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高麗 918~1910) 시대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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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은 신라의 경순왕(敬順王)이 고려 태조왕건(太祖王建)에게 왕권을 이양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어 고려의 미술 등 문화 예술도 그대로 신라의 것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려의 회화는 크게 일반회화(一般繪畵)와 불교회화(佛敎繪畵)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일반회화는 전하는 작품이 적은 아쉬움이 있다. 고려의 회화는 격렬한 원색을 쓰지 않은 은은하고 깊은 맛이 있으며, 여성적이며 귀족적인 특징을 지니는바 이는 개국(開國) 초기부터 왕권의 강화와 중앙집권체제의 수립을 위하여 무적(武的)인 성격이 강한 호족세력을 약화시키고 유교적(儒敎的) 문치주의(文治主義) 채택하였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일반회화 분야에서는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가 그려지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이녕(李寧)의 그림은 송(宋)나라의 휘종도 높이 평가하였다고 하며 예성강도(禮成江圖)와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가 유명하다 알려져 있으나 전해지는 그의 작품은 없으며, 그의 아들 이광필(李光弼)도 그 당시 명종(1170 - 1197)의 총애를 받은 화가라 알려져 있으나 그의 그림 역시 전해지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고려시대에는 인물화뿐만이 아니라 산수화(山水畵), 화조화(花鳥畵), 영모화(翎毛畵), 사군자(四君者) 등의 다양한 회화 분야가 전개되고 그 수준도 상당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북송(北宋)의 이곽파(李郭波) 화풍과 남송(南宋)의 원체화풍(院體畵風), 원(元)의 미법산수화풍(米法山水畵風)을 받아들여 새롭게 고려 나름의 개성적인 화풍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제현(李齊賢)의 기마도강화(騎馬渡江畵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남송(南宋)과 원(元) 풍의 회화 영향을 고려 풍의 시원한 공간구성과 개성적인 형태 표현의 방법으로 새롭게 창조하였다고 하며, 작가 미상의 하경산수도/동경산수도(夏景山水圖/冬景山水圖 : 일본 교토 金地院 所藏)는 원(元)의 고극공(高克恭)류의 미법산수화풍을 이용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고려 공민왕(恭愍王)은 예술가로서 명망이 높아 글씨 및 인물, 산수, 영모화를 잘하였다고 하며 그가 그린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양도(羊圖 : 澗松美術館 소장)가 전하여 진다. 천산대렵도는 노루가 뛰고 말이 달리며 사냥하는 장면을 설채(設彩)로 묘사한 것으로 생동감이 있는 화격(畵格)이 높은 걸작이라 하겠다.
고려시대의 불교회화는 일반회화가 별로 전하여지는 것이 없는 반면 약 120여점의 작품이 국내외(대부분 일본)에 전하여지고 있으며, 불교회화는 당시의 최고 작가군(作家群)들인 화원(畵員)들이 주로 그렸거나 그에 버금가는 화사(畵師)들에 의해 그려져 불교회화사(佛敎繪畵史)를 고려회화사(高麗繪畵史)라 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회화는 전에 없이 다양성을 띠며 발전하였다. 실용적 기능을 지닌 작품들뿐만 아니라 여기(餘技)와 감상(鑑賞)의 대상이 되는 순수 회화도 활발히 제작되었다. 회사를 관장하는 도화원이 설치되었으며, 상당수의 화가와 작품이 문집과 사서에서 확인되는 등 회화가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회화가 실용적인 기능에 치우쳤기 때문에 회화가 자연화공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었으나, 고려시대에는 비단 화원들 뿐만 아니라 왕공 귀족들과 승려들도 감상화의 제작과 완성에 참여함으로써 화가의 계층이 넓어지게 되었고 또한 회화의 영역도 인물화 위주의 차원을 넘어 감상을 위한 산수화, 영모 및 화조화, 묵죽, 묵매, 묵란 등의 문인취향의 소재로까지 확대되고 다양화되는 경향을 띠었다.
왕의 진영, 공신의 초상을 그린 인물화와 탱화, 변상도 등의 불교 회화, 국학, 문묘 벽화 등의 유교 회화 및 산수, 영모, 궁정 누각도, 계회도 등의 일반 회화에까지 매우 다양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제 회화는 고대의 고식성을 벗어나 보다 차원 높은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고려의 회화는 12세기에 이르러 특히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고, 나라를 영예롭게 하는 것으로까지 여겨졌음이 이영에 대한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초상화에서는 제왕·공신, 기타 사대부들의 초상이 빈번하게 제작되었는데, 특히 제왕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진전(眞殿)의 발달은 더욱 괄목할 만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 시대의 초상화는 「안향상」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필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318년의 작품임이 확인되었다. 평정건을 쓰고 홍포를 입은 반신상으로 우리 나라에 주자학을 처음으로 전래한 학자의 풍모가 잘 드러나 있다. 뚜렷한 눈매, 가느다란 눈썹, 아담한 코, 단아한 입, 잘 다듬어진 수염 등이 학자다운 모습을 진솔하게 나타내고 있다. 특히 얼굴에 연한 붉은 색을 칠해 피부색을 표현한 점도 주목된다.
회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산수화도 전에 없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우리 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경치를 대상 삼아 그리는 실경 산수화가 태동되었던 것은 특히 주목을 끈다. 송나라 휘종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이령(李寧)의 「예성강도」와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를 위시하여 필자 미상의 「금강산도」, 「진양산수도」「송도팔경도」등이 문헌에 전해지고 있는 것은 이미 고려 전기에 한국적인 실경산수화가 발전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세한삼우도」, 전 고연휘의「하경산수도」,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으로 이제현의 「기마도강도」, 노영의 「흑칠금니소병」에 그린 「지장보살도」 등이 있다. 공민왕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수렵도」는 말을 탄 인물과 마른 나무, 풀 등 극도의 사실적인 필치는 웅대하고 품위있는 현세감을 느끼게 한다.
이 중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은 노영이 그린 「지장보살도」의 배경 산수이다. 근경에는 반가의 자세를 취하고 오른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과 이 보살을 향해 경배하는 승려와 공양하는 노영의 모습이 좌우에 묘사되어 있다. 원경에는 두건을 쓰고 여의를 든 채 광채를 발하며 서 있는 담무갈보살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를 향하여 엎드려 경배하는 고려 태조의 모습이 지장보살의 머리 뒷편에 있는 산 위에보인다. 이 장면은 태조 왕건이 금강산에 갔다가 담무갈보살을 만나게 된 것을 표현한 것이며, 따라서 이 그림에 보이는 뾰 족뾰족한 산들은 바로 금강산을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의 산수 배경은 금강산 실경을 압축해서 나타낸 일종의 실경산수화인 동시에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금강산도이다. 날카로운 능선과 뾰족한 첨봉들이 뒤로 물러나면서 높아지고 있으며 그 주변을 구름이 맴돌고 있다. 이러한 바위산들의 표현은 조선 후기의 금강산도에서도 자주 엿보이고 있어 금강산도의 전통이 고려 후기부터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4세기 고려 산수인물화의 양상을 파악하는데 「지장보살도」와 더불어 도움이 되는작품으로 이제현의 「기마강상도」가 있다. 얼어붙은 강을 건너 사냥을 떠나는 기마인물들을 산수를 배경으로 하여 묘사한 이 작품에는 전반적으로 가늘고 여린 필선과애매한 언덕 묘사 등에서 여기화가의 솜씨가 두드러져 보인다. 오른편 상단부에 매어달린 듯한 모습의 산, 그 허리를 휘감고 있는 굴절된 소나무의 형태 등의 묘사가 뛰어나다. 넓은 강을 통해 펼쳐지는 확 트인 공간의 구성과 짜임새 있는 구도, 잎이 떨어진 앙상한 눈이 덮인 나무의 형태 등에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한국적 특성이 두드러져 보여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왼편 중앙에 서 있는 눈이 덮인 나무는 고려 후기 및 조선 초기 회화에서 종종 엿볼 수 있어 주목된다.
말을 타고 수렵하는 장면을 산수를 배경으로 하여 표현한 대표적 그림으로는 공민왕의 「수렵도」가 있다. 본래 기다란 두루마리 그림에서 잘려진 잔편으로 보이는 이그림은 말을 몰아 사냥감을 향해 달리는 기마인물을 주제로 다루었는데 배경의 산과초목의 표현에는 북종화의 전통이 엿보인다. 규칙적인 산등성이의 표현, 줄지어 서 있는 풀포기의 묘사, 근경의 잡목들의 형태 등이 북종화의 잔영을 드러내 보여준다. 근경의 낮은 언덕이나 원경의 나지막한 산들과는 달리 중경은 평평한 땅으로 남겨 놓아 공간의 여유를 느끼도록 배려한 점이 역시 확 트인 공간을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공간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공간이 넓은 대각선 띠를 이루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그러나 이러한 산수 배경보다는 기마 인물에 더 큰 비중이 주어져 있다. 달리는 말과 인물의 힘찬 동작과 그들에게서 우러나오는 기운 넘치는 느낌 등은 그 정확한 묘사와 함께 이 작품의 화가가 산수보다는 오히려 인물과 동물의 표현에 능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대부분 일본에 건너가 있는 고려 불화는 관경변도, 나한상,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 아미타여래상 등을 포함하여 거의 70여 점에 달하는데 정성을 들인 정밀한 표현 속에 깊은 종교적 분위기와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 회화 역시우수한 작품은 국내에는 호암미술관 소장품 이외에는 거의 없고 일본에 80여 점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이 작품들 중에서도 1286년 제작된「아미타여래입상」, 동경 천초사 소장의 「양류관음상」, 서구방이 1323년에 그린 「수월관음보살도」등은 고려시대 불교회화의 높은 수준과 독특한 성격을 특히 잘 보여준다. 이러한 그림들은 한결같이 금빛과 채색이 찬란하고 의습과 문양이 정교하며 자태가 단아하여 고려적인 특색을 짙게 풍긴다.
일본 동경의 천초사에 소장되어 있는 혜허(慧虛)의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는 현존하는 고려 시대의 불교 회화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의 하나다. 비단 바탕에 아름다운 색을 써서 그린 이 작품은 관음상의 유연하고 곡선진 몸매, 부드러운 동작, 투명한 옷자락, 호화로운 장식, 가늘고 긴 눈매, 작은 입, 섬섬옥수와 가냘픈 버들가지등이 고려적인 특색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 준다. 관음의 이목구비는 물론, 옷자락과 문양 하나하나까지 완벽하리만큼 정교할 뿐만 아니라, 소홀히 다루어진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고려 불화의 특징은 서구방의 「양류관음반가상(楊柳觀音半跏像)」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왼편을 향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유연한 자세, 가늘고 긴 부드러운 팔과 손가볍게 걸쳐진 투명하고 아름다운 사라(紗羅), 화려한 군의, 보석 같은 바위와 그 틈새를 흐르는 옥류, 근경의 바닥에서 여기저기 솟아오른 산호초,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울려 극도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가늘고 긴 눈, 작은 입, 배경의 긴 대나무, 투명한 유리사발 안에 안치된 쟁반과 그것에 꽂혀있는 대나무 가지, 얼굴과 가슴 그리고 팔과 발에 그려진 황금빛 등도 이 시대의 불교회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며, 화려하면서도 가라앉은 품위 있는 색채, 섬세하고 정교한 의복, 균형잡힌 구성 등도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이다.
▶혜허의 관음보살입상(觀音菩薩立像) 세로로 긴 화면에 시원하고 우아한 형태의 물방울 모양 안에 관세음보살이 서있는 그림이다. 화면의 상반부가 대부분 비어 있고 하반부에는 왼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오른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이 서있으며 그 외에 비어있는 공간은 명상의 자리이며, 사색을 유도하는 신비의 공간이며, 영혼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긴장된 환희의 공간이라 하겠다. 관세음보살의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으며, 그 위를 꽃들과 색색의 보석이 조용히 빛을 발하며 솟아올라 있는 시원하고 우아한 신비감이 있는 그림이다.
▶자회의 아미타여래도(阿彌陀如來圖) 아미타여래, 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부처님은 한 없는 수명을 가진 분이라 하여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하며, 한없는 광명을 가진 이라 하여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 자회가 그린 아미타여래도는 얼굴과 가슴 등 신체가 정면상을 취하고 있는 일반적인 아미타여래도와는 달리 신체의 움직임에 다양한 변화가 있다. 발걸음은 왼쪽으로, 가슴은 정면을, 얼굴의 시선은 오른쪽을 그리고 왼팔은 구부려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리고 있으며 오른팔은 아래로 내뻗고 있는 신체의 움직임을 변화있게 그려 거침이 없고 명쾌한 생명의 힘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미륵불(彌勒佛)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어지럽고 혼탁한 현세에서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보살이다. 선도사(善導寺)에서 소장하고 있는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는 위엄과 기품이 있는 그림으로 선이 매우 섬세하고 유려하면서 대상의 움직임을 정확하고 깔끔하게 그린 세련미가 있는 그림이다.
이 밖에 고분벽화로는 경기도 개풍군 수락암동의 십이지신상과 경남 거창군 둔마리고분의 「주악천녀도」 등이 있어 당시의 풍습과 의식등을 짐작할 수 있으나, 기법상당시 회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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