하게 터득하여 그 정수만을 추출해 내고 그것을 종합하여 일필휘지(一筆揮之)하는 것이 동양화가 추구하는 구극의 경지임을 이 그림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동양의 추상화(抽象畵)인 것이다.32)
한편으로는, 현대인도 옛사람 못지않게 자연을 사랑한다. 휴일이면 산이나 골짜기에 들어가 즐거움과 휴식을 얻는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물론 도회지 문명 속에서도 운동이나 오락을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자연 공간이 안겨다주는 즐거움에 비길 수는 없을 것이다. 산천은 유구한 것이지만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고전”이라고 한다.
추상은 오히려 한 가지 매혹적인 가정이거나 개성적인 이해 방식인 것으로 여겨질 만하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빨리 소통되고 감상자의 공감을 더 쉽게 산다는 점이다. 화가가 궁극적으로 이런 추상적 표현 방식을 선택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적 질서와 생명감을 표현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되는 셈이다. 이렇듯 추상능력은 상상력 내지는 추리력과 다르지 않을뿐더러, 창조력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32) 최완수, 『겸재 정선3』, 현암사, 2009. pp.4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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